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달 블랙박스 의무화 법안 발의 등 '급발진 논란' 관련 대책 잇달아
정부도 페달 블랙박스에 인센티브 제시
정부 "'소비자 보호 노력'으로 인정 설득"
기존차량은 보험료 특약으로…업계 협의
[서울=뉴시스]이연희 기자 = 16명의 사상자를 낸 시청역 역주행 교통사고 이후 연일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국회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 예방 및 규명을 위해 자동차 제조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이 속속 발의되고 있다.
정부도 완성차 제조업계에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한 신차를 출시하면 자발적 시정초치(리콜) 과징금을 최대 절반까지 감경해주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15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준호 의원은 지난 12일 자동차 급발진 등 일반인이 결함을 입증하기 어려운 제품에 대해 제조사가 직접 입증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 법령은 제조물 결함으로 추정되더라도 피해자가 직접 원인을 증명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등 복잡한 제조물은 일반 소비자가 이를 입증하기 위한 기술적 이해가 부족하고 자료를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접수된 급발진 신고는 236건으로 이 중 실제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미국은 이른바 '그린맨' 사건 이후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엄격한 책임제'를 적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지난 2022년 제조업자가 피해자가 요청한 증거를 공개하지 않으면 제조물 결함으로 추정하도록 해 피해자 입증책임 규정을 대폭 완화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22년 원주에서 할머니가 몰던 차량의 급발진 의심 사고로 손주가 사망한 사건으로 이번에 정 의원이 제출한 것과 동일한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법안은 산업계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공정거래위원회 반대로 폐기됐다.
지난 8일에는 의심사고가 발생했을 때 자동차 결함인지 운전자의 실수인지 규명할 수 있는 자동차 페달 블랙박스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한 법안도 발의됐다.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은 페달 블랙박스 장착을 의무화하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의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에 따르면 페달 블랙박스 기술 개발 기간을 고려해 법령 공포 후 3년간 유예하고 새로 만든 차량에만 적용하도록 했다.
페달 블랙박스는 운전석 대시보드 아래 발밑 공간에 설치해 운전자가 어떤 페달을 밟는지 녹화하는 장치다.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하면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전자가 감속 페달(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차량이 앞으로 나아갔는지, 가속 페달(엑셀)을 밟고 브레이크로 혼동한 실수인지 증명할 수 있게 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0월 완성차 제조사에 한 차례 페달 블랙박스 설치를 옵션에 포함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제조사들은 사고기록장치(EDR·Event Data Recorder) 등으로 사고 원인을 분석할 수 있고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하려면 자동차 설계 자체를 변경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지난 1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페달 블랙박스 의무화에 대한 질의를 받고 "개인적으로는 제 차에 블랙박스를 달려고 한다"면서도 "자발적으로 유도해나가는게 우선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강제로 의무화하는 건 또 다른 마찰이 있을 수 있다"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국토부는 조만간 국내외 완성차 제조사에 신차 출고 시 페달 블랙박스를 장착하도록 재차 권고할 계획이다. 내달 14일 자발적으로 자동차 안전·소비자 보호에 적극 참여하는 경우 리콜 과징금을 일부 감경하는 내용의 자동차관리법이 시행되는데 이 중 ▲첨단기술 도입 안전장치 설치 무상지원 ▲차량 무상점검 등과 함께 '페달 블랙박스 설치'도 감경 사유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유권해석을 할 계획이다.
기존 차량에 대해서는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운전자에게 '블랙박스 특약'처럼 자동차 보험료 일부를 할인해주는 특약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장착을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보험업계에서는 이 같은 인센티브안에 부정적이다.
이처럼 관련 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완성차 제조업계와 보험업계 등의 반발을 극복하고 설득할 수 있을지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사고 원인이 급발진으로 밝혀지면 보험사는 차량 제조사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인정 사례는 나온 바 없다.
국토부 한 간부는 "법 개정으로 페달 블랙박스 설치가 의무화되면 설계 변경 등 업계 영향이 큰 만큼 가급적 권고를 통해 과징금 경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설득해나갈 것"이라며 "기존 차량의 페달 블랙박스 설치를 유도하기 위해 전·후방 블랙박스와 함께 3종 세트로 보험료 특약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보험업계와도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dyhle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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