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그날'에 멈춘 시계…"대지진 잊지 말자"면서 '공산당 애국 관광'? [이도성의 안물알중]
이도성 기자 2024. 7. 15. 06:02
이도성 특파원의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중국 이야기'
“떠들지 말고 정숙하세요!”
날카로운 목소리가 한 무리의 관광객들에게 향했습니다. 지난달 11일 중국 쓰촨(四川)성 원촨(汶川)현 잉슈(映秀)진에 위치한 쉬안커우중학교유적지(?口中學遺址)에서입니다.
가이드를 맡은 이 지역 출신 한 중년 여성은 저를 비롯한 일행 20명 정도를 이끌고 유적지 구석구석에 얽힌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일행끼리 대화를 주고받자 '조용히 하라'는 취지로 소리를 내질렀던 겁니다.
이곳은 16년 전 일어난 쓰촨성 대지진의 진앙입니다. 지난 2008년 5월 12일 당시 진도 8.0의 지진이 닥쳤습니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을 석 달 앞두고 일어난 지진으로 이 지역은 폐허로 변했습니다. 대지진으로 인한 당시 중국 전체 인명 피해는 8만여 명에 달합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이곳에선 오후 첫 수업이 한창이었습니다. 면적 3만 3천 제곱미터의 학교 안에는 당시 학생과 교사 1660명이 있었습니다. 지진 발생 직후 곧바로 대피가 시작됐지만 모두가 비극을 피할 순 없었습니다. 결국 학생 43명과 교사 8명 등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이후 지진으로 무너진 학교 터를 그대로 보존해 유적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날의 아픔을 기억해 참사를 잊지 말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자는 취지입니다.
유적지를 들어서면 한가운데 대형 시계 모양 조형물이 있습니다. 2008·5·12라는 비극의 그 날을 상징하는 숫자 위로 금이 간 시계가 놓였습니다. 정확히 오후 2시 28분 가리킵니다. 참사 이후 교실에서 발견된 시계를 본떴습니다. 비극이 일어난 뒤 멈춰버린 시간을 표현한 겁니다.
학교엔 온전한 건물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졌거나 완전히 무너져 내린 상태였습니다. 중간 부분이 찌그러진 채 버티고 있는 건물도 있었습니다.
가이드는 “눈앞에 보이는 게 건물의 4층”이라며 “1, 2층은 아예 무너져 내린 뒤 파묻혀 버렸다”고 설명했습니다. 피해가 가장 컸던 건물 앞에서는 희생자를 위해 묵념을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유적지 투어의 마지막은 대형 비석 앞이었습니다. 추모를 위해 놓인 국화꽃 수십 송이 뒤편으로 건물 3층 높이의 벽에 11줄의 글로 이곳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비석에는 “지진 이후 중국 공산당과 중국군, 전국의 모든 민족이 합심해 신속해 구호 작업에 나섰다”면서 “중국 인민들이 영웅의 기개로 지진 재해와의 투쟁에서 중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018년 이곳을 '전국 애국주의 교육 모범기지'로 지정하고 직접 시찰에 나섰습니다. 시 주석은 이곳이 지진을 극복한 역사적 성과를 보여준다면서 “당에 의한 강력한 지도와 제도의 우위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자 이곳은 공산당원과 학생들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습니다. 이른바 '홍색 관광지', '애국 관광지'가 된 겁니다. 한 관영 매체는 올해 초에만 수천 명의 학생이 유적지를 찾았다면서 이를 통해 “조국에 대한 가치관을 키우며 올바른 세계관을 확립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저와 일행을 이끌던 가이드 역시 “당의 지도 덕분에 피해를 극복할 수 있었다”며 투어 말미에 환히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를 두고 중국 공산당의 성과를 강조하기 위해 비극의 현장을 이용한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지난해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당시 정부의 재난 대응에 불만을 가졌던 유족을 상대로 중국 정부의 감시와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유가족의 슬픔을 억누르고 '애국 관광' 기지로 만드는 데만 치중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신문은 “학교 측이 내진 시설을 갖추지 않은 것에 대해 피해 학부모들이 모여 문제를 제기했지만 당국의 방해와 협박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정부 제소 움직임에 동참하지 않은 유족들에게만 정부가 주택을 마련해주며 '편 가르기'에 나섰다고 했습니다. 또 "공산당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은 용납이 안 되는 분위기"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부 유족이 집단 추모제를 준비했지만 당국에 의해 무산됐다는 소식도 미국 자유아시아(RFA)가 보도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이곳을 4A급 관광지로 지정한 뒤 매년 수만 명이 찾아오지만 현지 주민들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본 닛케이신문은 “정작 현지 주민 수는 크게 줄어들었다”면서 “숙박하는 관광객이 많지 않아 현지 일자리 증가도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도성 베이징특파원 lee.dosung@jtbc.co.kr
"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중국 이야기. 몰라도 되는데 알고 나면 '썰' 풀기 좋은 지식 한 토막. 기상천외한 이웃나라 중국,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이도성 특파원이 전합니다. "
“떠들지 말고 정숙하세요!”
