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도 교실’인 문화유산 교육 70년…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 특별전 열려
함순섭 경주박물관장도 졸업생, “박물관 교육의 중요성, 가치, 역사와 성과 조명”
“하늘도 내 교실 땅도 내 교실~”. 국립경주박물관 함순섭 관장(59)이 나즈막하게 읊조린다. 초등학생이던 50년 전, 매주 토요일 오후면 찾았던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 교가의 한 구절이다.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던 박물관선생님들의 말도 떠올렸다.
1954년 10월 10일,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에서는 아주 ‘특별한 학교’가 문을 열었다. 번듯한 교실은 없었지만 문화유산의 소중한 가치를 가르치고 배운다는 그 뜻은 하늘, 땅만큼 컸던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던 때다. 의식있는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교육에서 미래를 구했고, 아이들은 하늘도 땅도 내 교실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하나 둘 모여들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 첫 수업은 국립박물관 경주분관(현 국립경주박물관) 관장실에서 열렸다.
국립경주박물관의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가 올해로 개교 70주년을 맞았다. 힘든 시기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문을 열었고, 개교 70주년 기념 특별전 ‘함께 지킨 오랜 약속’이 경주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16일 막을 올린다.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는 그동안 6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함순섭 관장도 졸업생 중의 한 명(제 21기)이다. 50년 전 어린 초등학생을 박물관학교가 박물관장으로 키워낸 것이다.
“1974년 처음 박물관학교(당시 경주어린이향토학교)에 갔죠. 매주 토요일 오전엔 학교, 오후에는 박물관학교에서 금관·토기 같은 유물을 보고,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를 배웠습니다. 신기한 게 많아 아주 재미있었어요.”
함 관장은 중·고등학생 때도 토요일 오후에는 박물관학교 학생이었다. 박물관학교는 ‘뮤지엄 키즈’이던 그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경북대 사학과로 진학했고, 대학원에서는 고고학을 공부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첫 직장이었다. 금관, 장신구 등 삼국시대 금속공예품 연구의 권위자로 그동안 굵직굵직한 전시를 기획했다. 여러 국립박물관 개관에도 참여했으며, 국립대구박물관장에 이어 2022년 경주박물관장으로 취임했다.
“어린이박물관학교 학생이던 제가 관장으로서 70주년 특별전을 마련하다니, 그 감회를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는 국내 박물관학교는 물론 학교 밖 사회교육에 큰 의미, 족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유네스코(UNESCO)로 부터 박물관 교육에 있어 선진적·모범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죠.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박물관학교를 만드신 선생님들께 감사하죠.”
박물관학교는 당시 유학파 출신으로 풍속인형·토우 제작과 함께 경주 역사·문화교육 활동을 펼치던 ‘영원한 신라인’ 윤경렬(1916~1999), 미술사학자이자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장이던 진홍섭(1918~2010) 전 이화여대 교수, 문화고등학교 이승을 교감, 경주분관 박일훈 학예연구사가 주도했다. 당시 운영 규칙은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돈은 절대 받지 않는다’ ‘수업은 존댓말로 한다’는 세 가지였다. 물론 지금도 지켜진다.
그동안 ‘경주어린이향토학교’ ‘경주박물관학교’ 등 이름이 비뀌고, 수업 장소도 여기저기 옮겨다니기도 했지만 박물관학교는 늘 열렸고, 지금도 아이들과의 만남은 계속된다. 그래서 이번 특별전의 제목이 ‘함께 지킨 오랜 약속’이다. 특별전은 가르침과 배움으로 만나 70년을 쌓아온 박물관학교의 역사와 성과·의미, 또 70년을 이어온 많은 사람들의 뜻과 정성을 조명한다.
당시 교가 악보(윤이상 작곡, 윤경렬 작사)를 비롯해 졸업생들의 기증품, 사진, 기록물, 다양한 영상 등 모두 80여점의 전시품이 나왔다. 박물관학교 개교와 성격, 배움의 과정, 체험수업과 갖가지 활동들, 여기에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나누고 공유하는 기억과 기대 등이 전시장에 펼쳐진다.
함 관장은 “이번 특별전이 어린이박물관학교, 어린이와 성인을 포함한 학교밖 사회교육의 중요성과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경주 시민들은 물론 여행으로 경주를 찾는 어린이와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이 찾아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물관학교는 앞으로 다양한 자료를 수집·정리해 개교 100주년이 되는 2054년까지 아카이브를 구축해나갈 계획이다. 전시는 9월 22일까지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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