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위해 잔소리하는 아빠처럼… 세심히 살피고 챙기는 ‘열정맨’[Leadership]

정세영 기자 2024. 7. 1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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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재근 진천국가대표선수촌장
80년대 亞200m 석권하며
한국 육상의 전설에 올라서
은퇴 후엔 감독 · 행정 활동
에어로빅 전도사로도 인기
부임 후 항상 ‘원팀’ 강조해
종목 막론 서로 큰소리 인사
“선수촌은 컨디션 유지 아닌
강해지기 위해 훈련하는 곳
우리 선수들 굉장히 상승세”

장재근(62) 진천국가대표선수촌장은 ‘한국 육상의 전설’이다.

장 촌장은 1982 뉴델리아시안게임 육상 200m에서 한국인 최초로 21초의 벽(20초89)을 깨며 금메달을 차지했고, 1986 서울아시안게임에서 2연패를 일궜다. 장 촌장이 1985년 자카르타아시아육상선수권에서 세운 남자 200m 20초41의 한국 신기록은 2018년 6월 박태건이 전국육상경기선수권에서 20초40을 기록하기까지 무려 33년 동안 유지됐다.

장 촌장은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현역 은퇴 이후에는 육상국가대표팀 단거리 감독 등 지도자와 스포츠행정가로 활약했다. 또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며 에어로빅 전도사로 대중에 큰 인기를 누렸다.

장 촌장은 지난해 3월 국가대표 선수단을 관리하는 진천선수촌 수장에 올랐다. 장 촌장은 부임 후 선수, 지도자, 스포츠행정가 등으로 쌓은 경험을 선수촌 운영에 적용했다. 파리올림픽을 앞둔 진천선수촌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훈련이 계속 이어진다. 선수촌장은 선수촌 내 선수들의 모든 훈련 일정을 체크하고, 보고를 받는 총책임자. 그런데 장 촌장은 주변에서 ‘열정맨’으로 불린다. 장 촌장이 국가대표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하도록 온종일, 세심하게 선수촌을 살피는 데서 붙여진 별명이다. 사실 장 촌장은 부지런함이 몸에 뱄다. 그는 현역 시절, 열심히 훈련하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부지런하게 뛰어다니는 선수였다. 장 촌장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돕는 수장으로 매일 새벽 일찍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선수촌 곳곳을 돌아다니며 각종 시설을 점검하고 의견을 듣는다.

장 촌장 부임 후 진천선수촌은 확 달라졌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단어는 ‘원팀’이다. 장 촌장은 개인 종목 출신이지만 일체감을 강조한다. 장 촌장 부임 후 가장 달라진 것은 선수촌에선 종목을 막론하고 서로 만나면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장 촌장이 부임 후 대한민국 국가대표라는 동질감과 자부심으로 하나라는 공감대 형성을 위해 주문한 것이다. ‘인사는 기본이고, 모든 일의 시작’이라는 게 장 촌장의 지론이다.

장 촌장의 리더십은 아빠 리더십에 비유된다. 그는 철저한 ‘원칙주의자’다. 그래서 ‘간섭’이 무척 많은 편이다. 장 촌장은 ‘아파트 공동체론’을 자주 이야기한다. 아파트와 같은 여러 세대가 모인 곳에선 공동생활을 위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 것처럼, 전국 각지에서 모인 스포츠 엘리트 선수들이 모인 진천선수촌도 규율과 규칙이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원칙과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 선수로서의 기본을 잃거나 조직에 해를 끼치는 모습을 못 본다. 장 촌장은 “어느 지역, 어느 아파트에 살면 그 안에 룰이 있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상호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룰”이라고 했다.

신한불란(信汗不亂·땀을 믿으면 흔들림이 없다). 장 촌장이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다. 그는 누구보다 흘린 땀의 소중함을 안다. 그래서 장 촌장은 “진천선수촌은 열심히 훈련하는 곳, 목표를 달성하고 꿈을 이루기 위한 곳” “선수촌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곳이 아니라, 강해지기 위해 훈련하는 곳”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는 최근 D-30 미디어데이에서도 “여기는 놀러 오는 곳이 아니고 훈련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장재근(왼쪽 두 번째) 진천국가대표선수촌장이 지난 5월 선수촌을 방문한 유인촌(오른쪽 두 번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장미란(오른쪽 네 번째) 문체부 제2차관 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장 촌장은 ‘강한 엘리트 스포츠’를 강조했다. 올해부터 자율이던 새벽 훈련을 의무사항으로 바꿨다. 2주에 한 번씩 산악구보를 실시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장 촌장은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또 진천선수촌에 0시부터 오전 5시까지 와이파이를 한시적으로 차단한 것도 선수들이 행여 밤에 휴대폰 게임을 즐기느라 휴식을 온전히 취하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장 촌장은 전형적인 내유외강(內柔外剛) 스타일이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혹독한 체력훈련으로 ‘호랑이 선생님’으로 불리지만 마음속엔 따스함이 넘친다. MZ 선수들을 보며 세대 차이도 느끼지만, 방송인 출신의 달변가답게 선수들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장 촌장의 후배 사랑은 유별날 정도다. 그는 늘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추려 애쓴다. 대표선수들이 즐겨보는 영화, TV 예능프로그램을 두루 살펴보는 것도 선수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다.

장 촌장은 세심하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그가 꼼꼼하게 챙기는 선수들의 식단이 대표적. 잘 먹어야 힘을 잘 쓰는 법. 파리에선 한식 위주의 식사를 준비하고 삼각김밥 등 간편식과 도시락도 만들 예정이다. 곰탕은 먹기 간편하고 든든한 한 끼 식사이며, 선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장 촌장은 곰탕을 공수하기 위해 얼린 국물 아이디어를 냈고, 선수촌에서 직접 조리한 곰탕은 팩에 넣은 뒤 얼려 갈 예정이다.

파리올림픽이 눈앞에 다가왔다. 장 촌장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파리올림픽에 나설 선수단의 규모는 50명이 출전했던 1976 몬트리올 대회 후 최소인 144명이다. 파리올림픽 메달 목표는 금메달 5개에 종합순위 15위. 파리올림픽이 개막하면 한국 선수단의 관리 감독 등 역할은 선수단장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장 촌장의 역할은 있다. 한국 선수단은 파리올림픽 개막 직전인 지난 12일부터는 파리 근교 프랑스국가방위스포츠센터(CNSD)에 현지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최신 설비의 체육관과 전용 식당 등 부대시설을 복합적으로 갖춰 한국 선수단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하계올림픽에서 사전 훈련캠프가 마련되는 건 2012 런던올림픽 이후 처음이다. 지난 5월 이곳을 다녀온 장 촌장은 현지에서 선수들이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어 결전지인 파리 시내로 이동하는 데 심혈을 쏟을 예정이다.

장 촌장은 요즘 부쩍 ‘희망’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긍정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장 촌장은 “우리 선수들이 굉장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메달 목표는 확정적이거나 가능성이 큰 것”이라며 “스포츠는 경기가 끝나야 결과가 나온다. 섣부른 예측보다는 바닥을 치고 올라갈 것으로 봐 달라”고 당부했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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