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피격] '대세론' 고무된 보수, 대결집 기세…혼돈의 反트럼프 진영
바이든 진영, 反트럼프 공세 멈칫…선거전략 다시 짜야 할 판
트럼프 강인함 대비되면서 바이든 후보 교체론 재점화할수도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트럼프 암살 시도' 사건으로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 구도가 격랑에 휩싸이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 진영 간에 희비가 엇갈린 가운데 양쪽 진영 모두 전열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공화당과 트럼프 캠프는 이번 사건으로 결정적인 승기를 잡았다고 보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투사' 이미지를 강조하며 핵심 지지층은 물론 보수진영 전체를 아우르려는 모습이다.
이에 비해 민주당과 바이든 캠프는 그동안 힘을 실어 온 '반(反)트럼프' 전략이 크게 흔들리면서 혼란에 빠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이전처럼 강하게 몰아붙이기 어렵게 된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리스크와 그에 따른 후보 교체론이 다시 불붙을 우려도 나온다.
'순교자 트럼프' 아래 뭉치자…보수 대결집 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추문 입막음 혐의 유죄평결 등 사법 리스크를 '정치박해'라고 주장해 온 트럼프 진영은 이번 암살미수 사건을 '정치폭력'으로 규정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기성 정치권의 핍박은 물론 암살 시도에서도 살아남았다며 '희생자', '불사조', '생존자', '영웅'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총격 직후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일어나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치켜든 모습으로 강력한 지도자의 면모를 부각하며 지지층은 물론 보수층 전체를 결집하려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총격 다음 날인 14일(현지시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 계정에 올린 글에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단결해 미국인의 기개를 보여주고, 강하고 결연하게, 악이 이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측은 또한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를 오는 15일 시작되는 전당대회 두 번째 날 연설자로 내세우며 당내 정적까지 포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내 온건파인 헤일리 전 대사는 공화당 경선에서 열세 속에서도 가장 마지막까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맞섰던 후보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경선 과정에서 자신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헤일리 전 대사를 향해 '새대가리 '등 원색적 표현을 쓰며 반감을 표해왔다.
그랬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주까지만 해도 전당대회 초청명단에도 없었던 헤일리 전 대사를 찬조 연설자에 넣자, 그가 이번 총격 사건을 계기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불리는 열성 지지층 외에 온건 보수층까지 포용하려는 '통합 행보'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헤일리 전 대사를 위해 활동하다 현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공화당 소속 정치자금 모금 활동가 오지 팔로모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전반적인 단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공화당 내에서는 암살미수 사건이 전화위복이 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승기를 잡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화당 여론조사 전문가 휘트 에어스는 "바이든의 재선 가능성이 어제(총격 사건) 전까지 희박했다면 어제 이후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민주당이 대선 승리보다는 의회에서 주도권을 유지하는 데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공화당 전략가 데이브 카니도 트럼프 피격 사건이 "그의 지지기반은 물론 무심했던 유권자층에 활력을 불어넣고, '민주주의 수호' 단일 주제를 내세운 바이든 팀을 무릎 꿇릴 것"이라고 말했다.
'네거티브' 전략 막힌 민주…후보 교체론 불씨도 여전
이에 비해 민주당과 바이든 캠프는 선거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번 암살미수 사건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한 네거티브 공세를 이어가기가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동안 선거운동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유죄 평결을 받은 중범죄자'라고 공격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자 도덕적으로 부적합한 후보라는 점을 부각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적 견해차가 범행동기일 수도 있는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경쟁자를 거칠게 몰아붙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트럼프 측도 바이든 대통령이 그간 반트럼프 공세에 선거 전략을 집중해온 것이 이번 사태를 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바이든 캠프는 트럼프 피격 사건 직후 그를 향한 창끝을 거두고 대신 통합 메시지를 강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14일 저녁 대국민 연설에서 "통합은 가장 달성하기 힘든 목표이지만 지금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지나치게 과열된 정치적 수사를 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캠프 측도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를 강조하는 내용의 TV 광고와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발송을 중단했으며, 선거운동원들에게 'SNS나 공개 석상에서의 어떠한 논평도 삼가라'고 지시했다.
바이든 캠프는 당분간은 정책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선거운동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여론조사 전문가 마이크 럭스는 정책적 차이를 강조하도록 바이든 캠프에 조언했다면서 "나라면 한동안 경제 정책이나 여성의 재생산권에 메시지를 다시 집중하고 '트럼프는 위험하다'는 말은 덜 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언제까지 이러한 '로키' 모드를 유지하느냐이다.
한 바이든 캠프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이번 사건이 "모든 것을 바꾼다. 우리는 아직 (상황을) 평가하고 있지만 트럼프를 겨냥해 분열된 장면을 그리는 것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상원의원 선거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한 당원도 익명을 전제로 "진짜 문제는 우리가 2주 안에 (총격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서 트럼프를 국가에 대한 위협으로 선언할 수 있느냐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정국을 달군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리스크와 대선 후보 교체론의 불씨도 여전히 남아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대중의 관심이 이번 총격 사건으로 옮아가면서 후보 교체 논란이 일단락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백악관 소식통은 로이터통신에 바이든 후보 교체 요구가 "이제는 끝났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보 사퇴론 국면 종료'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서 총상을 입고도 흔들림 없는 강인한 모습을 과시한 것이 바이든 대통령이 보여준 노쇠함과 대비되면서 오히려 후보 교체론에 다시 불이 붙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8일 기부자들에게 "트럼프를 과녁 중앙(bull's-eye)에 둬야 할 때"라고 언급한 것도 이번 총격 사건과 맞물려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WSJ과 CNN방송은 전했다.
공화당은 사건 이후 해당 발언을 문제 삼으며 비판하고 있으나 바이든 캠프 측은 이에 대한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WSJ은 전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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