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보장된 줄 알았는데”…퇴직 당겨질까 전전긍긍, 교사들 술렁이는 이유는

권한울 기자(hanfence@mk.co.kr) 2024. 7. 1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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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수능 탐구 선택 사라져
내신 유리한 과목 쏠림 우려
출제 포함 안된 역사·물리 등
학생에 외면받을 가능성 커져
고교학점제로 부담까지 가중
“일부 교사들 전출 가거나
전공 아닌 과목 가르칠수도”
서울의 한 고등학교. [이충우 기자]
“2028학년도부터는 학생들이 윤리와 역사 과목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나이가 많은 해당 과목 교사들은 퇴직이 앞당겨질 수도 있고요.”

정부가 2028학년도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수험생들이 선택과목 없이 통합형으로 시험을 치르도록 대입 제도를 개편한 이후 사회·과학탐구 교사들 사이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금까지 탐구영역은 사회·과학 17개 과목 가운데 2개를 택해 치렀지만, 2028학년도부터는 1학년 때 배우는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에서 문제가 출제된다. 수능과 관련 없는 과목들은 학생들에게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매일경제가 인터뷰한 현장 진로·진학 교사들은 고교학점제와 2028 대입 개편안이 이대로 간다면 내신 점수 따기에 유리한 과목,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도움이 되는 과목으로 학생들이 몰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제도다. 2028 대입 개편안은 이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되고, 그 부작용으로 외려 고교학점제 시행 전보다도 수강과목 다양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진규 충남 서령고 교사는 “고교학점제와 2028 대입 개편안은 상극”이라며 “현장에서 우리(교사들)가 봤을 때는 전혀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참 걱정이다”고 했다.

사회·과학 과목 수능 출제 범위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운 내용으로 한정된다면 2~3학년 수업은 중요성이 떨어지게 된다. 지금은 한국지리, 경제, 물리학Ⅰ, 화학Ⅰ 등 고등학교 2~3학년에서 배우는 과목 중 최대 2과목을 선택해서 수능에 응시할 수 있다. 하지만 2028학년도 수능 때부터 모든 학생이 사회·과학 선택과목이 없는 통합형 수능을 치른다. 1학년 때 배운 통합사회, 통합과학만 출제 범위다. 2~3학년 때 다양한 과목을 선택해 수업을 들을 수 있지만 수능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

박준열 서울 건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교사는 “학생들이 적성에 맞게 2~3학년 과목을 고를 것이라고 기대를 해보지만 성적이 우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수강인원이 많아 좋은 내신성적을 받기 쉬운 소위 ‘꿀 과목’들이 인기를 끌 것”이라고 했다. 과학 과목 중에서는 생명과학, 지구과학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2024학년도 수능 기준 생명과학Ⅰ, 지구과학Ⅰ 과목들 응시자 수는 각각 15만명 안팎으로, 각 과목 응시자 수가 4000명 내외인 물리학Ⅱ, 화학Ⅱ, 생명과학Ⅱ, 지구과학Ⅱ과 30배 이상 차이가 난다. 개별 학교의 내신 과목 선택 비율도 비슷하다. 고교학점제로 과목이 더 다양해지고, 학생이 재량으로 선택할 수 있는 비중도 커지지만 정작 수능과 연계가 되지 않으니 점수 따기 쉬운 과목으로 쏠림이 심화할 것이라고 현장 교사들은 본다.

인천의 한 일반고 교사 A씨는 수능 출제 범위인 통합사회와 연계도가 높은 과목도 쏠림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통합사회·통합과학이 수능에서 어떻게 출제될지 샘플이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예를 들어 정치와 법·한국지리와 관련된 내용이 수능 통합사회 문항에 많이 반영된다면 2~3학년 때도 진로보다는 이런 과목들을 위주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일각에선 사회·과학 과목을 듣는 학생 수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교학점제 하에서는 3년 간 192학점 중 공통 이수 과목 48학점을 제외한 144학점을 어떻게 채울지 학생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학교의 여건이 허락하는 한 2~3학년 때 ‘문학과 영상’ ‘영미 문학 읽기’ 등 국어·수학·영어과 과목 위주로 ‘편식’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공식 출제범위 상으로는 수능에 나오지 않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사회·과학보다 수능 연관성이 더 높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과목 쏠림’ 전망에 내후년부터 학생 수요에 따라 수업을 개설해야 하는 고교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강신청한 학생들이 적은 과목은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교사 배치는 어떻게 해야할지 등이다. 서울의 한 사립고 교사 B씨는 “아직 위기라고까지 보기는 힘들어도 학생마다 배우는 선택과목이 다르니 다양한 교과를 편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부담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라며 “아무래도 인기가 있는 과목과 아닌 과목이 나뉠텐데 인기 과목의 경우 대학교 수강신청처럼 선착순으로 운영해야할지 내부적 고민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수요가 없는 일부 사회·과학 과목 교사들 사이에선 다른 학교로 전출을 가거나, 여러 학교들을 돌아다니며 순회 수업을 해야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변 학교 수요를 모두 합해도 수강 학생이 없는 과목 교사는 최악의 경우 전과해 본인 전공과 다른 과목을 가르쳐야 한다. 물리 교사 C씨는 “원래도 과학의 경우 물리학은 선택자가 적고 생명과학이 많았는데 이제 와서 학생들이 다양하게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학교 사정에 따라 전공이 아닌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늘어나고, 학생들도 대학가서 학력 저하 현상을 겪을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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