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봐도 재밌는 ‘맥베스’...그로테스크한 감각 더해

김형주 기자(livebythesun@mk.co.kr) 2024. 7. 1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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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웅 연출가의 연극 ‘맥베스’
원작에 기괴한 분위기 가미
세 마녀들의 마력 돋보여
맥베스 역 맡은 배우 황정민
인간의 타락 입체적으로 표현
8월 18일까지 해오름극장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의 한 장면. 샘컴퍼니
오랜 세월 반복해 공연된 고전을 다시 무대에 올릴 때 연극인들은 이전의 공연과 구별되는 특별한 감각을 구현하려 한다. 시대에 맞는 울림을 만들기 위해, 관객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기 위해 과감한 실험을 시도한다.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연출한 연극 ‘맥베스’(연출 양정웅)가 관객을 맞고 있다.

연극은 까마귀 울음 소리가 퍼지며 시작된다. 극장은 음산한 분위기에 젖고 이내 관객의 머리 위로 까마귀 형상을 한 연들이 나타난다. 관객의 시선이 허공의 까마귀들을 좇는 사이 점차 울음 소리는 증폭되고 연들 역시 수십 개로 늘어나며 1200석 규모의 대형 극장이 까마귀로 가득 찬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의 한 장면. 샘컴퍼니
셰익스피어의 연극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가 마녀들로부터 자신이 왕이 될 거라는 예언을 들은 뒤 야욕에 빠져 타락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셰익스피어 비극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정통에 가깝게, 또 현대적인 미장센과 함께 만들었다”는 양정웅 연출가의 말처럼 이번 ‘맥베스’는 원작의 얼개는 살린 채 현대의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그로테스크한 감각을 더했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의 한 장면. 샘컴퍼니
작품의 기괴성을 강화하는 핵심 요소는 세 명의 마녀다. 드래그퀸(여장을 한 남자)의 모습을 한 마녀들은 쓰레기 소각장 또는 물류창고처럼 보이는 무대에서 토막난 시체들을 모으고, 길고 하얀 끈들을 엮어 거대한 육각성(六角星)을 만들어내는 등 마술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다시 찾아온 맥베스에게 또 다른 예언을 해주기 위해 이들이 소환하는 존재 역시 영화 ‘레지던트 이블’ 등 크리처물에 나오는 괴물처럼 끔찍한 모습이다. 장신(190cm) 배우인 윤영균과 단신(130cm)인 김범진 배우의 극단적인 신장 차이, 임기홍 배우가 뱉는 서늘한 대사와 웃음 소리도 세 마녀의 행동에 마력을 더한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의 한 장면. 샘컴퍼니
이 같은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연극은 주인공 맥베스의 타락을 묘사한다. 맥베스 역을 맡은 황정민 배우는 욕망 앞에서 갈등하고,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며, 결국 악인으로 전락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전쟁 영웅으로서 당당한 풍모를 갖췄던 맥베스는 아내 레이디 맥베스(김소진)에게 휘둘리는 우유부단한 남자가 됐다가, 주군의 피를 뒤집어쓴 채 두려움에 떠는 겁쟁이가 되고, 어린 아이도 망설임 없이 죽이는 냉혈한으로 변한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의 한 장면. 샘컴퍼니
연극은 맥베스가 느끼는 입체적인 감정을 다양한 무대 기술로 증폭해 전달한다. 그가 던컨 왕(송영창)을 죽일 때 최후를 맞은 왕의 얼굴이 무대 양옆에 영상으로 나타나고, 암살 직후 불안에 휩싸일 때는 성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그의 고동치는 심장 소리처럼 공연장 전체에 울려퍼진다. 그가 던컨 왕을 살해하기 전 왕좌에 대한 욕망을 느끼며 갈등할 때는 한 줄기 조명이 어두운 무대에 내려꽂히며 그에게 단검의 환영을 전달한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의 한 장면. 샘컴퍼니
연극의 백미는 영주들이 모인 연회에서 맥베스가 자신이 죽인 친구 뱅코우(송일국)의 유령을 보고 두려움에 떠는 장면이다. 피칠갑을 한 채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 뱅코우를 보고 맥베스는 소스라치고 뱅코우는 그런 그를 한참 동안 비웃다 사라진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맥베스’의 분위기는 무겁지만 관객을 미소짓게 하는 순간들도 존재한다. 던컨 왕의 아들 맬컴(뮤지컬 배우 홍성원)이 현악기 발랄라이카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장면, 연회를 주재하는 맥베스가 관객에게 말을 걸거나 맥베스 성의 문지기가 관객에게 장난을 거는 등 제4의 벽(극중 세계와 현실을 구분하는 가상의 벽)을 허무는 장면들이 중간중간 등장한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의 한 장면. 샘컴퍼니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자는 맥베스를 쓰러뜨릴 수 없고, 버넘 숲이 옮겨지지 않으면 맥베스는 멸망하지 않는다는 예언 등 고전 ‘맥베스’의 내용과 결말을 익히 아는 관객에게도 이번 ‘맥베스’는 울림을 준다. 원작의 감동을 살리면서도 이전의 공연들과 차별화되는 감각이 가미됐기 때문이다.

공연 제작사 샘컴퍼니의 여섯 번째 연극 ‘맥베스’는 8월1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의 한 장면. 샘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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