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은 보수의 ‘메시아’가 될 수 있을까

전혜원 기자 2024. 7. 15.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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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위기는 보기보다 더 구조적이고 깊다. 집권 여당이 정부를 견제하고 또 견인하는 일은 사회 전체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차기 보수정당의 얼굴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7월2일 서울 강서구 ASSA아트홀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대표 비전 발표회에서 한동훈, 원희룡, 나경원, 윤상현(왼쪽부터) 당대표 후보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한동훈이 돌아왔다.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한 지 73일 만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원래는 1년 가까이 자숙할 생각이었는데, 자신이 물러나고 두 달 동안 국민의힘이 점점 더 위기에 빠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당을 민심에 부합하도록 바꾸고 국민의 사랑을 되찾게 하는 데 스스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다고 한다. 그가 출마를 선언한 6월23일 국회 소통관을 찾은 지지자들은 ‘기다렸다 한동훈’ ‘그리웠다 한동훈’이라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다.

바로 위 2층 기자회견장에서, 한동훈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제가 그 부분을 조금 길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 “우리 보수는 안보에서는 다른 정치세력에 뒤지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안보의 핵심 중 하나가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분들에 대한 처우와 안전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 그 사안에 대해 국민들께서 의구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의구심을 저는 풀어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검을 반대하는 논리는 법리적으로나 정무적으로나 논리적입니다. … 그러나 국민들의 의구심을 풀어드릴 만한 여러 번의 기회를 아쉽게도 실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국민의힘이 특검을 반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총선 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 등을 수사할 특별검사(특검) 법안을 지난 21대 국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켰고,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제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채 상병 특검법을 다시 발의해 7월4일 통과시켰다. 현재 국회 의석수는 민주당 170석, 국민의힘 108석이다.

한동훈이 민주당에서 발의한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대통령도 아닌, 공정한 결정을 담보할 수 있는 제3자가 특검을 골라야 한다”라며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특검을 검토해보자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공수처의 수사 종결 여부를 특검법 발의의 조건으로 달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공수처의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에) 국민들께서 ‘이건 봐주기 의혹이 있다’ ‘납득이 안 된다’고 하시면 그때는 제가 먼저 특검을 하자고 주장하겠다”라고 한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과는 배치된다.

대통령실은 공식 대응을 자제했지만, 익명의 관계자발로 “야당식 정치” “내부 총질” 같은 날 선 반응이 터져 나왔다. 친윤석열계로 꼽히는 한 국민의힘 의원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당대표가 혼자서 명령을 내리면 의원들이 다 따르나. 용산하고 자꾸 골이 파이게 만들어서 우리 당을 말아먹으려는 거 아닌가. 그런 사람이 당대표를 하겠다고… 도대체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한동훈 측 핵심 관계자는 “이종섭 대사 임명으로 국민들의 의구심이 커진 상태고, (통화 기록 등) 처음 설명과는 다른 사실관계들도 나왔다. 특검에 발목 잡혀 민생 해결은 한 발짝도 못 나아가고 있지 않나. 수사 주체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를 대안으로 제시해서 이 문제를 빨리 털고 가자는 취지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채 상병 특검법 수정안이 ‘주변의 건의인지, 한동훈 본인의 의지인지’ 묻는 질문에 “출마선언문이나 질의응답 내용은 함께 의논하고 지혜를 모았지만, 모든 것의 최종 결정은 위원장(한동훈)이 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동훈 캠프 관계자는 “제3자 추천 특검은 국민의힘 전임 원내지도부에서도 검토했던 안으로 알고 있다. 수사만 공정하게 진행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데, 오히려 정부·여당이 수사를 기피하는 모양새에 국민들이 화가 나 있다. 이를 돌파하지 못하면 내후년 지방선거도 어렵다. 어떤 게 진정으로 대통령을 지키고 보수가 이기는 길인지 설득해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들이 기존 국민의힘과 한동훈의 차별화 포인트로 이 문제(채 상병 특검)를 가장 주의 깊게 보고 있었기에 한동훈 위원장도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본인의 생각이고 결단이다”라고 말했다.

아직 3년이나 남은 대통령의 임기

다른 당대표 후보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배신했다’고 한동훈을 비판했다. “자신을 20년 동안 키웠던 인간관계에 대해 하루아침에 배신해도 되느냐(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특정인을 위한 배신이 국민을 위한 배신이 아니라 사익을 위한 배신이라면 이해할 수 없다(나경원 의원)”, “절윤(絶尹·윤 대통령과 연을 끊음)이 된 배신의 정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윤상현 의원)”.

아이러니한 일이다. 한동훈과 윤석열이 어떤 관계인가. 두 사람은 2003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대선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며 처음 만났다. 2006년 현대차그룹 비리 사건과 론스타 외환은행 매각 사건,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특검 수사를 함께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두 사람은 각각 서울중앙지검장과 중앙지검 3차장으로 일하며 이명박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 기소했다. 2019년 윤석열과 한동훈은 각각 검찰총장과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영전했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를 수사했다.

