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에 갇혀 못 자란 블랙홀...우주 진화사 빈 곳 채웠다
항성질량과 초대질량 블랙홀 사이
숨어 있던 중간질량 블랙홀 발견
중력이 너무 강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천체를 가리켜 블랙홀이라 부른다. 이 특이한 천체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만들어진다.
첫째는 태양보다 훨씬 큰 별이 핵융합 에너지를 소진한 뒤 붕괴하는 과정에서 초신성 폭발 후 만들어지는 항성질량 블랙홀이다. 이 블랙홀은 질량이 태양의 5~150배다. 미국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STScI)는 별 1000개에 1개꼴로 블랙홀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를 전제로 하면 수천억 개의 별이 있는 우리 은하에는 수억 개의 블랙홀이 있다고 봐야 한다.
또 다른 경로는 별의 진화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거대한 가스 덩어리가 직접 붕괴하면서 형성되는 초대질량 블랙홀이다. 태양 질량의 수십만~수십억배에 이르는 이 괴물 블랙홀은 은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태양계에서 2만6천광년 떨어져 있는 우리 은하 중심에는 태양 410만배 질량의 ‘궁수자리 A*’라는 초대질량 블랙홀이 있다. 과학자들은 주변 별을 모두 삼켜버리는 초대 질량 블랙홀이 은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알려진 블랙홀은 이렇게 작거나 아주 거대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두 유형의 블랙홀 사이에 있는 태양 150~10만배 규모의 중간 질량 블랙홀은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과학자들은 초기 은하의 중심에는 중간 크기의 블랙홀이 있었을 것이고, 이 블랙홀은 훗날 더 작은 은하를 삼키거나 더 큰 은하와 합쳐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 은하는 오래전에 이 단계를 벗어났고, 지금은 훨씬 더 큰 초대질량 블랙홀을 중심에 두고 있다.
우주 진화의 원리상 당연히 있어야 할 이 중간 질량 블랙홀은 그러나 그동안 존재를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몇몇 잠정적인 후보들이 발견됐을 뿐, 중간 질량 블랙홀은 블랙홀 진화사의 잃어버린 고리로 남아 있는 상태다.
중간 질량 블랙홀은 과연 실제로 있는 걸까, 있다면 그 수는 얼마나 될까? 중간 질량 블랙홀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초대질량 블랙홀은 중간 질량 블랙홀이 합쳐져서 생겨난 걸까?
1만8천광년 거리의 성단 중심에서 발견
독일 막스플랑크천문학연구소가 중심이 된 국제연구진이 미 항공우주국(나사)의 허블우주망원경 관측 데이터 분석을 통해 1만7700광년 거리에 있는 우리 은하의 구상성단 ‘오메가 센타우리’(NGC 5139)에서 중간 질량 블랙홀의 증거를 찾아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성단은 거의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형성돼 서로 중력으로 묶여 있는 별 무리를 말한다. 구상성단은 별 무리가 모여 있는 모양이 공 모양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메가 센타우리는 지름이 150광년으로 약 1000만 개의 별들로 이뤄져 있다.
연구진은 우선 허블망원경이 20년간 관측한 오메가 센타우리 사진 500여 장 속의 별 140만 개의 이동 속도를 측정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이어 오메가 센타우리에 초점을 맞춰, 성단의 가장 안쪽 영역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7개의 별 움직임을 추적했다. 그 결과 중간 질량 블랙홀의 중력이 이 별들을 잡아당기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막시밀리언 해베를레 박사과정생은 “건초더미 속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은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우리 은하에 흡수된 왜소은하의 은하핵
분석 결과 이 7개의 별은 이동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정상적이라면 성단을 탈출해야 마땅한 별들이었다. 가장 빠른 것은 초속 113km나 됐다. 연구진이 내린 결론은 “이 별들을 중력으로 끌어당겨서 가깝게 유지하고 있는 거대한 천체가 있다”는 것이었다. 연구진은 이렇게 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천체는 질량이 태양의 8200배 이상인 블랙홀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야말로 중간질량 블랙홀 존재를 설명하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라며 “이번 발견으로 인해 오메가 센타우리의 중간 질량 블랙홀 존재를 둘러싼 10년간의 논쟁이 해결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발견이 최종적으로 확인되면 이 블랙홀은 역대 가장 가까운 거대 블랙홀이 된다.
별의 이동 속도를 이용해 블랙홀을 찾는 데 성공한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이 방법의 첫 성공 사례는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 궁수자리 A*의 존재를 밝혀낸 것이었다. 이 연구를 수행한 과학자들은 202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오메가 센타우리에 중간 질량 블랙홀이 있다는 것은 이 성단이 수십억년 전 우리 은하에 흡수된 왜소은하의 핵이라는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바깥쪽 별들이 떨어져 나간 이 은하핵은 은하수 안에 갇혀 더는 진화하지 못한 채 시간 속에서 멈춰버렸고, 따라서 중심의 블랙홀도 더는 커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메가 센타우리는 남반구에서 볼 수 있는 성단으로 은하수 평면 바로 위에 있다. 빛공해가 없는 깜깜한 밤에 보면 보름달만큼 크게 보인다. 2000년 전 프톨레마이오스는 자신의 별 목록에 이 성단을 별로 기록했다. 이후 핼리 혜성 발견자로 잘 알려진 에드먼드 핼리는 1677년 별이 아닌 성운이라고 정정했고, 구상성단이라는 걸 알아낸 사람은 1830년대 영국 천문학자 존 허셜이었다.
연구진은 앞으로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을 이용해 오메가 센타우리의 중심을 더욱 자세히 조사할 계획이다. 연구진은 이를 위해 지구쪽 또는 지구 반대쪽으로 움직이는 별의 이동 속도를 측정하는 관측 프로그램을 승인받았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38/s41586-024-07511-z
Fast-moving stars around an intermediate-mass black hole in ω Centauri.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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