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아베 목소리 들려 살았다"…농담에 낚인 일본 극우 열광
일본 극우 활동가, 사실로 추정하고 인용
조회수 2000만 넘기며 기정사실화…원글 삭제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총격을 당하기 직전 고개를 돌려 화를 면한 것과 관련해 '죽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도움을 받았다'는 농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자, 일본 극우 인사와 누리꾼이 사실로 믿으며 감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15일 미국 CNN방송 등 외신을 종합하면 사건 당일 펜실베이니아주(州) 버틀러에서 선거 유세 중이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불과 120m가량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저격당했다. 그는 총격 직전 불법 이민자 수치 관련 도표를 띄운 뒤편 대형 화면으로 고개를 돌린 덕분에 총알이 머리에 맞지 않고 대신 오른쪽 귀를 관통했다.
이와 관련해 로니 잭슨 연방하원의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만약 그 순간 불법 이민 도표를 가리키면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면 총알은 내 머리에 명중했을 것이다. (불법 이민을 단속하는) 국경수비대가 나를 살렸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NYT)에 전했다. 사실상 도표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살린 셈이다.
그런데 한 누리꾼이 장난으로 '아베 전 총리의 영혼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경고를 해준 것 같다'며 농담한 것이 일본에서 큰 화제가 됐다. 아베 전 총리는 2022년 7월 8일 일본 나라현에서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를 하던 중 총격을 당해 숨졌다. 아베 전 총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자였던 시절부터 찾아가 만나고, 여러 차례 정상회담과 골프 회동을 하는 등 생전 매우 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단은 14일 '파이러스(Pyrus)'란 아이디의 누리꾼이 엑스(X)에 영어로 올린 글이었다. 그는 기자가 "대통령님 왜 (총격 직전) 갑자기 머리를 돌렸나요"라고 질문하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잠시 나는 오래된 친구(아베 전 총리)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고 답했다는 농담을 올렸다. 글과 함께 아베 전 총리를 유령처럼 흐릿하게 편집한 사진도 첨부했다.
일본 극우 활동가이자 인플루언서인 하시모토 고토에는 이 글을 인용하며 "미확인 정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저격당하는 순간 탄환을 피한 데 대해 기자의 질문을 받고 '일본의 옛 친구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렸다'고 답한 모양"이라 전했다. 누리꾼의 농담을 사실로 착각하고 퍼 나른 것이다.
가짜뉴스 정정 대신 '차단'
하시모토의 글을 본 다른 우익 성향 누리꾼들도 농담을 인용하며 "아베의 영혼이 트럼프를 지켰다", "트럼프가 아베를 떠올리며 대답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고 열광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아베 전 총리가 2019년 정상회담을 개최하며 함께 골프를 치는 등 '밀월 관계'를 과시하던 시절의 사진을 연달아 올리기도 했다. 하시모토의 트윗은 게시 하루 만에 조회 수 2,150만 회를 넘겼다. 리트윗도 1만6,000회에 달했다.
일이 커지자 농담 글을 처음 올렸던 파이러스는 "사람들이 내 농담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만해!"라는 글을 올렸다. 이 누리꾼은 하시모토의 프로필을 올리며 "제 글을 인용한 일본 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사람은 누군가요?"라고 묻기도 했다. 그러자 하시모토는 글을 내리는 대신 그를 차단해 버렸다. 거짓말이 정정되지 않자 그는 결국 자신의 계정을 비공개 처리했다.
이 같은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지자 일본의 진보 성향 누리꾼들은 "오해를 풀어주려는 미국인을 오히려 차단하다니 웃기다" "일본의 트럼프 추종자들은 사이비 종교 숭배자라는 점에서 아베와 뜻이 맞는 것 같다"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저격한 토머스 매슈 크룩스(20)는 특정 이념에 연루됐거나 테러 범행과 연계된 흔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인 범행 동기는 아직 수사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총격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 경호와 관련한 독립 조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71417050003716)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71422460000319)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71413560002460)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71507170000166)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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