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계화 기로에 선 K무역] ③“韓은 기술력과 잠재성 높은 국가, 아일랜드와 시너지 기대”
어떤 나라에서 왔건 12.5% ‘법인세 혁명’으로 글로벌 기업허브된 아일랜드
생명과학·반도체·핀테크 등 양국의 강점 분야 같아 韓 기업들과 협업 기대돼
최근 세계 각국이 보호무역주의 장벽을 높이 쌓아 올리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되고, 중국의 과잉 생산 억제를 겨냥한 서방의 압박이 유럽연합(EU)으로까지 확대되는 분위기다.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추진해 온 한국으로선 전 세계를 휩쓰는 보호무역 기조가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 등 단일 경제에만 의존하는 관행을 끊고, 수출국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선비즈는 한국의 주요 수출입국을 중심으로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 시장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한국 기업이 어떻게 보호무역주의 시대에 새로운 수출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분석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한반도의 3분의 1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면적에 인구는 겨우 500만인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 영국의 오랜 식민지배를 받았지만 지금은 1인당 GDP로 세계 1, 2위를 다투고 조건없는 12.5%의 법인세율을 고정시킨 ‘법인세 혁명’으로 세계 다국적 기업들을 몰려들게 만들어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관문이 됐다. 한때 ‘유럽의 아프리카’라며 감자농사나 짓던 가난한 섬나라로 여겨지던 아일랜드는 지금 구글, 애플, 트위터, 마이크로소프트 등 IT 기업, 화이자 등 세계 10위권 제약 회사 중 9개의 본사가 위치한 나라다.
이렇듯 관광에 의존하는 유럽 내 다른 국가들과 달리 아일랜드는 다국적 기업들을 속속 유치하며 국가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특히 브렉시트의 반사작용으로, 고통받는 영국과 달리 아일랜드는 오히려 호황을 누리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브렉시트 이후 아일랜드 남동쪽 로스레어 항구의 운송량이 5배 이상 늘었다. 그간 아일랜드와 유럽 본토를 잇는 가장 빠른 길이 영국과 도버해협을 통과하는 방법이었지만, 브렉시트 이후 세관 등 절차가 복잡해지면서다.
한국인들에게 아일랜드는 그나마 축구로 익숙한 나라지만, 생각보다 한국과의 교류도 활발하다. 꽤나 오래전, 일제강점기 아일랜드인 조지 쇼가 세운 무역 선박 회사를 통해 한국과 접점이 생긴 아일랜드는 지난 몇년 간 계속해서 무역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양국의 무역 규모는 연간 50억유로(약 7조1646억 원). 특히나 기업 친화적인 나라답게 양국 무역 중 상당 부분이 기업 사이의 거래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기세를 몰아 아일랜드는 한국의 기업 모시기에 나섰다. 아일랜드가 강점을 가진 제약바이오와 반도체테크, 재생에너지 산업 분야에 있어서 한국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에서 외국인 및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정부기관인 아일랜드 투자개발청은 한국 기업들의 성장 가능성과 한국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조선비즈는 2010년부터 아일랜드의 투자환경을 알리고 한국의 유망한 기업들을 만나온 데릭 핏제럴드(Derek Fitzgerald) 아일랜드 투자개발청 한국 지사장을 만나 한국과의 기술 교류와 무역 시너지,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물었다.
─아일랜드는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이 앞다퉈 찾는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여전히 증가추세인가.
”지난 5년간 다국적 기업들이 국제 금융 서비스, 기술, 생명 과학 등 여러 산업에 걸쳐 아일랜드에 진출하는 사례가 증가했는데, 최근 수백만 유로에 달하는 투자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예컨대 제약 분야에서는 2023년 일라이 릴리(Eli Lily)가 리머릭(Limerick) 의약품 제조 시설에 지역에 9억 2700백만 유로(약 1조39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한국의 SK바이오텍도 더블린 공장의 제조시설을 확장하기 위해 최근 3500만(약 525억원) 유로의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기술 분야에서는 인텔이 아일랜드의 킬데어(Kildare) 지역에 있는 팹34(Fab 34)에 170억 유로를 투자하여 유럽에서 가장 진보된 반도체 제조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러한 규모의 투자 사례는 아일랜드의 다국적 기업 생태계에서 흔하며, 기업들은 풍부한 인재, 매력적인 세금 제도, EU 시장 접근성 및 안정적인 정치 환경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한국과 아일랜드 사이 연간 약 7조가 넘는 무역 규모 중 상당 부분이 기업 거래인데 어떤 산업군에서 이뤄지는가.
“아일랜드의 한국 수출은 최근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데, 가장 큰 부문은 식품이다. 하지만 제약 제품과 항공기 임대, 소비재와 소프트웨어 등 부문도 주목받고 있다. 기업 거래와 관련해, 아일랜드 기업진흥청의 120개 이상 고객사들이 한국과 거래하고 있으며 ICON plc와 같은 일부 기업들은 현지에 직접적인 시장 진출을 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 항공·우주, 생명 과학, 교육 및 농업 기술·농기계와 같은 주요 성장 부문에서 아일랜드 기업의 수출 잠재력이 모든 부문에서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는 연구 개발 투자, 기술 리더십 및 빠른 의사결정으로 특징지어지는 한국 경제의 필요에 부응하는 최첨단 솔루션을 보유한 아일랜드 기업들에게 더 많은 성장 가능성이 있다.”