2020년 1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 직후 한동훈은 부산고검 차장으로 좌천됐다. 2020년 3월 불거진 일명 ‘채널A 사건(한동훈이 채널A 기자와 공모해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당시 여권 인사들의 비리를 캐내려 했다는 의혹)’으로 한동훈은 법무부 감찰을 받고 두 차례 압수수색을 당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한동훈에 대한 감찰과 수사를 방해했다는 등의 이유로 2020년 12월 정직 2개월 징계를 받기도 했다. 2021년 3월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의를 표명했고, 2022년 5월 대통령이 됐다.

2022년 5월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위원 임명장 수여식이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당시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연합뉴스

1973년생으로 사법연수원 27기인 한동훈이, 만 49세 나이로 윤석열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신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동훈을 두고 “(문재인) 정권의 피해를 보고 거의 독립운동처럼 (수사)해온 사람”이라고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총선을 앞둔 지난해 12월26일 한동훈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당대표)에 취임할 때만 해도 그러한 신뢰 관계가 유지되리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한동훈이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1월19일)라고 발언하면서 두 사람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1월21일 대통령실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여기에 한동훈이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라고 일축하면서 ‘윤-한 갈등’이 폭발했다. 두 사람은 1월23일 충남 서천 화재 현장에서 만나 화해한 듯했지만, 이후에도 한동훈은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받는 이종섭 대사의 조기 귀국과, MBC 기자에게 1980년대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한 황상무 시민사회수석 사퇴를 촉구하며 대통령실과 충돌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직후 비상대책위에 점심식사를 제안했을 때 한동훈은 건강상 참석이 어렵다고 거절했다. 한때 ‘약속대련’이라는 해석도 나왔으나,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둘의 사이는 알려진 것보다 더 멀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게다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가 한동훈에게 1월15일부터 1월25일까지 보낸 문자(텔레그램 메시지) 다섯 건이 뒤늦게 공개되고, 한동훈이 여기에 답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거세졌다. 원희룡 측은 김건희 여사가 명품 가방 수수를 사과할 의향이 있다는 취지의 문자를 보냈는데도 한동훈이 무시했다고 주장하고, 한동훈 측은 대통령 등이 김건희 여사가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여러 경로로 전해오는 상황에서 사적으로 김건희 여사에게 답장하는 게 오히려 부적절했다고 주장한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는 아직 3년이나 남았다. 이른바 ‘친윤계’로서는 대통령과 껄끄러운 당대표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원희룡 전 장관이 “대통령과의 신뢰”를 강조하고 나섰다. 원희룡 전 장관은 당초 출마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가, 6월19일 윤석열 대통령과 용산에서 만나고 다음 날인 6월20일 전격적으로 당대표 출마 의사를 밝혔다. 원희룡 전 장관은 “나경원·윤상현 후보는 대통령과 만나서 식사까지 하고 갔는데, 한동훈 후보는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에게 전화했고, (이에 비서실장이) ‘대통령한테 직접 전화드리는 게 예의 아니냐’고 해서 (한동훈 후보가 대통령에게) 전화했는데 ‘잘해봐라’ 하고 끝났다고 말씀하시더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한동훈 후보와 윤 대통령의 사이가 원만하지 않음을 강조한 말이었다.

처음에 친윤계는 당대표로 나경원 의원을 염두에 두었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나경원 의원이 5월27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에서 개헌 관련 질문을 받고 “4년 중임제를 논의하면서 대통령 임기 단축 얘기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라 먼저 얘기하기 조심스럽지만, 개헌을 논의할 땐 모든 것을 열어놓고 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가 대통령실과 당 지도부가 불쾌감을 표하자 한발 물러선 점을 고려하면, 친윤계 후보로까지는 신뢰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나경원 후보는 지난해 3월 전당대회 때도 유력 주자로 거론되었으나 친윤계 초선의원들이 ‘연판장’을 돌려 출마를 접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나경원은 원희룡에 대해선 “출마 자체가 이미 채무(빚)인 후보”, 한동훈에 대해선 “배신 프레임의 늪에 빠졌다”라며 친윤-반윤 모두로부터 거리를 두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윤상현 후보도 “한동훈 대 원희룡 구도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싸움으로 당을 분열시킨다. 누가 되든 후유증이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다”라며 한동훈·원희룡 후보 모두를 견제하고 있다.

