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욕설' 직장 내 괴롭힘일까, 아닐까…토론회 갑론을박
괴롭힘 판단 기준에 '지속·반복성' 포함 놓고 논쟁
"기록·증언 기대하기 어려워…문턱 높이는 역효과"
"ILO 협약엔 해당 요건 없어…법 체계에도 안맞아"
"구체적 요건 없어 현장 혼란 지속돼…허위신고↑"
[서울=뉴시스]권신혁 기자 = "심한 욕설을 들었는데 근로감독관이 일회성 행위라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고 합니다. 반복적인 행위가 아니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없나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받은 제보다. 최근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늘어나는 가운데, 허위신고를 예방하고자 '지속·반복성' 요건을 판단 기준에 포함하는 식으로 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노동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 같은 개정론이 피해 입증 난이도를 상향시켜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5주년을 맞아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직장 내 괴롭힘 패러다임의 전환: 갑질에서 안전으로' 토론회에서 이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동현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최혜인 금속노조 법률원 노무사, 김동희 한국경영자총협회 근로기준정책팀장, 한형진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사무관 등이 참여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의 요건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약화시키는 행위다. 이와 더불어 고용부와 법원은 괴롭힘 인정 여부를 판단할 때 그 기준으로 해당 행위의 '지속 및 반복성'을 활용하고 있다. 다만 이를 명시한 법적 규정은 없다.
정부와 경영계는 지속·반복성 요건의 흠결이 직장 내 괴롭힘의 허위신고로 이어지고 있다며 법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직장 내 괴롭힘 판단 기준' 발제를 맡은 김동현 변호사는 개정론이 실체적, 절차적으로 괴롭힘의 문턱을 높인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개정을 촉구하는 측이 내세우는 '허위신고'의 '허위'를 세가지 유형으로 나눠 분석하며, 지속·반복성이 법률상 요건으로 추가될 경우 직장 내 괴롭힘 입증 난이도가 올라갈 우려가 있다고 봤다.
1유형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존재한다고 하며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다. 이 유형은 전형적인 허위신고에 해당한다.
문제는 2유형과 3유형이다. 2유형은 갈등 상황이 존재하는 중 어떠한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는 경우, 3유형은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다.
김 변호사는 2,3유형을 두고 "엄밀히 말하면 허위 신고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3유형과 관련해 "지속·반복성 요건까지 추가하면 입증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피해 노동자는 괴롭힘 사실을 입증해야 하지만 객관적 기록이 없거나 동료의 증언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또 2유형에 대해서는 "지속적 내지 반복적의 객관적 기준을 요건으로 할 경우 갈등과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평가의 기준을 획일적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와 더불어 김 변호사는 지속·반복성 요건의 추가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했다.
ILO 협약 190호는 폭력과 괴롭힘의 정의로 "1회성인지 반복적인지와 무관하게"라는 문구를 명시하고 있다. ILO는 이 문구의 취지와 관련해 "객관적, 주관적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인지 반드시 고려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이를 두고 "일회적인 폭력과 괴롭힘을 그 범주에서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 범주 안에 포함시키면서 핵심적인 판단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정책국장을 맡고 있는 김태훈 공인노무사는 해당 요건 추가가 법 체계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괴롭힘 금지 법령 체계는 사업장 자율규제이고, 형사처벌이 없는 상황에서 반복성·지속성은 징계 양정의 적정성을 따지거나 손해배상 금액을 정할 때 살피는 요소"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를 괴롭힘 판단의 법정 기준으로 삼는 것은 법 체계의 정합성 측면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갈등과 근로기준법상 괴롭힘의 경계에 놓인 피해자들이 입증 책임까지 부담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날 토론회에서는 지속·반복성을 명시하는 법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동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근로기준정책팀장은 "현재 판단 기준에 지속·반복성 등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현장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괴롭힘 신고 건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취하하거나 법 위반 없음으로 처리되는 비중도 상당한 것을 보면 판단기준의 모호성으로 인한 허위, 과장 등의 신고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용부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건 현황 통계'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2019년 7월16일부터 지난 5월 말까지 접수된 신고는 모두 3만9316건이다. 이 중 신고취하 사건은 1만1998건, 법 위반없음은 1만1301건으로 조사됐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한형진 사무관은 "어느 한쪽 말만 듣고 제도를 개선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의견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서 어느 방향이 적절할지 전반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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