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나 마나 한 ‘가업상속공제’?…까다로운 요건에 기업들 ‘울상’
2년 만에 다시 손볼지 주목…“대상 확대 및 요건 완화 필요”
(시사저널=허인회·김경수 기자)
오는 7월말 세법 개정안 발표를 앞두고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현재 정부는 상속세 개편을 검토 1순위로 두고 있는 가운데 기업인들은 개편안에 '가업상속공제' 확대가 포함될지 주목하고 있다. 2년 전 규제를 완화했음에도 까다로운 사후관리 요건 등으로 혜택을 보는 기업이 적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반면 '부의 무상 이전'에 따른 양극화를 세제상 지원한다는 비판 여론도 존재하는 상황이라 정부의 선택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중소기업 625개 설문조사, 78%가 "현행 제도 개선 해야"
정부는 최근 상속세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월27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편집인 포럼에 참석해 "상속세 개편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며 "7월말 세법 개정안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에선 기업인들에게 적용되는 가업상속공제 확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업상속공제는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받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탄생했다. 피상속인이 생전에 10년 이상 영위한 중소기업 등을 상속인에게 승계한 경우 최대 600억원까지 공제해 상속세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제도다. 기업의 원활한 승계를 지원하고, 이를 통해 경제 발전과 고용 유지 효과를 도모하자는 취지다. 다만 조건이 까다로워 혜택을 받는 기업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국회는 2022년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을 매출액 4000억원 미만에서 5000억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공제한도액을 최고 500억원에서 600억원으로 상향했다. 사후관리 기간은 7년에서 5년, 가업자산유지 요건은 80%에서 60%로 완화했다.
덕분에 이 제도를 활용하는 기업이 늘어나긴 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2∼23년 가업상속공제 건수는 평균 168건으로 직전 3년 평균(2019∼21년, 101건)에 비해 66.3% 증가했다. 연평균 공제액은 5904억원으로 직전 3년에 비해 76.3%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가업상속공제 규모는 2019년과 비교해 건수는 2.1배, 공제액은 3.5배 증가했다.
마치 제도 활용 기업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과는 괴리돼 있다. 많은 기업 가운데 160여 개 기업만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실제로 제도 활용률이 높지 않다는 것이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 6단체의 주장이다. 이들에 따르면, 2018~22년 등 최근 5년간 가업상속공제 건수는 연평균 111건이다. 반면 독일은 약 1만 건(2017~21년 평균)이고, 영국은 2583건(2015~18년 평균)을 기록하는 등 해외 주요국에 비해 크게 저조한 상황이다.
실제 기업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여전히 공제 대상이나 기업 규모가 제한적이고 사전·사후관리 요건이 까다로워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일단 피상속인은 최소 10년 이상 기업을 경영하며 대표이사로 재직해야 하고, 지분을 40%(상장사는 20%) 이상 보유해야 한다. 상속인의 경우 상속 개시 전 2년 이상 가업에 종사해야 하고, 상속세 신고기한까지 임원으로 취임해야 한다. 아울러 신고기한부터 2년 이내에 대표이사에 올라야 한다. 기업인이 자신의 후계자를 교육하고 양성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상속 개시 후 5년간 사후관리 요건을 지키지 않으면 공제 혜택은 취소된다. 우선 상속인은 대표이사 등으로 종사하며 가업을 경영해야 한다. 또한 상속받은 기업 자산의 40% 이상을 처분할 수 없고, 지분율 역시 유지해야 한다. 1년 이상 해당 가업을 휴업하거나 폐업하지 않고 주된 업종을 변경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 아울러 상속 후 5년간 정규직 근로자 수 평균을 상속 전 근로자 수의 90% 이상 또는 상속 후 5년간 총급여액의 전체 평균이 기준 총급여액 90% 이상이어야 한다는 요건을 지켜야 한다.
이 때문에 해당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올해 4월 중소기업 625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8%는 "현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원활한 승계를 방해하는 규제'라는 응답이 61.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가업을 승계하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원활한 승계를 방해하는 규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얘기다.
'공제 확대' 꺼내든 정부…현실화 가능성은?
이를 의식한 정부는 적용 대상 및 공제 한도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6월20일 제9차 지방시대위원회 회의를 주재한 윤석열 대통령은 전국 8개 시도에 '기회발전특구'를 지정하며 가업상속공제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방의 기회발전특구로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연매출 5000억원 미만에서 1조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공제 한도 또한 현행 6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공제 한도 확대는 경제 6단체가 요구하는 개선안이기도 하다.
경제 6단체는 이에 더해 기업 규모 제한을 완화해 공제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10년 이상 경영' 요건을 완화(10년→3년) 또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사업 구조조정에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는 자산·업종 유지 요건 등 폐지 △금융자산·직원 사택·대여금 등 사업 운영에 필요한 자산도 공제 대상 재산 포함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제도 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선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최원석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현행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가족 경영이라는 개념에만 매몰돼 사후 규제가 많아 중소·중견기업들이 활용하는 데 애로가 많아 활용도가 낮다"면서 "가업이라는 좁은 범위를 벗어나는 제도로 전환되면 규제가 대폭 축소돼 원래 취지가 잘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갑순 동국대 회계학과 교수는 "가업 승계 제도가 일부 개선됐지만, 변경된 제도가 기업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꼭 가족 승계만이 아닌 사후관리 요건을 크게 줄이는 등의 과감한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관건은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느냐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정부의 세제 개편 추진에 반대 입장이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6월18일 기자회견에서 "세수 결손이 심각하고 재정 상태가 엉망인데 정부가 여기에 또 감세를 꺼내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급선무는 세수 확보 대책이니만큼 정부가 세법 개정안을 내놓으면 그런 걸 감안해 대응하겠다. (당의 대응) 방향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올 3월 세법 개정 건의서를 통해 "적용 대상과 공제한도액은 확대한 반면, 적용 요건과 사후관리 등은 모두 완화했다"며 "'부의 무상 이전'에 따른 양극화를 세제상 지원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제 범위를 축소하고 적용 대상 기업의 매출액을 현행 50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줄일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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