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 말이 아닌 눈빛으로 전하는 이야기 [MD리뷰]
[마이데일리 = 이정민 기자] 영화 스코어가 주는 의미는 분명히 있다. 몇 백만 관객을 당연하다는 듯 동원하는 영화도 있지만, 어떤 영화에게는 3만 관객이 주는 의미가 훨씬 더 클 수도 있다.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가 지난 13일 3만 관객을 넘어섰다. 요즘처럼 극장에 다양한 볼거리로 넘쳐나는 상황에서, '퍼펙트 데이즈' 관객 수 3만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길을 걷다 나무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을 느끼는 순간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고지)는 매일 아침 일어나 이불 정리하고, 식물에 물 주고, 주방 싱크대에서 세수하고 수염을 다듬는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는 지갑, 열쇠, 카메라, 동전을 챙긴 후 집을 나선다. 그리곤 집 앞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아 마시고,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골라 틀고 일터로 향한다. 그가 도착한 곳은 도쿄 시부야의 한 공중화장실이다.
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는 변기를 열심히 닦는다. 거울까지 꺼내 꼼꼼하게 확인한다. 일하던 중 혼자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엄마를 찾아 나선다. 아이 엄마는 히라야마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허겁지겁 물티슈를 꺼내 아이 손을 닦는다. 이처럼 히라야마는 일하는 동안 불쾌하고 불편한 순간들을 겪지만, 그럴 때마다 별일 아니라는 듯 웃는다. 그 웃음은 마치 살면서 속상한 일이 있어도 괜찮다고 관객에게 전하는 위로처럼 느껴진다.
영화에서 히라야마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빔 벤더스 감독은 히라야마의 말 대신 무거운 움직임과 표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감독은 관객들이 인물의 표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클로즈업 앵글을 많이 사용해 전달하는 메시지의 밀도를 높인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히라야마 역을 맡은 배우 야쿠쇼 고지가 왜 76회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는지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아름다운 순간이 주는 소박한 행복
영화가 끝난 후 스크린에는 ‘고모레비(こもれび)’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일본어로 '나무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을 의미한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뜻하며, 이 순간은 단 한 번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감독이 이야기한 ‘고모레비’ 이 단어처럼 ‘퍼펙트 데이즈'는 일상에서 빛나고 소중한 순간들을 그려낸다.
히라야마의 일상은 단조롭지만 그는 그 속에서 경이로움을 찾는다. 남들이 더럽힌 변기, 이해할 수 없는 노숙자의 움직임 그리고 자신을 불쾌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까지. 히라야마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영화에서 히라야마는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대사를 통해 현재의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한다. '퍼펙트 데이즈'는 그런 소박한 순간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주는 영화다.
지난 3일 개봉. 극장 상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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