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오송 지하차도, 제2경인 방음터널 … 참사의 패턴과 파편
참사의 패턴 망각의 파편 1편
지하차도의 비극 오송 참사 1주기
막을 수 있었는데도 못 막은 인재
재발 방지하겠다던 당국 약속 무색
패턴처럼 반복하는 대형 참사 고리
징후 무시하고 매뉴얼 따르지 않고…
해결책 논의하다 정치 쟁점화에 매몰
Q. 위기 징후를 왜 외면했을까.
Q. 현장 조치는 왜 늦었을까.
Q. 책임자는 뭘 하고 있었을까.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Q.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단 다짐은 어디로 갔을까.
# 참사慘事. 우리는 잊을 만하면 터지는 '참혹한 사건' 앞에서 언제나 이런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의문은 사라지고, 망각이 그 자리를 채운다. 우린 언제까지 참사 앞에서 의문과 망각을 반복해야 할까. 누구의 잘못일까.
# 지난 15일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 1주기를 맞았다. '오송 참사 그 후'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더스쿠프가 참사의 패턴을 기록했다. 막지 못한, 어쩌면 막을 수 있었던 참혹한 사건의 기록이다.
2023년 7월 15일 아침,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물폭탄이 터졌다. 인근 미호강이 범람한 탓이었다. 넘치는 강물을 막아야 할 제방은 임시로 쌓아뒀었는데 부실했다. 차량 17대가 고립된 지하차도 안은 지옥으로 변했다. 14명이 숨졌고 16명이 다쳤다. '오송 참사'였다.
폭우 탓만 하긴 어려웠다. 위기 징후가 있었는데도 여러 기관이 안일하게 대응한 게 화를 키웠다. 1년 뒤, 오송 지하차도 앞에서 유가족과 생존자가 다시 모였다.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국정조사를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보다 불과 한달 전이었다. 광주에서 많은 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학동4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붕괴한 '학동 참사'가 3주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무너진 건물은 버스를 덮쳤다.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중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소홀한 안전관리와 부실한 철거 공사가 만들어낸 인재人災였다.
오는 8월엔 가습기살균제 참사 13주기를 맞는다. 2011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날을 추모하는 자리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정부가 공식 인정한 피해 사망자만 1860명에 달하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화학생활약품 재난이었다. 편안하게 숨 쉬려고 구입한 제품이 목숨을 앗아간 역설적인 참사였다.
3개월 뒤엔 건국 이래 최악의 압사 사고 '이태원 참사'가 2주기를 맞는다.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이 운집했을 뿐인데,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겼던 세월호 참사는 올해가 10주기였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달력 곳곳은 '참사'로 마킹돼 있다. 참사가 벌어지면, 많은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 빠진다. "막을 수 있는데 왜 못 막았냐"는 유족의 절절한 외침이 들리고, '후진국형 인재'라며 제도 개선과 정부의 대응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빗발친다.
당국은 "같은 슬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언제나 빈말이다. 예측할 수 있고 통제가 가능한 인재형 참사는 매년 쳇바퀴처럼 반복한다.
얼마 전에도 참사가 터졌다. 지난 6월 24일, 경기도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의 화마火魔가 31명의 사상자를 냈다. 몇차례 사고 위험 징조가 있었지만 늘 그렇듯 무시했다. 여러 기관의 과실이 층층이 쌓여 참사들이 터졌듯, 재발 이유도 비슷하다. 참사는 마치 '패턴처럼' 반복했다.
■ 패턴➊ 뒤늦은 조치 = 무엇보다 상황 파악은 늦고, 보고 절차는 거칠었다. 오송 참사만 해도 그렇다. 경찰은 침수 위험 신고를 받고도 피해 현장에 출동하지 않았다. 관할 소방서도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한 긴급구조 통제단을 뒤늦게 가동했다. 김영환 충북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이 사고와 관련해 첫 보고를 받은 건 참사가 터진 뒤 1시간가량 흐른 뒤였다.
이태원 참사 때도 그랬다. 경찰은 참사 4시간 전에 들어온 '사고가 터질 것 같다'는 긴급 신고를 11건이나 간과했다. 구청장은 사고 현장에 뒤늦게 도착했고 재난 대응 조치는 지연됐다. 보고 체계도 무너졌다.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은 참사 발생 30분이 지나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상황실장과 행정안전부 장관은 1시간이 넘어서 보고를 받았다.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참사 이튿날에야 가동했다.
