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프코어, 소프트뱅크에 인수·· 왜 왕년의 기대주는 추락했나

남시현 2024. 7. 1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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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남시현 기자] 일본계 투자회사 소프트뱅크가 영국의 AI 반도체 기업 ‘그래프코어’를 전격 인수한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이 지난 5월 심도있는 인수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한지 두 달만의 일이다.

소프트뱅크 그룹이 그래프코어를 인수한다. 사무실 및 고용은 유지하며 개발을 이어나간다 / 출처=그래프코어

인수 금액 및 계약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개된 바는 없지만, 약 5억 달러(약 6914억 원)에 인수됐을 것으로 추산한다. 소프트뱅크가 그래프코어를 인수한 이유는 인공 일반지능(AGI) 실현 여정의 일환으로, 나이젤 툰 그래프코어 CEO는 이 거래가 엄청난 지지를 받고, 영국에서 더 많은 채용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엔비디아 맞섰던 그래프코어, 왜 이렇게 됐나?

그래프코어의 지능 처리 장치, 콜로서스 / 출처=그래프코어

그래프코어는 2016년 사이먼 놀스, 나이젤 툰이 설립했다. 주력 사업은 인공지능 분석에 맞춰 개선한 IPU(Intelligence Processing Unit, 지능 처리 장치)로, CPU와 GPU와 또 다른 방식의 인공지능 전용 처리 장치다. IPU는 CPU, GPU와 달리 칩 내부에 메모리를 배치해 입력 지연을 줄이고, 전력 효율은

그래프코어는 설립 직후에 삼성전자를 비롯해 6개의 벤처케피털이 붙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고, 2017년 7월에 B라운드 투자 유치 및 5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각각 유치했다. 최종적으로 시리즈 E 투자를 받은 2020년에는 총 기업달러 가치가 28억 달러(약 3조 8715억 원)에 달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델 테크놀로지스 등이 투자에 참여할 정도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19년에는 그래프코어 C2 IPU가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클라우드에 탑재됐고, 에든버러 슈퍼컴퓨팅 센터(epcc)도 그래프코어 IPU를 채택했다. 국내에서도 NHN클라우드가 서비스로 제공하고, KT 역시 하이퍼스케일 AI 서비스에 IPU를 탑재하는 등 성과를 냈다. 그래프코어는 2023년에 차세대 인공지능 컴퓨터, ‘굿(Good)’을 가동해 올해 상용화할 생각이었다. 아쉽게도 여기까지였다.

생성형 AI 품귀로 자체 반도체 수요 급증, 설 자리 잃어

그래프코어의 성장세가 갑자기 꺾인 이유는 생성형 AI의 대두가 주요 원인이다. 그래프코어가 사업을 시작한 2016년만 해도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 기업은 엔비디아뿐이었다. 2022년까지도 AI 반도체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적었고, 많은 투자자들도 시장 가능성에 투자했다. 하지만 다목적으로 쓸 수 있는 GPU와 달리 IPU는 용도가 한정적이고 소프트웨어 지원도 부족했다. 또한 기존 산업에서 AI 개발에 필요한 도구모음과 호환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프코어의 차세다 반도체 보우 IPU의 대략적인 메모리 구조도 / 출처=그래프코어

특히나 생성형 AI가 대두되면서 기계학습과 생성형 AI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나, 그래프코어의 제품은 높은 초기 도입 비용에도 투입 대비 산출을 확인할만한 명확한 사례가 없었다. 앞서 epcc를 비롯해 영국 하트리 센터, 미국 아르곤 연구소, 영국의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 ‘브루넬 AI 프로젝트’ 등 비영리 목적의 대규모 사업 도입에 집중하다 보니 시장에서 참고할만한 사례가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도입 1년 만에 그래프코어 지원을 그만둔 사례였다.

그래프코어의 패착도 있지만, 얼마나 엔비디아가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 출처=그래프코어

생성형 AI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 AWS, 구글 클라우드 모드 Arm 기술을 기반으로 자체 AI 반도체를 취급하면서 그래프코어가 설 자리는 더욱 줄었다. 하물며 기존 AI 개발 생태계와 잘 호환되지 않아 더더욱 매력이 없었다. 시장은 상업적 가치를 목적으로 형성되고 있지만, 그래프코어는 이익 창출보다는 사례 구축에 더 적합한 정부 사업에 집중한 것이다.

IPU의 제한된 활용도와 잘못된 시장 타깃, 성과 없이 투자만 요구한 결과로 결국 그래프코어는 2024년 초 매각을 선언했고, 투자처를 찾지 못하다 소프트뱅크가 헐값에 인수하게 됐다.

소프트뱅크 인수, 기업은 생존·직원은 손해

올해 2월, 블룸버그는 소프트뱅크가 ‘AI칩 벤처’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고 영국의 자율주행차 스타트업인 웨이브(Wayve)를 인수한 바 있다. Arm에 도움이 될만한 거래를 모색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이번 인수 역시 마찬가지다. 소프트뱅크는 엔비디아에 대응해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만들어 데이터센터 시장의 가치 창출을 노리고 있고, 실제로 이번 인수를 통해 기존에 그래프코어가 뚫을 수 없었던 기업 시장 납품을 소프트뱅크의 경로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투자자나 임직원 입장에서는 나쁜 일이다. 총 기업가치가 28억 달러에 달했지만, 영국의 시프트드는 회사 매각 가격이 지금까지 투자한 총 금액인 7억 달러(약 9678억 원대)보다 적고, 우선주를 보유한 투자자에게만 지불금이 지불될 것이라는 거래 합의를 확인했다. 또한 임직원들 역시 회사 가치 폭락으로 인해 스톡 옵션이나 제한적 주식 단위(RSU)로 보유한 보통주로는 아무것도 받지 못할 예정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 10월 특별강연에서 "소프트뱅크를 세계에서 가장 AI를 많이 활용하는 그룹으로 만들고 싶다”라 말했다 / 출처=소프트뱅크그룹

결론적으로 그래프코어의 인수는 막연한 시장에 대한 기대만으로 반도체 시장에 투자하는 수요를 줄이고, AI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향후 미래를 고려한 정확한 시장 판단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긴다. 만약 그래프코어가 생성형 AI에 대한 가능성을 보고 설계를 시작했다면 이처럼 시장의 외면을 받진 않았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인 2015년 창업한 세레브라스(Cerebras)만 해도 독자적인 생태계가 아닌 GPU 대체제를 내세우고, 서버 시장 납품을 최우선으로 해 주목할만한 대체제로 떠오르는 데 성공했다. 올해 안에 기업 공개를 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우리나라 역시 AI 반도체 기업이 적지 않다. 그래프코어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시장 가능성을 최대한 확보하고, 보여줄만한 사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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