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를 부러워하는 삼성전자 노조의 패착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반도체 등) 부문이 중심이 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위원장 손우목)이 지난 8~10일까지 총파업을 실시한데 이어 11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회사가 무성의한 협상태도를 보인다는 이유다.
그 과정에서 전삼노 측은 조합원들의 파업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노조 홈페이지에 '[중요]현대자동차 '24년 임금협약 잠정합의안을 보면서'라는 분석자료를 올려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의 협상 내용을 비교해 눈길을 끌었다.
'현대자동차-삼성전자 24년 임금협약 결과비교'에는 현대차 노조가 협상을 통해 얻어낸 금전적 보상을 삼성전자의 제한적 복지와 비교해 파업 동력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같은 업종도 아닌 타사의 임금협상 테이블을 비교한 것이 이례적이다.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회사를 상대로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는 있다. 문제는 그런 시도와 목소리들이 사실에 부합하거나 설득력이 있느냐는 게 핵심이다. 전삼노가 현대차와 비교한 임금협약 내용을 깊이 파봤다.
사실 기업의 역사와 업종에 차이가 있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직원들의 상황을 비교한다는 자체가 논리적이지는 않다. 그래도 비교해야 한다면 정확한 사실 관계를 조합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노조 집행부의 의무이기도 한데 그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다.
분석자료에는 삼성전자 임금인상은 'B/U 3%+성과인상률 2.1%'로 표기했다. 쉽게 말하면 전년과 비교해 5.1% 인상한다는 얘기다. 노조는 이보다 0.5%포인트 높은 5.6%로 올려 달라며 파업에 나섰다.
현대차는 기본금 11만 2000원+컨베이어수당 인상으로 표기해놨다. 금액으로 숫자가 커보이지만 기본급 4.65% 인상을 풀어쓴 것이다. 한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 비교지만 현대차보다 이익을 절반도 못낸 삼성전자 노조가 임금인상률은 현대차보다 1%포인트 이상 더 높게 달라는 얘기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영업이익 15조원의 사상최대 실적을 올렸고, 전삼노의 주축인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지난해 사상 최악인 15조원의 적자를 냈다. 그로 인해 삼성전자 전체적으로는 6조 6000억원의 영업이익에 그쳤다.
지난 10년간(2014~2023년) 현대차 조합원들의 매년 평균근속 연수(사업보고서 기준)를 평균해보면 18.05년이고, 삼성전자는 11.5년이다. 현대차 조합원들이 6.5년 이상을 더 직장에 다녔는데도 1인당 평균연봉은 현대차가 9730만원(10년간 평균), 삼성전자는 이보다 20% 이상 많은 1억 1800만원이다.
사실 비교대상이 안되는 비교표를 올려놓은 것도 문제지만 그 상황에서 현대차보다 더 높은 임금인상률을 요구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삼노 측도 '임금협약 결과 비교'라는 자료를 두 회사를 단순 비교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삼성전자 직원들이 현대차 직원들보다 더 나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비교하면 할수록 손해로 보인다.
비교대상은 안되지만 사회통념을 기준으로 굳이 비교한다면 '현대차 직원보다 6.5년 이상 덜 근무한 삼성전자 직원들이 자신들보다 지난해에 이익을 더 낸 현대차 직원보다 임금(10년 평균)을 더 받고 있다'는 얘기가 밖에 안된다. 전삼노가 자사 조합원들을 독려하기 위해 내놓은 '현대차와의 비교'표는 논리적 패착에 가깝다.
또한 여기에 붙여놓은 현대차의 사원1년차, 대리1년차, 과장1년차 계약연봉과 성과금 합계 등 소위 '현대차 연봉표'에 대해 현대차 측은 "우리 것이 아니다"며 "우리는 사원과 대리, 과장의 개념이 없다. 책임 매니저부터는 연봉제여서 개인마다 연봉이 다르다"고 밝혔다.
전삼노 측은 "현대자동차는 파업을 하지 않아도 교섭을 체결하며, 노동자를 존중하는데 삼성전자는 왜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고, 노동조합을 탄압하는가"라고 묻는다.
