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자유” “생명 생명”… 한국 무대 오른 ‘중동’의 외침

서종민 기자 2024. 7. 1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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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문화회관 연극 2편 화제
이란극단 내한 ‘블라인드 러너’
히잡시위 보도투옥 기자의 실화
페르시아어 공연… 한국어 자막
탈출 향한 달리기 ‘자유의 열망’
레바논 원작 ‘연안지대’
인종 넘어 “생명은 소중” 메시지
한국에도 ‘억압 어디든 있다’ 시사
이란 출신 배우들이 페르시아어로 공연하는 연극 ‘블라인드 러너’는 이단비의 한국어 자막과 함께 오는 18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연극 ‘블라인드 러너’의 아미르 레자 쿠헤스타니(왼쪽) 연출과 번역가 이단비(오른쪽). 세종문화회관 제공

페르시아어로 외치는 ‘자유’에 귀를 기울여보자. 이란 전체주의 억압 속에서 자유를 향해 달리는 연극 ‘블라인드 러너’의 현지 제작진이 오는 18일 한국 무대에 오른다. 레바논 내전을 다룬 연극 ‘연안지대’(서울시극단) 등에 이어 한국 연극계에 부는 중동 바람이 눈에 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특수해 보이지만, 극을 따라가다 보면 모두에게 자유를 향한 갈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번역가 이단비의 답변이었다. 페르시아어로 공연하는 ‘블라인드 러너’에서 관객에게 제공되는 한국어 자막은 그가 이 작품의 영·독어본을 교차 번역한 것이다. 2022년 이란의 ‘히잡 시위’를 촉발한 당시 22세 대학생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를 보도하다 감옥에 수감된 기자 닐루파 하메디와 그 남편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한 편의 서정시 같았다.” 이단비는 후기를 전하며 “그 부부가 면회실에서 하는 대화의 앞뒤, 그리고 위아래로는 상당히 복잡하고 많은 맥락이 깔려있다”며 “그런데 입 밖으로 낸 표현은 짧은 데다 문장 수가 많지도 않다”고 했다. 대화를 거듭해도 서로 이해는커녕 오해만 쌓는 보편적 경험을 그렸다는 것이다.

특히 ‘달리기’라는 소재가 극의 보편성을 자아냈다고 한다. 그 부부의 갈등은 아내가 남편에게 한 시각장애인 여성과 함께 영국으로 탈출해달라고 부탁하면서 고조된다. 탈출로는 프랑스·영국을 잇는 38㎞ 해저터널. 막차가 떠난 뒤 5시간 35분 만에 터널을 통과하지 못하면 시속 160㎞로 질주하는 다음 날 첫차에 치여 죽는다. 이단비는 “달리는 경험에서 느낀 해방감, 좌절감 그리고 그 순간의 어떤 상태랄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라고 했다. 이 작품의 아미르 레자 쿠헤스타니 연출은 자국 전체주의를 비관하며 달리던 도중 다리 근육을 크게 다쳤고, ‘개인으로 투쟁하는 자유는 공동 성격을 지닐 때 그 가치가 완성된다’는 의식으로 각본 초고를 썼다. 지난 6월 베니스비엔날레 공연으로 작품성을 인정받기 1년여 전부터 벨기에·독일·그리스·네덜란드·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 등 유럽 각지에서 초청 공연을 했다. 21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공연은 아시아 초연이다.

“쿠헤스타니 연출은 우리 요청이 뜻밖이었는지, 아주 고맙다고 한국에 오게 돼 너무 기쁘다고 했다.” 이 공연을 기획한 세종문화회관 문혜리 PD는 “중동, 난민 등 이슈가 한국에서 소개하기가 좀 어렵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고 했다. 약간의 사전 지식을 알고 보면 더욱 깊이감 짙은 연극이라는 게 문 PD의 생각이다. 그는 “미리 접한 작품 영상에서 부부 사이의 단순한 대화로 봤던 대목이 자료조사 후에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고 했다. 아내가 수감된 계기는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끌려가 목숨을 잃었던 여성 이야기를 온라인에 올린 것이었고, 겉으로는 정당한 행위였다고 인정하는 남편이 내면으로는 아내에 대한 원망을 마주하는 맥락의 대화라는 설명이다. 문 PD는 “이란 연극인데, 흔한 운동복 차림의 두 배우가 텅 빈 무대에서 연기하는 모습은 특정 문화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지 않도록 한 연출로 느꼈다”고 했다.

연극 ‘연안지대’는 레바논 내전을 소재로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그렸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연극 ‘연안지대’의 김정 연출.

나아가 ‘중동 연극’이라는 표현이 성립할 수 있을까. 지난달 막을 내린 ‘연안지대’의 김정 연출은 “내가 답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극 중 ‘생명은 소중하다’는 이 명료한 한 줄을 관객이 체감하도록 배우와 제작진 모두가 몸부림을 쳤다”고 답했다. 그는 1990년까지 15년간 내전의 피로 물들었던 레바논 출신의 작가 와즈디 무아와드 원작을 한국 무대에 올렸다. 생명이라는 보편 가치를 무대에서 구현하는 데 있어서 국가·인종 등의 장벽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김 연출은 “현지 예술을 그대로 한국에 옮기는 것도, 아니면 현지 사건이라는 점을 감춘 채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로 녹여 전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라며 “그러나, 예술가로서 냉혹한 자체 검증을 거쳐 재탄생한 나의 이야기를 내놓는다면 모든 이야기는 각자의 역사에서 그 의미가 새로워질 것”이라고 했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

이들 작품을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리기로 결정한 안호상 사장은 “지금 아랍권에서 좋은 작가, 작품이 나오고 이슈가 되는 것은 그곳의 삶이 그만큼 고단하기 때문 아닐까”라고 했다. 안 사장은 “고통스럽기 때문이잖나. 그곳과 한국은 물론 다를 테지만, 지금 한국의 고민과 맞닿는 지점이 있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억압이 없는 데는 없다. 그 정도에서 한국 관객께서 작품을 한번 봐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했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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