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기 남은 52경기, 마침내 시작된 박해민의 야구…LG가 대전에서 얻은 큰 수확[스경x현장]
LG의 중견수 박해민(34·LG)은 15일까지 92경기에 출전했다. 전 경기 출장이다. 어려운 일인데 당연한 듯 해낸다. 박해민은 지난 2년 연속 144경기를 치렀다. 올해도 부상 등 특별한 문제만 없다면 3년 연속 개근도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경기에 나가는 것이 마냥 행복하진 않았다. 오히려 괴로웠다. 박해민은 “너무 힘들었다. ‘왜 안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박해민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성실하게 오프시즌을 보냈다. 노력하지 않았다면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준비는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결과가 안 좋아서 생각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전반기 박해민은 86경기 타율 0.264, OPS 0.667의 성적을 거뒀다. 우승 시즌인 지난해 타율 0.285, OPS 0.707과 비교해 하락 폭이 꽤 컸다.
그래도 박해민은 경기에서 빠질 수 없었다. 꼭 타격이 아니더라도 주루와 수비로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리그에서 몇 안 되는 선수다. 박해민은 지난해 KT와 한국시리즈 5차전, 3-0으로 앞선 4회초 2사 1·2루에서 김민혁의 좌중간 안타성 타구를 다이빙해 잡아 상대 기를 꺾어버렸다. LG는 당일 6-2로 승리해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허를 찌르는 주루로 상대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박해민은 지난 14일 대전 한화전, 1-2로 밀린 7회초 선두 타자 안타를 치고 나갔다. LG는 동점 주자 박해민을 2루까지 보내기 위해 신민재 타석에서 희생 번트 작전을 펼쳤다. 신민재가 초구에 번트를 대려다가 배트를 세웠다. 한화 포수 최재훈은 선발 라이언 와이스에게 다시 공을 건넸고, 전진 수비를 하던 내야진도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때 유격수 이도윤이 아예 뒤로 돌아 외야 쪽을 보며 2루 베이스와 멀어졌다. 공을 건네받은 와이스도 주자를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사이, 박해민이 2루로 뛰기 시작했다. 뒤늦게 눈치챈 와이스가 도루를 저지하려고 했으나 이도윤의 베이스 커버보다 박해민이 미끄러져 들어가는 속도가 빨랐다.
박해민은 “유격수가 주자를 안 보고 베이스에서 멀어졌고, 투수도 저를 안 보고 있길래 과감하게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상대 방심을 놓치지 않은 박해민의 주루는 6이닝 1실점으로 잘 던지던 와이스를 흔들어놨다. LG 7회초에만 4점을 뽑았고 최종 8-4로 승리했다.
박해민은 이날 2타수 1안타 1도루 2볼넷 2득점으로 팀 공격에 활기를 더했다. 대전 3연전의 가장 큰 수확은 타격에서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다. 이번 원정에서 그는 타율 0.571(7타수 4안타)을 기록했다. 왼손 타자인 박해민은 경기 뒤 “잡아채는 스윙보다 정확성을 높여야 하는 타자인데, 그전까진 파울도 1루 쪽으로만 나왔다”며 “중심을 뒤쪽에 놓고 치자는 생각을 하니까 밀어서 치는 안타가 나온다.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해민은 염경엽 LG 감독이 꼽은 ‘살아나야 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염 감독은 대전 원정에 앞서 박해민과 1시간가량 면담을 했다. 박해민은 “감독님이 저하고, (오)지환이, (김)현수 형이 좀 살아나야한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3명이 함께 살아나고 있어서 팀도 긍정적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전반기 타격 부진에 시달렸던 김현수와 오지환은 이날 나란히 3안타를 쳤다.
박해민은 “대전에 와서 자신감이 붙었고, 이젠 다시 제 야구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며 “감독님이 편하게 저를 기용할 수 있도록 타석에서 결과를 더 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후반기 남은 52경기, 진짜 박해민의 야구가 시작됐다.
대전 | 배재흥 기자 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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