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생각]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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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의 삶의 굴곡과 애환을 담아낸 '밥도둑'의 한 대목이다.
'밥도둑'이라는 산문집에서 작가는 자신의 인생사를, 음식을 모티프로 삼아 풀어내면서,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했다.
어린 시절 방학에 가곤 했던 경남 사천의 큰 집은 남해에 인접한 지역이다.
아침 먹을 즈음에 이웃집 동생이 자기 집에 회 먹으러 오라고 해서 사촌형과 갔더니 어두컴컴한 방에 둥근 상이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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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끼 식사가 만들어내는 행복감이야말로 삶의 원천이며,
진정한 밥도둑은 역시 약간의 모자람과, 누군가와 함께 나눠 먹는 맛이다!"
소설가 황석영의 삶의 굴곡과 애환을 담아낸 '밥도둑'의 한 대목이다. '밥도둑'이라는 산문집에서 작가는 자신의 인생사를, 음식을 모티프로 삼아 풀어내면서,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음식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첫 번째 떠오르는 추억은 바다낚시로 직접 잡은 생선회를 맛있게 먹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방학에 가곤 했던 경남 사천의 큰 집은 남해에 인접한 지역이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사촌 형과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로 아침나절부터 점심때까지 낚시를 해서 잡은 물고기가 백 여 마리는 족히 넘어, 대나무로 만든 통을 가득 채웠다. 내가 잡은 물고기는 '문조리' 또는 '꼬시래기'로 불리는 물고기이다. 그렇게 잡은 문조리를 할머니는 뼈째 다진 것과 밭에서 따온 들깻잎을 접시에 담아 오셨다. 막 따온 향긋한 들깻잎과 술찌끼로 만든 초고추장 그리고 문조리 세꼬시는 천상의 맛이었고, 생각만 해도 입 안에서 군침을 돌게 만든다.
두 번째 추억은, 쥐치회를 여러 이웃들과 함께 둘러앉아 먹었던 기억이다.
겨울방학 때 큰집에 갔을 때의 일이다. 아침 먹을 즈음에 이웃집 동생이 자기 집에 회 먹으러 오라고 해서 사촌형과 갔더니 어두컴컴한 방에 둥근 상이 놓여있었다. 상 위에는 막 된장과 이름 모를 회가 있었다. 이웃집 아저씨께서 말씀하시기를 '쥐고기'라고 하셨다. '쥐치'를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저씨께서 새벽에 부두에 나가셨다가 얻어 오신 듯했다. 아저씨네 가족 여섯 명, 우리 형제 두 명에 혼자 사시는 옆집 할머니까지 해서 열 명 가까운 사람이 맨손으로 회를 집어 된장에 푹 찍어서 정신없이 먹었다. 음식은 여러 명이 먹으면 더 맛있다고 하더니 뼈째 먹는 고소한 쥐치회와 짭조름한 막 된장과의 조합은 기막히게 맛있었다.
세 번째 추억은 어린 시절 논에서 먹은 '들밥'에 대한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농촌에서 살았다. 우리 집은 아버지께서 공직에 계셔서 농사를 짓지 않았지만 이웃집 농사일을 돕곤 했다. 그때 어머니는 농사짓는 이웃집 점심밥 하는 일을 도우셨다. 밥을 해서 머리에 이고 논이 있는 들판까지 가시는 어머니 옆에 나는 졸졸 따라가서 일하시는 분들이랑 밥을 먹곤 했다. 그때 내 입맛을 사로잡는 반찬이 있었다. 경상도 말로 '멸치 찌진 것' 인데 5-6월에만 나오는 생멸치 조림이다. 들판에서 고소한 생멸치 조림을 상추에 싸서 동네 분들과 함께 먹었던 기억은 맛있는 '들밥'의 추억이다.
진수성찬이 아니더라도 동네 이웃들과 모여서 음식을 나눴던 그 맛과 정취를 이젠 더 이상 누리기는 힘들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농촌에서 살았던 나는 이삭 패기 전 짙은 녹색을 띠고 있는 벼 이삭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이곳 교육원 근처에 논이 있는 조그만 마을이 있어, 가끔 그쪽에 갈 일이 있을 때 벼 이삭을 만지면 참 기분이 좋다. 그런데 얼마 전 그곳에 다시 가보니 논이 메워지고 있었다. 내심 서운했다. 우리나라는 식량자급률이 상당히 떨어져 OECD 가입국 중 세계식량안보지수(GFSI)가 최하위권인 39위(조사대상 113개국, 2022년)이라는데, 이렇게 논이 자꾸 없어지다 보면 쌀이 부족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논이 없어지고, 누군가와 나눠먹는 밥이 적어지는 오늘, 나는 녹색의 벼이삭 만지는 느낌과 이웃들과 정겹게 나누었던 음식이 그리워진다. 최영산 농협세종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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