■ 패턴➋ 책임 미루기 = 참사 이후에 벌어지는 풍경도 씁쓸하다. 미흡한 대처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를 두고 지리멸렬한 공방전을 벌이기 일쑤다. 말단 실무자들은 책임 회피를 위해 불법을 감행하기도 했다.
오송 참사 때 경찰은 "장소를 오인해 출동했다"면서 허위 보고를 했다. 이를 숨기기 위해 출동 기록도 조작했다. 소방서 역시 상황보고서를 허위 작성해 국회에 보고했다. 이태원 참사 땐 사고를 예견했던 용산경찰서 정보관이 작성한 보고서 4건이 삭제됐다.
윗선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오송 참사의 최고 책임자 중 한명인 김영환 충북지사는 "거기에 일찍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국가 재난ㆍ안전관리 총책임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 이후 "경찰ㆍ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했어도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며 책임에 선을 그었다.
■ 패턴➌ 엉뚱한 보도 = 그러는 사이 언론 보도가 쏟아진다. 앞서 언급한 기관들의 무능과 무책임, 부실한 매뉴얼은 자극적 뉴스에 묻힌다. 본질에서 벗어났거나 떠도는 소문을 받아쓰는 미디어도 늘어난다. 오송 참사 땐 환경단체의 반대가 미호강 범람을 부추겼다거나, 이태원 참사 땐 허무맹랑한 마약 이슈가 온라인상에서 이목을 끌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생존자, 유가족을 향한 막말과 혐오다. 이태원 참사 땐 "근본 없는 축제에 놀러 간 게 잘못"이라면서 희생자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여기엔 정치권도 한몫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향해 "자식 팔아 장사한단 소리 나온다" "나라 구하다 죽었냐" 같은 막말을 쏟아낸 여당 인사(김미나 창원시의원)가 있는가 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조국의 운명을 궁평지하차도로 밀어 넣었다"고 말한 야당 인사(김의겸 전 국회의원)도 있었다.
■ 패턴➍ 볼썽사나운 정쟁 = 온갖 불신과 혐오가 뒤엉키는 사이, 사건은 정쟁의 복판에 놓인다. 참사의 책임을 집권층에 물으려는 야당 진영의 공세가 거세지면, 정부와 여당은 '참사를 정치화하지 말라'며 책임론 확대를 경계한다. 안전 시스템 개선은 정치권이 풀어야 할 문제라는 걸 고려하면 "정치화하지 말라"는 말부터 모순투성이다.
그런데 사건이 이 단계에 진입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시스템 개선을 위해 필요한 각종 법안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다. 정쟁 앞에서 국회가 공전해서다.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골자로 하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여야간 다툼 끝에 최근에야 합의된 건 대표적 사례다.
정치권 사람들은 '국회에서 참사 방지법을 숱하게 내놨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거짓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재난안전법 개정안이 총 154건(정부 발의 포함) 발의됐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은 건 8건(5.2%)뿐이었다.
정치권이 볼썽사나운 다툼을 거듭하는 사이, 여론의 관심은 식어간다. 참사의 실상을 속속들이 기억하는 국민이 드물어진다. 되레 '정쟁'에 등을 돌리는 이들이 늘어난다. 그러면 새로운 참사가 보도된다. 이전 참사는 완전히 잊힌다. 지금까지 언급한 패턴이 또 반복한다.
■ 망각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 우리가 앞서 살펴본 참사들은 우연히 발생한 게 아니다. 사소한 걸 방치한 결과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하인리히의 법칙'이 작동했다는 거다. 미국의 보험회사 직원이던 허버트 하인리히는 대형 사고가 한 건 터지기 전 경미한 사고가 29회 발생하고, 그 이전에는 같은 원인에서 비롯되는 사소한 징후가 300회 나타난다는 점을 포착했다.
바꿔 말하면, 사고를 예고하는 사소한 징후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면 대형 사고를 막고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지 않는다면 악순환의 고리는 또다시 참사를 엮을 거다. 이 역시 참사의 패턴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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