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상담심리학회] 모두가 꿈꾸는 행복한 노년, 지금 우리사회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임지숙 한국상담심리학회 고령화사회와 심리상담 위원회 위원장 (명지대학교 교수) 2024. 7. 1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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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숙 한국상담심리학회 고령화사회와 심리상담 위원회 위원장 (명지대학교 교수)


노년기는 기본적으로는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행복한 시기다. 그러나 노인의 심각한 자살율과 우울문제 뉴스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2024년 UN이 발표한 세계 행복 보고서를 살펴보면 미국의 30대 미만 행복도는 62위이지만 60대 이상 행복도는 10위로 나타났다. 일본의 경우도 30세 미만 청년층은 73위를 나타냈지만 60세 이상 노년층의 행복도는 36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결과는 상대적 순위로 노년기가 반드시 더 행복하다는 절대적인 결과로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노년기가 되면서 다양한 역할과 책임,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심신의 안정과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보편적인 서구의 노년 이론들에 부합하는 결과다.

지금 한국의 노인 세대는 삶의 경험을 전수하는 것이 존경과 존중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태어났다. 오랜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농사나 살림의 기술을 도제식으로 알려주고 삶의 지혜를 후손들에게 전해주며 집안의 어른으로 자리매김하는 노년기를 보며 성장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노년이 된 지금 경험으로 체득한 것의 가치의 자리는 옹색하기만 하다. 음식을 사먹고 싶어도 키오스크라는 낯선 기계 앞에서 망설여지고 최신 핸드폰을 사고 싶어도 복잡한 기능에 좌절하기 십상이다. 소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행복한 삶으로 귀결되리라 믿고 열심히 일했지만 1인당 GDP가 3만달러를 넘어선 지금도 노인 빈곤율은 40%를 넘고 노인 자살율이 OECD 평균의 3배에 달하는 압도적 1위이다. 이쯤 되면 어르신들이 내가 살아온 삶이 부정당하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위의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우리나라가 안정되고 행복한 노년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온 경제적 부분은 25위, 급속한 의료의 발달로 기대 수명은 3위라는 높은 순위를 차지했지만 사회적 지원(83위)과 사회적 자유(99위)의 항목에서는 하위권에 머물렀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84년동안 좋은 인생을 추적한 하버드 의대 연구팀은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탐구보고서>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만드는 결정적 요인은 재산이나 명예, 학벌이 아닌 사람과의 따뜻한 관계에 있다고 결론 내렸다. 노인 세대가 경험한 대가족 제도를 생각하면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생경하지만 2023년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독거노인의 비율은 21.1%로 이제는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듯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노인 빈곤의 문제도 시급하지만 관계의 단절로 인한 고립감도 매우 병리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노인 세대는 애써온 삶의 가치가 부정당하고 관계가 단절되는 고통은 느끼지만 막상 ‘어떻게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배우고 경험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인들은 타인에 대해서는 부정적, 자신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는 거부형 애착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다. 거부형 애착양식을 지닌 노인들이 행복감도 더 높다는 연구 결과(Webster, 1997)는 사별의 경험이나 황혼이혼, 갈등으로 인한 관계 단절 등으로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어려움을 경험한 노인들이 선택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차선의 대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통하는 상대방은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고 쉽게 분노를 표현하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노인의 모습만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간극은 저절로 메워질 수 없고 심리적, 정서적으로 살아온 삶에 대한 타당화를 경험하며 지나온 삶을 정리하는 작업이 노인들에게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한다.

노년기는 시간이 흘러 저절로 맞이하고 경험하는 시기가 아니라 새로운 세대로의 경험을 준비하고 적응적으로 지내기 위한 현명한 전략들이 필요하다. 지금껏 우리 사회가 수명 연장과 경제적 여건 마련에 힘써왔다면 이제는 심리적·정서적 준비를 위한 노력에도 관심을 기울여야만 우리가 원하는 행복한 노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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