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간판 바꿔도 찾아”… 모란시장 ‘흑염소 특화’에도 개고기 판매 여전
손님 “보신탕 하죠?” 묻자 “2027년까지 괜찮다”
파장 무렵에도 150m 식당가에 수십 명 붐벼
개식용금지법, 2027년부터 개 도살·유통 등 처벌
상인들 “생계 못 하게 막고 대책 논의도 없어” 불만
맛고을 호남정, 남산사철탕, 무등 흑염소. 성남 모란민속 5일장 맞은편에 늘어선 음식점들은 사람들로 붐볐다. 초복(初伏) 전 마지막 장날이던 지난 14일, 보양식을 먹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었다. 파장(罷場) 무렵의 오후 7시였음에도 150m가량의 식당가에는 수십 명의 손님들이 자리했다.
이날 찾은 모란시장은 국내 최대 식용 개 시장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외견만으로는 식용 개를 더는 취급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시장 초입부터 ‘모란 흑염소 특화거리’라고 적힌 조형물이 들어섰고, 햇볕과 비를 막기 위한 지붕 위에도 같은 글귀의 간판이 걸렸다. 인도 한쪽에는 흑염소 캐릭터로 만든 조형물도 놓였다.
올해 초 개식용금지법(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된 이후 이곳 상인들이 생존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변신 작업의 일환이다. 모란시장상인회는 과거 받아두었던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으로 시장 간판을 바꾸고 시설을 정비하는 등의 작업을 벌이고 있다. “죄다 흑염소네, 이젠 개 안 파는가 보다”하는 행인들의 말소리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무색하게 길가에 줄지은 음식점과 건강원에 다가서자 개고기를 파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상인들도 매대에 관심을 보이는 손님들을 향해 “오는 2027년까지는 사드셔도 됩니다”하고 호객 행위를 하기도 했고, 식당 주인을 향해 “보신탕 하죠?”하고 묻고 들어서는 손님이나 음식점 밖에서 삶아진 개고기를 손질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시장 초입에서 35년째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A씨는 “초복 전 장날이라 300명 넘게 손님이 오셨다”면서 “대부분 염소를 드시러 오시지만, 아직 개고기를 찾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그는 “법 통과 이후 도심에서는 취급 업소들이 문을 닫다 보니, 모란시장이라는 상징성 덕분에 손님도 오히려 늘고 있다”면서 “오늘 손님 가운데 한 30%는 개고기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A씨의 가게는 오늘 장사를 위해 흑염소 9마리, 개 4마리를 준비했는데, 재료를 모두 소진했다.
식당가 중간에 자리한 다른 음식점 사장 B씨 역시 “오늘 점심에만 200명 정도는 온 것 같다”면서 “대부분 염소나 오리를 찾지만 개고기를 찾는 분들도 계셨다”고 했다. B씨의 가게 앞 냉장고 유리문 안으로는 한가득 쌓인 손질된 개고기가 보였다.
음식점 사이 사이에 있는 건강원에는 정육 된 개고기를 매대에 놓고 팔고 있었다. 건강원 사장 C씨는 “예전에 비해서 직접적으로 고기를 사는 분들은 많이 줄었지만, 개고기를 찾는 분들이 계신다”면서 “작년에는 열 분이 오시면 다섯 분은 개를 찾으셨지만, 지금은 세 분 정도 찾으신다”고 했다.
이날 모란시장에서 개고기는 1㎏에 2만5000원, 염소고기는 4만8000원에 팔렸다. C씨는 개식용금지법이 통과한 이후 많은 도축장이 문을 닫으면서 개고기 가격도 30%가량 올랐고, 염소로 수요가 옮겨가면서 염소 가격 역시 35% 정도 뛰었다고 설명했다.
보양식을 먹기 위해 모란시장을 찾은 소비자들은 개 식용을 법으로 금지한다는 데 반감을 표하기도 했다. 서울 노원에서 보신탕을 먹고 개고기를 구입하기 위해 모란시장을 찾았다는 김모(60)씨는 “여름마다 기운을 찾기 위해 모란시장을 찾아 개고기를 먹는데 앞으로 3년 후면 못 먹게 생겼다“며 “반대를 하는 분들의 마음은 알겠지만, 식용을 위해 기르는 개를 애완견과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경기 안양에서 시장을 찾았다는 60대 윤모씨는 “세월 따라 세상이 변한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입맛을 정부가 강제적으로 옥죄겠다는 게 말이 되냐. 먹고 싶은 사람들을 어쩔 것이냐”면서 “나는 법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나는 여태껏 먹어와서 안 먹고는 안된다. 왜 막는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시민들도 있었다.
개식용금지법에 따라 오는 2027년부터는 개를 식용 목적으로 도살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또 사육·증식·유통·판매하는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수요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처벌 규정 발효에 따라 판매가 금지되는 셈이다.
모란시장 상인들은 시대가 바뀌어서 하는 수 없이 받아들인다는 입장이지만, 생업의 일부를 포기하게 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어떠한 상생안도 내놓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했다. 식당 주인 A씨는 “법으로 금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생계 대책이나 보상 등에 대한 논의 없이 장사를 못 하게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냐”면서 “여태 간담회 한번 없었다”고 말했다.
김용복 모란가축상인회장 역시 “대통령 부인 하나로 보신탕이라는 전통 자체를 다 없애버린 것에 대한 반발이 심하지만, 이미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상황”이라며 “다만, 개고기를 팔지 못하게 하고는 정부에서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시장 인근에 염소와 닭을 도축하던 시설마저도 지난 3월 철거하면서 상인들의 애로사항만 더 커졌다”라고도 했다. 상인회에 따르면 현재 모란시장에는 음식점과 건강원·축산물 매장 등을 비롯해 약 25곳의 가게가 식용 개를 팔고 있다.
관할 지자체인 성남시는 개식용금지법의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와 기획재정부 간의 논의가 끝나야 상인들과의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성남시청 관계자는 “현재는 법에 따라 신고 및 이행계획서를 제출받아 농식품부에 넘긴 상태”라면서 “아직 보상 관련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업 또는 폐업을 빨리하시는 분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 등 여러 가지 의견을 내고 있지만, 결국 농식품부와 기재부에서 보상 관련 사항을 결정해야 상인 분들과 논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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