─전세계 기업들이 아일랜드에 몰려드는 비결은 무엇인가. 법인세 외에도 다양하다고 하던데.
“기업 친화적인 법인세는 아일랜드가 기업하기 좋은 이유 12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아일랜드가 가진 강점 중 먼저 꼽고 싶은 부분은 인재풀이다. 높은 교육 수준을 탑재한 인구 자체가 강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고령화에 접어든 다른 나라들과 달리 아일랜드의 경우 인구 2명 중 1명이 35살 이하다. 또한 아일랜드 전체 인구의 62%는 대학교를 수료했는데 인구의 70%가 대학 교육을 받은 한국과 굉장히 유사하다. 다만 한국과 다르게 아일랜드의 대학은 학비가 무료이고,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의 인재수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외국 기업들이 아일랜드를 새로운 기지로서 탐색할 때 법인세는 단순한 트리거일 뿐이다. 아일랜드에서 사업을 계속 영위하고 성공시킬 수 있는 가는 국가의 성장성과 발전, 인구와 연관성이 깊다. 실제로 아일랜드에 자리잡은 기업들도 느끼는 부분일 것이다. 아일랜드는 굉장히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나라다.”
─그렇게 다양한 기업들이 아일랜드에 자리를 잡았지만 한국 기업은 많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지리적 한계라고 생각한다. 40년 전부터 아일랜드를 찾는 기업들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왔다. 우선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역사적으로도 왕래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유럽 기업들이 30% 정도를 차지하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온 기업들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시아 국가들이 투자를 하거나 기업 지사를 낸다고 하면 동남아를 먼저 타겟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중국과 미국, 유럽 순서로 넘어간다.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은 7년 전 아태 기업들의 비율은 2.3%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성장성이 굉장히 높고 일본이나 한국에는 우수한 기업들이 많다. 이미 투자를 시작한 한국 기업들도 있는데, 앞서 언급한 SK바이오텍과 KDB산업은행, 제약기업들이고, 현재 항공우주 분야에서도 아일랜드와 긴밀히 투자를 논하고 있는 한국의 유망한 기업이 있다.”
─아일랜드에서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이미지는.
“아일랜드에서도 K-팝은 인기있는 장르다. 또한 K-드라마의 인기덕분에 아일랜드에서도 한국 문화가 꽤나 널리 알려졌다. 태권도도 인기 있는 무술이며 한국 음식점을 찾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미식가들 중에는 한국의 바베큐를 즐기기 위해 모이기도 한다. 오래된 역사와 독특한 문화, 활기찬 도시가 한국과 서울의 이미지다. 이런 부분들은 아일랜드 여행객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실제로 한국을 방문하는 아일랜드인들도 증가세다.”
─한국의 기업들이 유럽 시장으로 진출하는데 아일랜드가 어떤 도움이 될까.
“한국 기업들 뿐만 아닌 아시아 기업들 모두에게 아일랜드는 유럽으로 진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일랜드에서 유럽의 주요 시장으로 제품을 배송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기본 24시간, 48시간을 넘지 않는다. 배송 이점은 한국이 강점이 있는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 중요하다. 또한 아일랜드는 지진이나 폭풍이 없으며 영어 문화권이기 때문에 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아시아인들도 비교적 적응하기 쉬운 환경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일랜드는 다국적 기업이 많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 온 기업이건 출신을 신경쓰지 않고 동일한 세금 체계 및 제도를 적용한다. 법인세율 12.5%는 너무 유명한 것이고, 그 외에 아일랜드 정부에서는 연구개발 부분, 직원들의 재교육 비용에 있어서도 비용을 원조한다. 한국은 생명과학, 반도체산업, 핀테크 등 강점을 지닌 분야가 아일랜드와 유사하기 때문에 두 국가의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을 방문한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일랜드가 기대하는 또다른 한국 산업 분야나 기업은.
“언급한대로 아일랜드의 강점인 생명과학, 반도체 분야의 한국 기업들과의 협업은 물론이며, 최근에는 핀테크와 재생에너지 분야를 기대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서울핀테크랩과 아일랜드 투자개발청이 협업해 설명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핀테크 분야에서는 한국의 간편 해외송금 서비스 모인과 아일랜드의 기업결제 인프라 서비스 제공사인 트랜스퍼메이트(TransferMate)가 지난해 말에 파트너십을 체결하기도 했다. 재생에너지의 경우 아일랜드가 선도하고 있는 산업이자 한국에서도 관심이 많은 분야다. 지난해 11월 SK에코플랜트는 아일랜드의 럼클룬에너지와 협업해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 공급을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아일랜드에 자리 잡은 아시아 출신 기업들에 대해 소개한다면.
“틱톡과 우시(WuXi Biologics) 같은 중국 기업, 아스텔라스(Astellas)와 NEC 같은 일본 기업, SK바이오텍, KDB은행 및 두산 등 한국 기업들이 모두 큰 고용주로서 아일랜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덕분에 동북아시아의 주요 세나라인 한국, 일본 및 중국에 대한 문화적 인식이 금방 높아질 수 있었다. 상호작용으로 아시아 경제에서 아일랜드로의 외국인 직접 투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시아 국가들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한국은 다양한 부분에서 아일랜드와 교류하고 협력할 잠재성이 높은 국가며, 두 국가의 시너지를 기대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더 많은 한국 기업들을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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