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공업화로 사라진 황성동·떠오른 삼산동 변천사 책자 발간

김세은 기자 2024. 7. 1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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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석유화학공단이 개발되며 사라진 마을 '황성동'과 평범한 들판에서 울산 최대 번화가로 성장한 '삼산동'의 변천사를 비교한 책자가 발간됐다.

울산시는 15일 오후 2시 시의회 1층 시민홀에서 '모임과 흩어짐 1995' 책자발간 발표회를 열고, 삼산동과 황성동의 과거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전시했다.

책자발간에 참여한 울산역사연구소는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삼산동과 황성동 현장 일대를 조사하며 토박이 주민들의 구술 인터뷰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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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울산시 '모임과 흩어짐 1995' 책자발간 발표회 개최
울산시가 15일 오후 2시 시의회 1층 시민홀에서 ‘모임과 흩어짐 1995’ 책자발간 발표회를 개최했다. 2024.7.15/뉴스1 ⓒ News1 김세은 기자

(울산=뉴스1) 김세은 기자 = 울산 석유화학공단이 개발되며 사라진 마을 ‘황성동’과 평범한 들판에서 울산 최대 번화가로 성장한 ‘삼산동’의 변천사를 비교한 책자가 발간됐다.

울산시는 15일 오후 2시 시의회 1층 시민홀에서 ‘모임과 흩어짐 1995’ 책자발간 발표회를 열고, 삼산동과 황성동의 과거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전시했다.

‘모임과 흩어짐 1995’는 석탄 개발이 본격화된 1995년을 기점으로 삼산동과 황성동의 변화가 극명하게 대조되는 데 착안해 지어진 제목이다.

개발 이전 삼산동은 벼가 자라는 드넓은 들판이었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도시개발로 불과 4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울산의 주요 상업시설과 주거단지가 모여들었다.

반면 과거 삼산동보다 주민이 더 많았던 황성동은 석유화학공단과 항만개발이 진행되자 마을이 철거돼 주민 없는 산업단지로 변모하게 됐다.

책자발간에 참여한 울산역사연구소는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삼산동과 황성동 현장 일대를 조사하며 토박이 주민들의 구술 인터뷰를 기록했다.

또한 과거 지적도와 항공사진을 수집하며 수십년간 변화된 울산 남구의 지형을 관찰했다.

그 과정에서 삼산동에 있었던 삼산비행장과 정동강, 여천강, 염전의 정확한 위치를 처음 확인하게 됐다.

특히 삼산비행장은 1928년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설치한 한반도 최초 민간 항공용 비행장이다.

이는 당시 삼산동 부지가 부산을 제외한 동남해안 중 토목공사가 거의 필요 없는 광활한 평지라는 이유로 설치됐다고 전해졌다.

김두겸 시장은 이날 발표회에서 “울산의 역사는 공업의 역사이기 때문에 울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잊히지 않도록 기록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울산역사연구소는 도시화 물결 속에 사라졌거나 크게 변모한 울산의 주요 장소를 다각도로 조사하고 기록해 지역사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두겸 시장은 남구청장 재임 당시 ‘잊혀 가는 울산의 역사를 되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돼 시장 취임 이후 지난해 3월 울산역사연구소를 개소했다.

울산역사연구소는 현재 ‘광역시 승격 30주년 시사편찬’을 본격 추진 중이며, 올해는 성남동과 옥교동을 중심으로 생활문화자료를 조사하고 있다.

울산시가 15일 오후 2시 시의회 1층 시민홀에서 ‘모임과 흩어짐 1995’ 책자발간 발표회를 개최했다. 김두겸 시장이 시민홀에 전시된 사진들을 보고 있다. 2024.7.15/뉴스1 ⓒ News1 김세은 기자

syk00012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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