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팬데믹이 올까 [똑똑! 한국사회]
강병철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출판인
지난 6월14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전 국장인 로버트 레드필드가 텔레비전에서 조류독감 팬데믹이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몇몇 언론에서 다루었지만, 그런 경고가 나온 것이 한두번이 아니고 2009년 돼지독감도 팬데믹 선언까지 했지만 심각하지 않았다며 가벼이 넘기는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역사를 보자. ‘조류독감’이란 말 그대로 야생조류와 가금류의 독감이다. 1959년 스코틀랜드의 닭에서 H5N1 균주가 처음 발견됐다. 가금류의 가벼운 질병을 일으키던 이 균주는 1990년대 중반 돌연변이가 일어나 감염된 닭이 48시간 내 모두 폐사할 정도로 독성이 강해졌다. 현대의 집약형 축산에 적응한 것이다. 1997년에는 최초로 인간 감염이 확인됐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03년부터 현재까지 23개국에서 889명이 감염돼 463명이 사망했다. 사망률이 50%를 넘는다. 2013년 상하이에서 발견된 두번째 균주 H7N9는 아직 중국에 국한되지만 2018년까지 1532명을 감염시켜 581명이 사망했다. H5N2와 H5N8도 있다. 모두 닭이나 칠면조 등 가금류에서는 폐사율이 100%에 이른다.
지구가 펄펄 끓어도 화석연료와 무분별한 소비를 포기하지 못하는 인류가 사람 몇 죽고 닭이나 오리가 폐사한다고 해서 집약형 축산을 포기할 리 없다. 우리는 우리만 알지만, H5N1은 2000년대 초 야생조류에서 최악의 독감 팬데믹을 일으켰다. 헤아릴 수 없는 새들이 몰살했다. 2005년 티베트 칭하이 호수에서는 며칠 만에 지구상 남은 인도기러기 개체 수의 10분의 1이 폐사하기도 했다. 이 동물 팬데믹은 야생조류와 가금류를 오가며 아직도 진행 중이다. 급기야 바이러스는 종간 전파를 시작했다. 2005년만 해도 H5N1이 흰담비를 감염시킬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화제가 됐지만, 올해 들어 미국에서는 H5N1에 감염된 젖소가 계속 늘어 현재 129마리에 달한다. 더 놀라운 것은 H5N1에 감염된 고양이, 집쥐, 너구리, 스컹크, 여우가 계속 발견된다는 점이다. 멕시코에서는 그간 인간을 감염시키지 않던 H5N2에 의한 사망자도 나왔다. 학자들은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포유류에 완전 적응해 인간을 침범할 준비를 끝냈다고 본다. 조류독감 인간 팬데믹은 시점이 문제일 뿐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독감에 대한 대응은 두 가지, 백신과 치료제다. 항인플루엔자 항체나 모든 균주를 막는 범용 인플루엔자 백신도 개발 중이지만 아직 쓸 수 없다. 타미플루 등의 치료제는 거대 제약 자본의 마케팅과 협잡에 관한 논쟁에 휩싸여 있다. 조기 투여하면 도움이 된다지만, 전반적으로 질병 경과를 ‘딱 하루’ 줄이는 데 그친다고 보는 전문가도 많다. 치명적인 팬데믹이 닥친다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미지수다.
결국 최대한 빨리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만들어야 한다. 팬데믹 대응 원칙은 새로운 유행을 감시하고, 빨리 발견하고, 확산을 막기 위한 공중보건 조처를 실행하면서, 백신을 개발할 시간을 버는 것이다. 이미 미국은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에 착수했다. 임박한 유행을 발견한 단계로 보는 것이다. 우리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을 텐데, 이번 정부의 실력을 보면 영 미덥지 못하다. 끝없이 계속되는 의료 대란이나 빨리 수습하기를 바랄 뿐이다.
시민사회는 뭘 해야 할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지 얼마 안 되었다. 그 경험을 소중하게 쓸 수 있다. 시민의식을 발휘해 아플 때 집에서 쉬고,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 입과 코를 가리고, 손을 자주 씻는 등 공중보건 조처를 실천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백신을 배격하는 음모론을 거부하며, 선정적인 언론과 비과학적인 정치권을 견제해야 한다. 국제적으로는 팬데믹이 한 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깨닫고 의료 자원을 나누며 연대해야 한다. 다가올 팬데믹의 시대에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공감 능력과 나누는 마음을 시험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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