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세계질서와 동맹: 2024 나토정상회의 의미
미국 정부가 2022년 10월에 국가 대전략을 담은 최상위 문서인 국가안보전략서(National Security Strategy)를 발간하자 세계는 충격을 받았다. ‘탈냉전이 확실히 종식되고 주요 강대국간 경쟁이 심화되는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라는 주장 때문이다. 1945년 이래 미국의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제질서를 구축한 후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하고 사실상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자리한 탈냉전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향후 10년이 세계질서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임을 적시했다.
미국 정부가 이러한 세계질서 변화를 천명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2022년 2월 24일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가 감행한 우크라이나 불법 침공이다. 이 전쟁은 1945년 유엔이 성립되면서 전쟁을 막고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거부권과 핵무기 독점권이라는 절대 권한을 준 5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인접 주권국가를 영토 합병을 목적으로 무력 침공한 첫 사례이다.
이후 세계는 하마스의 무자비한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테러와 이에 대응하는 이스라엘의 무차별적 공세를 목격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불법행위로 국제사회에 제재를 받는 북한과 러시아가 냉전 시기인 1961년 체결하였다가 폐기된 동맹조약을 사실상 부활하는 퇴행적 행보를 감행했다. 더불어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시기인 2018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미국과 중국간 ‘전략적 경쟁’도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할 때 미 국가안보전략서가 공포한 ‘탈냉전의 종식’은 안보와 번영을 위해 구축한 기존 질서 부정으로 이해된다. 더불어 올 11월 미국 대선에 자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귀환 가능성이 커지면서 불확실성이 더 증폭되고 있다.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 회복이 곧 ‘국익’
이러한 엄중한 상황에서 7월 9일부터 11일(현지시간)까지 미국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나토정상회의는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도 인도·태평양의 미국 핵심 동맹국 4개국(Indo-Pacific 4: IP-4)의 일원으로 3년 연속 참여하였다.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성과는 이른바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여기에 도전하는 세력을 명확히 규정하며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마련된 것이다.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는 주권존중, 자유무역, 법치, 힘을 통한 현상 변경 반대, 항행의 자유, 핵 비확산, 국제법 존중,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분쟁 해결 등 한국이 안보를 보존하고 번영을 이룬 기본 원칙이다. 이러한 가치를 공유하는 ‘유사국가’(like-minded countries) 36개국이 변화하는 세계정세에 방향타를 확실히 하고 대응하자며 힘을 합친 것이다.
한국의 관점에서 볼 때 향후 책임이 커지지만, 한국의 안보와 번영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모였다. 우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불법 침공에 대한 공동 대응을 구체화하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수차례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것을 고려하여 ‘우크라이나를 위한 나토 안보 지원 및 훈련 기구(NSATU)’ 설립에 합의하고 2025년 최소 400억 유로(약 60조원) 규모의 군사 장비·훈련을 약속했다. 한국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나토 신탁기금을 올해 1,200만 달러(약 165억원)에서 내년 2,400만 달러(약 331억원)로 두 배 증액하기로 공약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확인된다.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을 위한 물자를 지원하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러시아와 사실상의 동맹조약을 체결하면서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에 실존적 위협이 되는 주요 무기 체계 및 핵심 군사 기술 이전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하지 못한다. 북한이 지난 두 차례 발사한 군사정찰 위성은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협력했음이 확인된다. 일부에서는 한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사회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유화적인 대러 정책을 취했다면 러시아가 북한과 협력을 제한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한다. 그러나, 북한이 제공하는 포탄과 탄도미사일이 절실한 러시아는 한국의 태도와 상관없이 북한과 협력을 강화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이를 통해 한국은 두 가지 교훈을 얻게 된다. 유럽에서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반도 안보 상황과 직접 연계된다는 것과 북러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한 협력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토 동맹국과 협력하여 ‘무력에 의한 영토변경 반대’라는 국제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국익’이다.
유럽의 안보와 아시아의 안보, 동전의 양면성
나토 국가는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에 더욱 관심을 두고, 인태 4개국과 협력을 강화할 것임을 천명했다. ‘워싱턴선언’으로 명명되어 발표된 총 38개 항의 나토 공동성명 중 인태지역과 협력 강화도 포함되었다. 나토와 인태 4개국은 우크라이나, 사이버안보, 허위정보, 기술 등의 분야에서 공동대응하고 나아가 해양안보, 비확산, 대테러 분야 등으로 확장하려 한다.
지난 3년 회의 중 처음으로 ‘인도 태평양과 유럽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는 러-북 간 불법 군사협력을 강력히 규탄한다’라는 내용도 담았다. 나토와 인태 국가 협력은 미국이 주도하여 구축 중인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의 일환이다. 2022년 미 국방전략서가 공식화한 통합억제는 대서양의 나토 동맹국과 인태 지역의 미국 핵심 동맹국을 ‘연맹(federate)’하여 대비태세를 강화하는 것이 골자이다.
풀어쓰면 유럽 혹은 인태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36개국이 힘을 합쳐 공동대응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통합억제가 발전하면 북한에 대한 억제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북한은 한미일 외에도 나토 국가가 포함된 거대한 군사 협력체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 일부에서 한국의 동참이 통합억제가 목표로 하는 주 대상인 중국 견제로 연계되어 부담이 클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그러나,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과 람 이매뉴엘 주일 미국 대사 등이 공개적으로 밝힌 것처럼 미국이 동맹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환(major transformation)’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불참하거나 거리를 두는 것은 사실상 선택지가 아니다. 한국이 동참을 거부한다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훼손되며 동맹구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홀로 남기’가 된다. 한국은 북한과 같이 철저히 독립적인 ‘주체’를 내세워 외세를 배제하고 자력갱생을 통해 고난의 행군을 하는 비정상 국가가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회의에서 밝힌 윤석열 대통령의 ‘유럽의 안보와 아시아의 안보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라는 인식은 맞다.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허울을 쓰고 수동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한국은 세계 10위 내에 드는 군사력과 10위권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가치를 공유하며 기존 질서를 유지코자 하는 35개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수호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북한도 동 질서에 동참토록 하는 것이 한국이 나아갈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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