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의 이전투구, 이것은 몰락의 예고편인가 [박찬수 칼럼]
박찬수 | 대기자
권력의 결정적 붕괴는 내부로부터 시작된다. 2024년 7월 국민의힘 대표 경선은 그 단초인 것처럼 보인다. 한동훈·나경원·원희룡·윤상현, 네 명의 후보가 말로는 ‘윤석열 정권의 성공’을 외치지만, 그들이 벌이는 이전투구는 윤 정권의 몰락을 앞당길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의 한 인사는 “전당대회 양상을 보면 윤석열 정부를 에워싼 성채가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물론이고 당과 진영의 이해엔 아랑곳없이 오직 나만 살겠다는 사익 추구가 판을 친다”고 말했다. 이준석을 내쫓고 나경원을 주저앉힌 ‘윤심’은 현저하게 힘을 잃었다. 지난해 3·8 전당대회를 앞두고선 초선 의원 48명이 ‘비윤’으로 꼽힌 나경원 의원에 반대하는 연판장을 돌렸다. 이번엔 한동훈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연판장 시도가 원내는커녕 원외 당협위원장들한테도 먹혀들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시초는 2016년 3월 ‘친박·진박’ 논란 속에 벌어진 김무성 대표의 옥새 파동이었다. 그때처럼 지금 전당대회엔 ‘누가 진짜 친윤이냐’는 논란 외엔 어떤 비전도 없다. 한동훈의 당 대표 당선은 윤 정권의 분열과 내부 갈등을 점화하는 뇌관으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이번 전당대회에선 집권세력의 내부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총선 기간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문자를 보내 대국민 사과 문제를 논의하려 했다. 한 위원장이 답변하지 않고 무시한 게 후보 토론회에선 이슈가 됐지만, 본질은 따로 있다. 대통령 부인의 문자를 받은 게 어디 한동훈 한 사람뿐이겠나 하는 점이다.
총선 패배 직후 ‘박영선 국무총리-양정철 비서실장’ 설이 언론에 보도된 건 단적인 예다. 이 그림을 언론에 흘린 이는 대통령실 비서관 2명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김건희 여사 쪽이 비서실 라인을 통해 ‘박영선 총리설’을 언론에 흘렸다는 말이 나돌았다. 지난해 대통령실 안보실장과 의전비서관 교체에도 김 여사 입김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외교부엔 파다하다. 정부 인사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김건희라는 건 여권에선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진중권씨가 김건희 여사와의 57분 통화를 공개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김 여사는 주의 깊지 못하고 절제된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앞으로 ‘김건희 특검’이 시작되면 비서실 뿐 아니라 장·차관 또는 정부기관장, 국민의힘 인사들과 김건희 여사가 주고받은 문자 및 전화통화가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드러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건 최순실씨가 국정에 개입했던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과 뭐가 다른가. 대통령 부인이 남편의 조언자에 머물지 않고 직접 정부·여당 인사들과 관심 사안을 논의했다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국정을 주도하려 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한동훈 후보가 법무부 장관 시절에 사설 여론조성팀을 운영했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한동훈 장관에게 상당히 긍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콘텐츠 등을 유튜브 소스로 만들어 유튜버나 스피커들에 전달하고 유포해서 이미지와 여론을 조성하는 팀을 운영했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민정수석실을 없앴다. 중요한 민정 기능 중 하나인 공직자 인사검증은 최측근(그때의 한동훈은 그랬다)이 맡은 법무부에 줘버렸다. 막강한 권한이자 책임인 인사 검증은 누구도 알지 못하게 조용히 해야 하는 일이다. 그걸 지휘하는 사람이 저런 식의 여론 조성을 했다면, 공적 권한과 정보를 사적으로 활용한 위태로운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광범위한 인사 정보를 쥐락펴락했던 측근이 대통령에게 가장 날카로운 비수를 들어댈 것처럼 보이는 게 지금 권력 내부의 상황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은 예언과도 같았다. 텔레비전 토론에서 박근혜 후보는 “도곡동 땅이 누구 땅인지 검찰은 이미 다 알고 있다. ... 유일하게 이명박 후보 본인이 직접 한 사업은 망했고 그때 주가조작 사건(BBK)이 일어났다”고 공격했다. 이명박 후보는 “도곡동 땅이 어떻다고요? 비비케이가 어떻다고요? 다 새빨간 거짓말이다”라고 부인했다. 이 후보 캠프는 오히려 “박근혜 후보는 최태민이라고 하는 사람과 그의 딸 최순실이라는 사람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청와대도 행정부도 최태민 일족이 장악하지 말란 법이 없다”고 반격했다.
두 후보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었음은 나중에 국정농단 수사에서 확인됐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은 이명박-박근혜 두 대통령 몰락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국민의힘 대표 경선을 보면서 2007년이 자꾸 떠오르는 건 왜일까.
대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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