그래서, 누가 국민의힘 당대표가 될까? 여론조사상으로는 ‘1강 2중 1약’ 구도에 가깝다. 한국갤럽이 7월9~11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에서 당대표로 한동훈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57%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 나경원 18%, 원희룡 15%, 윤상현 3%, 의견 유보 7% 순이었다. 물론 여론조사로 결과를 예측하긴 어렵다.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은 당원 선거인단 투표 80%, 일반 여론조사 20%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약 84만명(2023년 기준)으로 전국 유권자 2% 미만인 전당대회 선거인단 의중을 여론조사로 잡아내긴 불가능하다.

‘반한동훈’ 세력이 결집할 가능성은?

다만 20%가 반영되는 일반 여론조사는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을 대상으로 이뤄지므로 이를 추정해볼 순 있다. 앞서의 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을 대상으로 보면, 한동훈 45%, 나경원 15%, 원희룡 12%, 윤상현 3%, 의견 유보 25% 순이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만약 국민의힘 전당대회 룰대로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어 결선투표로 가면, ‘반한동훈’ 세력이 결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국민의힘에서 선거인단 투표를 할 수 있는,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의 약 40%는 영남 지역 당원으로 추정된다. 국민의힘 지역구 의석 중 영남 비율이 65.6%에 달한다.

한 PK(부산·경남) 지역구 의원은 “당원들이 아직은 관망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 TK(대구·경북) 지역구 의원실 관계자도 “우리는 눈치만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당대표와 함께 지도부를 구성할 최고위원 후보 중 영남 출신은 김재원 후보 정도다. ‘영남’이 조용한 이유에 대해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의원들 입장에선 어느 쪽이 내 재선에 도움이 될지 애매한 거다. 친윤 쪽에 가려니 (전당대회에) 질 것 같고, 그렇다고 한동훈 쪽으로 갔다가 (반윤으로 낙인 찍혀) ‘작살’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동훈이 내놓은 채 상병 특검법 수정안에 대해 “중도층에는 호소할 수 있겠지만, 당원들은 고관여층이란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당원들 상당수는 누가 추천하든 특검이라는 조직이 일단 만들어지면 성과를 내야 하고, 궁극에는 대통령 지시의 불법성을 입증하려 들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원희룡 후보는 일부 당원들의 이 같은 ‘불안’을 파고든다. “민주당은 진상규명에 관심 없다. 특검이라는 판을 깔아서 대통령 탄핵의 미끼를 물게 만드는 거다. 모든 우파의 생명을 걸고 왜 그런 무모한 도박을 해야 하나?(원희룡 캠프 관계자)"

특검이 탄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비율은 앞서의 갤럽조사에서 25%에 그친다. 대구·경북은 35%, 부산·울산·경남은 36%에 불과하다. 계파색이 옅은 한 수도권 의원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지금 당원들이 대통령 팬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수도권 의원은 “(주변 의원들에게 설명하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는 의원도 적지 않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과거 ‘친윤계’로 꼽혔던 배현진 의원뿐 아니라 윤석열 측근이자 검찰 출신인 주진우 의원 등도 한동훈을 물밑에서 돕는다고 알려진다. 한 초선의원은 “민주당과의 투쟁에 가장 적절한 이는 한동훈 위원장 아닐까 싶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보수의 위기가 보기보다 더 구조적이고 깊다는 데 있다. ‘총선을 윤석열 때문에 졌느냐, 한동훈 때문에 졌느냐’는 다소 한가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5년쯤 지나면 ‘386 세대’ 전부가 60대가 된다. 이 60대는 10년 전의 60대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민주당 계열 정당의 지지자들이다. 10년 전의 60대들은 70대가 되거나 돌아가시고 있다. 보수정당이 새로운 지지층을 찾아내야 할 텐데, 과연 그런 장기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지난 총선에 왜 졌느냐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준석을 쫓아낸 탓이 가장 크다. 물론 그가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만든 정당(개혁신당)이 대단한 위세를 가지진 못하고 그의 노선을 두고도 논쟁이 많지만, (2030 남성이라는) 새 지지 기반을 찾아낸,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자산을 국민의힘 스스로 털어낸 것만은 분명하다.”

4월11일 이준석 당시 개혁신당 대표가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비슷한 인식을 한동훈의 출마선언문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우리 국민의힘을 선택해주셨던 분들은 단일한 생각을 가진 하나의 균질한 지지층이 아니었습니다. 정권교체를 위해 뭉쳤던, 다양한 생각과 철학을 가진 유권자들의 연합이었습니다. 이 유권자 연합을 복원해야 합니다.” 다만 제3당을 포함한 보수세력 재편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한동훈은 6월24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민국에 굉장히 많은 스펙트럼의 정치인들이 계십니다. 장점이 있으신 분이고 또 단점도 지적받으신 분이고 그렇지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모두 다 대한민국을 더 나은 나라로 만들고, 국민들을 잘살게 하기 위한 정치를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만 답했다. 이번 전당대회에 불출마한 당내 안철수 의원·유승민 전 의원과 어떤 관계를 가져갈지도 미지수다.

