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4000억 적자 회사가 6조 회사만큼 비싸다고?... 또 논란되는 주가 기준 합병비율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방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에서 두산밥캣을 떼어내 두산로보틱스 100% 자회사로 만드는 내용이 골자다. 두산밥캣은 그룹 내 대표적인 캐시카우로 꼽히는데, 2021년 두산인프라코어 아래에서 나와 두산중공업의 품에 안긴 지 3년 만에 이번에는 두산로보틱스 밑으로 가게 됐다.
그룹에서는 이번 개편안의 목적이 ‘유사 사업 간 시너지 효과 증대’라고 밝히지만, 다른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은 현금 창출력 있는 두산밥캣을 시가총액은 크지만 최소한 아직은 내실 없는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만드는 것이다. 두산로보틱스의 재무 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두산밥캣의 금고에서 대규모 배당 재원을 끌어오는 것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교환비율이 현재 시장 가격으로 정해졌다는 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분리 합병 발표 직전 두 회사의 시가총액은 5조원대 초반으로 비슷했는데, 이 몸값에는 본질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게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두산밥캣이 연간 1조원을 버는 우량 기업인 데 반해 두산로보틱스는 적자를 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 ‘알짜’ 밥캣, ‘적자회사’ 로보틱스 밑으로… 곳간 빼먹기 가능해져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우선 에너빌리티를 사업법인과 신설법인(투자법인)으로 인적분할한 뒤(분할비율 1대 0.24) 신설법인을 두산로보틱스에 흡수합병시키기로 했다. 사업법인은 그대로 두산에너빌리티에 남아 원래 하던 사업을 하고, 신설법인(투자법인)은 두산밥캣 지분 46%를 품고 두산로보틱스와 합쳐지는 구조다.
소액주주 등이 보유한 두산밥캣의 나머지 지분 54%는 향후 두산로보틱스가 발행할 신주와 교환된다. 즉 두산로보틱스가 밥캣 지분 100%를 확보해 완전자회사로 만드는 것이다. 밥캣은 상장폐지된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교환비율(1대 0.63)이다. 개편안이 발표된 11일 두 회사의 시가총액이 5조원대 초반으로 비슷했고 주당 기준가는 로보틱스가 8만114원, 밥캣이 5만612원이었던 만큼, 로보틱스 1주의 가치가 밥캣 0.63주의 가치와 비슷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로보틱스와 밥캣의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교환비율을 정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두산밥캣은 연간 영업이익이 1조원에 달하며 순자산이 6조원에 육박하는 알짜 회사다.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100억대 적자에 순자산은 4000억원대에 불과하다.
밥캣과 로보틱스의 시총은 5조원대로 비슷했지만, 주가순자산비율(PBR)은 각각 0.87배와 12.6배로 비교조차 안 되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순자산이 아닌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정하다 보니, 몸값이 저평가된 밥캣의 주주들이 주가에 거품이 낀 로보틱스 주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밥캣 주주들은 그동안 두산그룹이 밥캣 주가를 의도적으로 눌러놨던 게 아니냐는 의문까지 제기하고 있다. 그동안 두산밥캣의 주주환원은 미미한 수준이었고, 이는 주가 상승을 막는 장애 요인으로 인식돼 왔다. 지난해 두산밥캣의 배당성향은 17%밖에 안 됐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평균 배당성향(40%)에 한참 못 미친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두산밥캣이 주주환원만 제대로 했어도 주가가 지금의 2배는 됐을 것”이라며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눌려있던 덕에 몸값이 높은 두산로보틱스에 헐값에 넘어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IB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레인보우로보틱스에 투자하는 바람에 두산로보틱스 주가까지 굉장히 부풀려졌지만, (로보틱스는) 미래의 꿈과 희망만 갖고 가는 회사여서 매출, 영업이익 등 숫자가 별로 안 좋다”며 “현재의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할 만한 재무 수치를 달성하기가 최소한 당장은 어려우니 밥캣의 호실적을 연결로 반영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10월 2만6000원으로 상장했고, 현재 10만5700원을 기록했다. 아직은 실적으로 보여준 것이 없다.
두산로보틱스는 향후 두산밥캣의 곳간에서 배당 재원을 뽑아 쓰는 것이 가능해졌다. 올해 1분기 밥캣의 연결 기준 이익잉여금은 4조9000억원에 달했다. 이익잉여금은커녕 결손금이 987억원에 육박하는 두산로보틱스와 상반된 모습이다. 개편 이후 두산그룹은 ‘(주)두산→두산로보틱스(두산이 42% 보유)→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가 100% 보유)’의 지배구조를 갖추게 돼, 밥캣이 배당을 확대하면 과실(果實)은 고스란히 로보틱스와 지주사가 누리게 된다. 실제로 밥캣은 지난해 자본준비금에서 1조원을 빼내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했는데, 시장에서는 이를 배당 확대 시그널로 해석한 바 있다.
IB업계 일각에서는 두산그룹이 일단 밥캣을 로보틱스에 붙여 로보틱스 주가를 더 띄워놓은 뒤 밥캣을 다시 상장할 가능성까지 제기한다. 분할합병까지 하며 이용할 가치가 있는 캐시카우인 만큼, 재상장을 통해 또다시 현금을 뽑아내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로보틱스 주가는 12일 24%나 상승 마감했다.
◇ 반복적으로 논란되는 합병비율
과거에도 기업이 순자산 대신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책정해 논란이 된 사례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다. 합병비율은 1대 0.35였다. 즉 삼성물산 주식 1주의 가치가 제일모직 주식 0.35주의 가치와 같다는 뜻이었다.
당시 삼성물산 지분 7.23%를 보유했던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합병비율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주가는 얼마든지 누르거나 띄울 수 있는 만큼, 자산을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계산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취지였다. 업계에서는 주당 순자산가치를 기준으로 계산할 경우 합병비율이 1대 0.35에서 1대 2.19로 변한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SK C&C와 SK가 합병할 때도 이 같은 논란이 나온 바 있다. 합병비율이 1대 0.74로 정해졌는데, 이는 SK C&C에 지나치게 유리한 비율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SK C&C는 최태원 회장 등 총수 일가의 지분이 43.45%에 달했다.
2022년 동원그룹 계열사 간 합병은 소액주주들의 반발에 합병비율이 조정됐다. 소액주주들은 상장사이면서 자산이 많은 동원산업과 오너 일가 지분이 많은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했고, 회사 측이 결국에는 받아들였다. 동원엔터프라이즈와 동원산업 간 합병비율이 기존엔 1대 3.8385530이었으나 1 대 2.7023475로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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