날카로운 목소리가 한 무리의 관광객들에게 향했습니다. 지난달 11일 중국 쓰촨(四川)성 원촨(汶川)현 잉슈(映秀)진에 위치한 쉬안커우중학교유적지(?口中學遺址)에서입니다.
가이드를 맡은 이 지역 출신 한 중년 여성은 저를 비롯한 일행 20명 정도를 이끌고 유적지 구석구석에 얽힌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일행끼리 대화를 주고받자 '조용히 하라'는 취지로 소리를 내질렀던 겁니다.
이곳은 16년 전 일어난 쓰촨성 대지진의 진앙입니다. 지난 2008년 5월 12일 당시 진도 8.0의 지진이 닥쳤습니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을 석 달 앞두고 일어난 지진으로 이 지역은 폐허로 변했습니다. 대지진으로 인한 당시 중국 전체 인명 피해는 8만여 명에 달합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이곳에선 오후 첫 수업이 한창이었습니다. 면적 3만 3천 제곱미터의 학교 안에는 당시 학생과 교사 1660명이 있었습니다. 지진 발생 직후 곧바로 대피가 시작됐지만 모두가 비극을 피할 순 없었습니다. 결국 학생 43명과 교사 8명 등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이후 지진으로 무너진 학교 터를 그대로 보존해 유적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날의 아픔을 기억해 참사를 잊지 말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자는 취지입니다.
유적지를 들어서면 한가운데 대형 시계 모양 조형물이 있습니다. 2008·5·12라는 비극의 그 날을 상징하는 숫자 위로 금이 간 시계가 놓였습니다. 정확히 오후 2시 28분 가리킵니다. 참사 이후 교실에서 발견된 시계를 본떴습니다. 비극이 일어난 뒤 멈춰버린 시간을 표현한 겁니다.
학교엔 온전한 건물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졌거나 완전히 무너져 내린 상태였습니다. 중간 부분이 찌그러진 채 버티고 있는 건물도 있었습니다.
가이드는 “눈앞에 보이는 게 건물의 4층”이라며 “1, 2층은 아예 무너져 내린 뒤 파묻혀 버렸다”고 설명했습니다. 피해가 가장 컸던 건물 앞에서는 희생자를 위해 묵념을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유적지 투어의 마지막은 대형 비석 앞이었습니다. 추모를 위해 놓인 국화꽃 수십 송이 뒤편으로 건물 3층 높이의 벽에 11줄의 글로 이곳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비석에는 “지진 이후 중국 공산당과 중국군, 전국의 모든 민족이 합심해 신속해 구호 작업에 나섰다”면서 “중국 인민들이 영웅의 기개로 지진 재해와의 투쟁에서 중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018년 이곳을 '전국 애국주의 교육 모범기지'로 지정하고 직접 시찰에 나섰습니다. 시 주석은 이곳이 지진을 극복한 역사적 성과를 보여준다면서 “당에 의한 강력한 지도와 제도의 우위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자 이곳은 공산당원과 학생들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습니다. 이른바 '홍색 관광지', '애국 관광지'가 된 겁니다. 한 관영 매체는 올해 초에만 수천 명의 학생이 유적지를 찾았다면서 이를 통해 “조국에 대한 가치관을 키우며 올바른 세계관을 확립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저와 일행을 이끌던 가이드 역시 “당의 지도 덕분에 피해를 극복할 수 있었다”며 투어 말미에 환히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를 두고 중국 공산당의 성과를 강조하기 위해 비극의 현장을 이용한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지난해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당시 정부의 재난 대응에 불만을 가졌던 유족을 상대로 중국 정부의 감시와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유가족의 슬픔을 억누르고 '애국 관광' 기지로 만드는 데만 치중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신문은 “학교 측이 내진 시설을 갖추지 않은 것에 대해 피해 학부모들이 모여 문제를 제기했지만 당국의 방해와 협박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정부 제소 움직임에 동참하지 않은 유족들에게만 정부가 주택을 마련해주며 '편 가르기'에 나섰다고 했습니다. 또 "공산당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은 용납이 안 되는 분위기"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부 유족이 집단 추모제를 준비했지만 당국에 의해 무산됐다는 소식도 미국 자유아시아(RFA)가 보도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이곳을 4A급 관광지로 지정한 뒤 매년 수만 명이 찾아오지만 현지 주민들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본 닛케이신문은 “정작 현지 주민 수는 크게 줄어들었다”면서 “숙박하는 관광객이 많지 않아 현지 일자리 증가도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도성 베이징특파원 lee.dosung@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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