'걸리면 소송전'…기술 앞에서 봐주는 것 없어진 재계

LS전선·대한전선 공장 레이아웃 탈취 논란
코오롱·효성은 美서 특허 소송전 벌여
"특허 가치 높아지고 경영환경 악화 탓"

[이데일리 김성진 기자] 국내 대기업들 사이에서 특허와 기술탈취를 둘러싼 소송전이 최근 들어 불붙고 있다. 대외적인 기업 이미지를 고려해 조용히 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사활을 걸고 전면전을 불사하는 모습이다. 특허가 기업 실적과 미래에 직결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기침체 영향으로 경영환경이 악화한 영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1일 경찰은 대한전선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피의자로 전환하고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회사 측은 이번 사건의 핵심이 ‘대한전선이 LS전선의 해저케이블 제조 설비 도면과 레이아웃 등을 탈취했는지 여부’라고 설명했다.

LS전선 동해사업장 전경.(사진=LS전선.)

LS전선 관계자는 “대한전선이 납품한 적이 있다고 하는 해저케이블은 1, 2km 수준의 짧은 케이블에 불과하다”며 “수십 km, 수천 톤에 달하는 긴 케이블을 제조하고 운반하는 기술, 즉 설비 및 공장의 배치가 해저 사업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LS전선은 대한전선의 혐의 사실이 드러날 경우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한다는 계획이다.

대한전선은 LS전선의 영업비밀을 탈취하거나 활용한 바가 없다고 반박했다. 대한전선은 “수십년간 케이블을 제조하며 쌓아온 기술력 및 해저케이블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자체 기술력으로 공장을 건설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뿐만 아니라 공장 설비 레이아웃은 핵심 기술일 수 없다”며 “해외 공장들은 경쟁사의 공장 견학을 허락하고 홈페이지 등에 설비 배치를 공개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특허기술을 침해 여부를 두고 분쟁을 벌이는 곳은 LS전선과 대한전선뿐만이 아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와 효성첨단소재는 현재 미국에서 전기차용 타이어코드 특허침해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2월 코오롱인더스트리가 효성첨단소재를 상대로 하이브리드타이어코드(HTC)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 발단이다. HTC는 아라마이드와 나일론을 활용해 만든 타이어코드로, 효성첨단소재가 코오롱인더스트리의 HTC 기술을 따라 제품을 생산했다는 게 소송의 골자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대기업 간 특허분쟁이 잦아진 이유로 지적재산권의 가치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적재산권과 무형자산의 활용도가 높아져서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특허전에서 승소할 경우 반사이익을 본 사례도 많아 앞으로 소송전이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용희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성장일로 시기 땐 여유가 있어 서로 합의하는 경우가 많았겠지만, 최근에는 경쟁이 심화해 이같은 여유가 없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김성진 (jini@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