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국축구 위기는 현재 진행형…정몽규 회장 엉킨 매듭 풀어야
[서울=뉴시스] 하근수 기자 = 모든 결정은 책임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바라본 대한축구협회는 그렇지 않다. 어쩌면 올해 경험했던 두 차례 쓰라린 실패보다 더한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한국 축구는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우승 실패와 2024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 좌절로 휘청였다. 이후 정식 감독 선임 문제는 무려 반년 가까이 지체되면서 답답함이 이어졌다.
축구협회는 지난 7일 남자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홍명보 감독을 내정했다고 밝혔다. 홍 감독이 축구협회 측과 만날 의향이 없다고 밝힌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깜짝 발표 이후 이튿날 이임생 기술이사가 홍 감독 선임과 관련해 브리핑을 진행했다. 줄곧 축구협회에 강조됐던 투명성과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이 이사는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후보군 선정 과정, 외국인 감독 면접을 진행한 유럽 출장 결과, 홍 감독 설득 과정과 선임 이유 등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홍 감독 선임은 결과적으로 축구팬들로부터 공감과 지지를 얻기에 한참 부족했다. 오히려 축구협회를 향한 비판과 분노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첫 번째는 프로축구 K리그1 디펜딩 챔피언 울산 HD를 이끌던 홍 감독을 가로챘다는 점이다. 과거 2011년 전북 현대를 성공적으로 지휘하던 최강희 감독을 선임한 전례가 반복됐다.
홍 감독 선임 과정에서 발생한 프로세스 부재도 지적된다. 정 전력강화위원장 사퇴 이후 이 이사는 감독 선임에 대한 전권을 부여받고 최종 결정을 홀로 진행해 논란이 발생했다.
외국인 감독 평가 근거도 부족하다. 유럽 출장에서 만난 거스 포옛 감독과 다비드 바그너 감독이 홍 감독보다 성과, 축구 철학, 시간적 여유 등이 부족하다고 했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축구협회는 지난 13일 4차 이사회 서면 결의를 실시해 홍 감독 선임을 승인하며 모든 절차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이제 홍 감독은 코칭스태프 구성에 착수할 예정이다.
기대보다 우려, 응원보다 야유를 받는 홍명보호가 과연 온전히 항해를 이어갈 수 있을까.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하는 홍명보호는 본격적인 출항 전부터 크게 흔들리고 있다.
축구 국가대표 출신이자 이번 감독 선임 작업에 전력강화위원으로 참여했던 박주호는 "지난 5개월이 허무하다. 홍 감독의 선임은 절차 안에서 이뤄진 게 아니다"고 폭로했다.
한국 축구 전설 박지성 전북 테크니컬 디렉터는 "이렇게밖에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아쉽고 슬프다. 이미 축구협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며 이례적으로 쓴소리를 남겼다.
이 밖에도 수많은 언론과 축구계 관계자들이 비판을 이어가며 축구협회는 궁지에 몰렸다.
더 이상 공수표에 가까운 책임 약속은 무의미하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직접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선임 과정이 투명하지 않았던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은 '2023 아시안컵'에서 졸전 끝에 탈락해 경질됐고 임시 사령탑을 맡은 황 감독은 2024 파리 올림픽 진출에 실패했지만 축구협회 수장 정 회장이 책임지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전력강화위원회가 두 차례 임시 감독 체제라는 초유의 사태로 비판받는 와중에도 정 회장은 뒤에서 관망하기만 했다.
홍 감독 선임 또한 정 회장이 이 이사에게 전권을 넘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실상 책임 전가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축구팬들은 지난해 승부조작 사면 사태부터 이어진 일련의 사태를 놓고 정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축구지도자협회 또한 "정 회장은 축구협회 시스템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며 "이 모든 과정과 결과에 대해 책임지고 즉각 회장직에서 사퇴하기를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감독 선임을 향한 우려가 큰 지금 축구협회 수장 정 회장이 나서지 않는다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지난 5일 정 회장은 충남 천안축구종합센터에서 열린 '2024 대한축구협회 한마음 축구대회'에 참석해 "감독 선임이 마무리되면 추후에 (선임)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시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 회장이 언급한 선임 과정 설명이 이 이사 브리핑으로 끝난다면 지금 쏟아지고 있는 비판을 잠재우기 어렵다.
아시안컵 우승 실패와 올림픽 본선 진출 좌절로 위기에 직면한 지금 이제라도 잘못 끼워진 퍼즐을 제대로 맞추지 않는다면 한국 축구라는 작품은 결코 온전히 완성될 수 없다. 이제 정 회장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시점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hatriker2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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