이는 잘못된 질문처럼 보인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사상최대 이익을 내 파업하지 않고 교섭을 체결했는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노조는 사상최악의 실적에도 총파업에 나서 생산라인을 멈추게 하면서 현대차처럼 대우를 받아야 하느냐?"라고 되묻는 게 맞을 듯하다. 또 지난 9년간은 항상 최고의 성과급(연봉의 50% 혹은 기본급의 700%)을 받았는데, 지난해에는 왜 못받았는지를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같은 삼성전자 내에서 타 부문이 성과급이 적거나 없을 때는 침묵하던 DS부문이 지난해 실적 악화로 한차례 성과급이 나오지 않자 라인 가동을 멈추려고 들고 일어섰다는 게 삼성전자 내외부의 평가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입사 10년차 미만 직원의 경우는 지난해 'OPI 0%'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업부나 부문은 몰라도 자신들은 연봉기준 성과급(과거 PS) 50%(금액으로는 수천만원)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던 게 DS부문이다. 2019년 반도체의 영업이익이 직전해 보다 70% 가량 떨어졌을 때 OPI가 29%까지 내려간 적이 있지만 그 외에는 연봉의 50%를 당연한 월급처럼 받아왔다.
DS 직원들은 '나는 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일을 열심히 했는데 왜 나의 임금이 줄어들지?'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최고경영진들의 잘못된 결정이 기업실적 악화에 영향을 미쳤는데 왜 우리가 그 피해를 봐야지'라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OPI라는 성과급의 성격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이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주기로 한 성과급이라는 것은 서로 주지의 사실이다.
평균 1억 4400만원을 받을 때도 있고, 1억 100만원을 받을 때도 있지만 삼성전자의 다른 사업부들이 2%, 7%를 받을 때는 DS는 연봉의 50%인 수천만원씩의 성과급으로 받아온 터였다. 지난해 OPI가 'Zero'가 되면서 노조 참여율이 급격히 늘어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다른 사업부의 경우 OPI는 '나와 우리'의 성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해오며 살아왔다. 반면 DS부문은 매년 50%가 나오는 게 당연시된 사례다. 세상에 당연한 보상은 없다.
그런데 지난해 국내 영업이익 1위 기업이 바뀌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15조원의 적자를 내는 동안 현대자동차는 사상최대인 15조원의 이익을 내면서 영업이익 1위 기업에 올랐다. 개그프로그램에도 대표기업의 이미지가 삼성전자에서 현대자동차로 바뀌었을 정도다. 초일류를 목표로 달려가던 삼성전자가 추춤하는 사이에 현대차나 SK하이닉스, LG전자 등 다른 경쟁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한 결과다.
현대차 그룹은 모빌리티 분야에서 자동차는 물론 UAM(도심항공교통)이나 로봇, 항공산업 등 다양한 분야로 미래산업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제는 '갓현차(God+현대차)'라고 불리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고임금과 안정적인 환경에서 책임질 일은 하지 않는 '공무원' 스타일로 변해간다며 '삼무원(삼성+공무원)'이라는 비아냥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 초격차를 잃어가고 있는 삼성은 현대차 노조가 6년 전부터 하지 않는 파업이라는 '놀이'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현대자동차의 컨베이어밸트 라인을 세우는 것과 반도체 생산라인을 세우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컨베이어벨트 라인은 멈췄다가 다시 스위치를 켜면 바로 재가동할 수 있지만, 반도체 생산라인은 재가동을 위해서는 수주 혹은 한달 이상이 소요된다.
자동차 기업들이 집중휴가제라는 것을 통해 한창 더울 때 일제히 1~2주 정도 라인을 세우고 한꺼번에 휴가를 떠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반도체의 경우 24시간 365일 사실상 가동하는데 이는 라인을 멈출 경우 피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삼노는 12일 오전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 라인이 있는 삼성전자 경기 평택캠퍼스를 찾아 파업 동참을 통한 생산차질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독려했다. 또 15일에는 기흥 8인치 라인 가동을 멈추기 위한 파업동참 홍보에 나선다고 한다. 노동운동의 선배인 현대자동차는 지난 13일 6년 연속 파업없이 임금협상을 타결했다. 파업보다는 협상을 통한 해법이 상호이익이라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주주들이나 상당수 국민들은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추상적인 주장이나 노조창립일 하루 휴무일 지정 등 지엽말단적인 문제로 '국가기간산업'인 반도체 라인을 멈춰서게 하겠다'는 전삼노의 발상은 치기어리게 볼 수밖에 없다.
선배들이 닦아 놓았던 초격차 일류기업 삼성전자의 자부심은 이제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 생산라인을 멈추려 하는 시도와 관련해 더 진지하고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지금부터는 전삼노가 책임져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그 결과가 무엇이든.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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