한국의 보수는 분단국가에서 ‘관료-재벌-영남’을 세 축으로 비교적 쉽게 다수파를 만들어 집권해올 수 있었다. 이런 구조에서는 대안적 이론이나 이념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이제 보수를 보호했던 이런 울타리들은 점차 해체되고 있다. 박원호 교수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국정교과서 파동을 계기로, 탄핵 이전인 2016년 총선에서부터 이미 기존 ‘국가주의적 보수’와 구분되는 ‘자유주의 보수’ 지지자들이 안철수의 국민의당 등으로 이탈했다고 분석해왔다.

‘조선제일검’의 잣대는 공정한가

제19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서울 강동을에서 10년간 당협위원장을 맡은 이재영 국민의힘 강동을 당협위원장은 이번 총선 패배 뒤 ‘첫목회’라는 원외 조직을 만들었다. 이재영 당협위원장은 “보수나 우파라는 단어 안에 내재된, 과거에 우리가 알고 있던 이념과 노선이 과연 지금의 세계와 한국 사회에 맞는지 치열한 논쟁이 그동안 없었다. 공유할 핵심 가치가 없으니 보수 진영은 방향성을 잃었고, 뭉치지 못한 채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이를테면 보수가 지키려는 ‘자유주의’의 가치가 어떤 것이고 그에 맞는 노동·연금 개혁 방안은 무엇인지,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 채 상병 순직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인지 이제라도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방향성을 정립해나가야 보수의 재건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한동훈식 자유주의’는 아직 빈 공간이 많다. 출마선언문에 따르면 그가 생각하는 보수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장려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며, 경쟁에 탈락하거나 참여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인간적 삶을 보장하는 것”과 “국가안보에 대한 확고한 생각”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강한 의지”다. 그는 ‘국민’이 아닌 ‘동료 시민’이라는 용어를 쓴 첫 보수 리더다. 법무부 장관 시절 인구 위기 해법으로 ‘이민청’ 설립을 제안했다. 하지만 총선 때 ‘격차 해소’ 구호를 언급했을 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나 수도권 집중 문제를 풀 대안은 제대로 제시하지 않았다. 노동조합과 같은 자율적 결사체나 다양한 가족 형태 인정 등 자유주의의 본질에 가닿는 이슈에 대한 그의 입장도 확인된 바 없다. 세수 부족에도 감세를 이어가는 현 정부에 대해 한동훈은 “우리 정부는 대단히 정교한 정부이고 그 정책을 지지한다”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한동훈 후보를 응원하는 지지자들이 6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 모였다. ⓒ국회사진취재단

치명적 약점도 있다. 과거 윤석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정치 경험이 없는 검사 출신이다. 한동훈 자신을 둘러싼 의혹도 적지 않다. 손준성 검사가 민주당 계열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을 직접 작성해 김웅 전 의원을 통해 국민의힘에 전달했다는 이른바 ‘고발사주(1심에서 징역 1년 선고, 항소심 진행 중)’에 관여한 의혹,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취소하라고 윤 대통령이 낸 소송에 법무부 장관으로서 고의로 패소했다는 의혹, 자녀의 허위 스펙 의혹 등이다. 조국혁신당은 이런 의혹을 밝히겠다며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했다.

일부 지지층은 ‘조선제일검’이라 부르며 그의 공격적 수사를 높이 평가하지만, 그 잣대가 공정한지도 따져볼 일이다. 한동훈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 사법농단 수사 상황을 언론에 흘려 ‘검찰청의 편집자’라는 지적을 받을 만큼 검사로서 다른 주체들을 공격적으로 수사해왔다. 지난해 9월에는 이재명 전 대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국회에 체포동의안을 요청했으나 법원이 영장을 기각했다. 반면 그는 김건희 특검에 대해선 “지금 단계에서 특검을 도입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면서 당대표가 되면 특별감찰관을 추천하고 제2부속실 설치를 강력하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한동훈 본인이 피의자로 입건된 사건에선 철저히 ‘수사 방어’에 임했다. 채널A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24자리에 이르는 한동훈의 아이폰 비밀번호를 풀지 못했고 결국 대선 직후인 2022년 4월 한동훈을 불기소 처분했다.

한동훈이 당대표가 되면 보수의 위기가 극복될 수 있을까? 아니면 한동훈은 그저 술 대신 제로콜라를 마시는 제2의 윤석열 대통령일 뿐일까?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그가 당선되든 안 되든, 이미 보수의 분화는 시작되었고 더욱 가속화되리라는 점이다. 이는 보수 진영만의 관심사만은 아니다. 집권 여당이 어떻게 정부를 견제하고 또 견인할 수 있을지는 사회 전체 차원에서도 중차대한 과제다. 국민의힘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차기 보수정당의 얼굴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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