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명 알기까지 수년… 건강·돈·시간 다 잃었다 [고통의 굴레, 희귀질환④]
첫아이의 특별함. 그 벅찬 마음을 모르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올해로 14세가 된 이찬영(가명·양주)군도 정수현(가명·43)씨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첫아이였다. 그런데 찬영군은 태어났을 때부터 울지 않았다. 엄마 품에 한 번도 제대로 안겨보지 못한 채 각종 의료기기 위에 뉘어지며 검사에 검사를 거듭했다.
누구도 정확한 원인을 알려주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정씨는 자신의 탓인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뛰어다녔다. 스스로 의사가 돼야 했다. 그렇게 2년. ‘펠란-맥더미드 증후군’이라는 병명을 알아냈다. 국내 유병인구가 200명도 안 되는 극희귀질환이다.
찬영이가 아프기 시작해 진단을 받기까지 치열하고도 애절했던, 그때의 기록이다.
2011년 7월19일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났다. 3.1kg, 정상 체중이다. 이름은 이찬영으로 지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우리 찬영이는 울지를 않는다. 혹시 어디가 아픈가. 걱정만 늘어간다.
2011년 8월1일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들었다. 찬영이에게서 황달, 강직, 우심증, 우측 귀 청력 소실이 확인됐다고 한다. 이제 막 태어났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 걸까.
2011년 11월28일
저 작은 몸으로 MRI를 찍고 피검사를 했다. 제발 별일없기를 바랐는데, 뇌 병변이라고 했다. 심각한 지적장애와 사지강직으로 인한 보행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소뇌 이상이 있어 만약 진행성일 경우 근육 소실뿐 아니라 아이가 사망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2011년 12월20일
찬영이가 몹시 아프다. 병원에 가니 RSV폐렴이라고 했다. 뉴스에서 폐섬유화로 아이들이 많이 죽는다고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제발 우리 아이를 살려주세요 기도했다.
2012년 3월2일
처음 진단받았던 RSV폐렴은 폐쇄성폐질환이 됐다가 기도폐쇄성폐질환로 바뀌었다. 그리고 오늘은 만성기도폐쇄성폐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번에는 우리 아이가 나을 수 있을까. 제대로 된 병명은 맞는 걸까.
2012년 5월6일
찬영이가 입원했다. 찬영이의 시력에도 이상이 있었다. 사시 진단을 받았고 시력이 -3.65가 나왔다. 작고 소중한 우리 아이. 말도 못 하고 얼마나 답답했을까.
2012년 5월20일
의사가 추가 검사를 하자고 했다. 부동시, 입체감 이상이 새로 나타났다. 그래서 걷지도 못하고, 뒤집기도 못 한다고 했다. 몇 달 사이 여기저기 진료를 받으니 우리 아이가 꼭 실험체가 된 것 같다.
2012년 6월20일
치료비가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 찬영이를 치료하려면 매달 1천만원 이상의 의료비가 필요하다. 남편과 상의 끝에 집을 팔기로 결심했다. 직장이 먼 남편은 자취방을 구해 혼자 살기로 했고 나는 찬영이와 병원에서 지내기로 했다. 우리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2012년 7월20일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보통 아이들은 주사를 맞으면 울 텐데, 왜 우리 찬영이는 울지를 않지. 아이가 병원에 오래 있어서 그런 줄만 알았다. 검사 결과 찬영이는 통증을 못 느낀다고 했다.
2013년 5월20일
답답하다. 아이가 도대체 어디가 아픈 건지도 모르겠고, 치료를 한다고 해서 좋아지지도 않는다. 남편과 나는 지칠 대로 지쳤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걸까. 다른 병원에 가봐야겠다.
2013년 7월24일
옮긴 병원에서 한 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은 찬영이가 ‘펠란-맥더미드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했다. 극희귀질환이라니. 2년간 정확하지 않은 진단으로 아파했을 찬영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돈과 시간 모두 날린 것 같아 허망하다.
■ “의사도 원인을 모르겠대요”…희귀질환자의 진단방랑기
병명 하나를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세월을 쏟아야 했던 건 비단 찬영이만은 아니다. 경기일보는 남들은 쉽게 받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떠돌아야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 눈앞이 보이지 않아요…‘모그(MOG)항체질환’ 김수일씨(가명·50·성남)
매일 똑같은 시간, 출근을 하기 위해 눈을 떴는데 몸이 이상했어요. 다리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죠.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갔지만 병원에선 ‘특별한 이상이 없다’며 집으로 가라고 했어요. 문제는 그날 새벽이었죠. 목 밑으로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된 거예요. 급하게 다시 간 병원에서 원인을 찾기 위해 3개월 동안 수많은 검사를 했어요. 첫 진단은 뇌염, 뇌수막염, 척수염. 두 달 반이 지나도 차도가 없자 약을 바꿨고, 다행히 하반신 마비 증상이 점점 사라졌어요. 퇴원을 3일 앞둔 어느 날,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어요. 세상이 잿빛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시신경에 문제가 생겼다네요. 그렇게 받은 두 번째 진단은 시신경척수염이었어요. 암담했어요. 3개월 동안 들어간 병원비만 4천만원. 이후로도 두 번의 블랙아웃이 왔지만 원인은 찾을 수 없었어요. 한 번 더 블랙아웃이 되면 앞으로 평생 앞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죠. 그러던 어느 날 기사에서 ‘MOG(모그)항체질환’이라는 것을 봤어요. 제 증상과 너무 똑같았죠. 그렇게 4년 만에 정확한 병명을 알게 된 거죠.
#2. 손발이 굳어 갑니다…희귀유전병 ‘샤르코마리투스(CMT)’ 김재석씨(가명·64·경기 광주)
어렸을 때부터 몸이 조금씩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학교에서 100m 달리기를 하면 1등으로 가다가도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진다거나, 친구들과 농구를 하다가 호흡이 금세 가빠지곤 했죠. 쪼그려 앉으면 뒤꿈치가 땅바닥에 닿지 않고 항상 들려 있었어요. 점점 손이 굳어 밥을 먹을 때 젓가락질하는 게 불편해질 정도였어요. 병원에 가서 근전도 검사를 받았는데 이상이 없다고 했어요. 처방해 준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자, 의사는 제게 “종교의 힘으로 사셔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20대 초반부터 서울, 경기, 인천 등에 있는 모든 병원을 돌아다녔어요.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다리에 있는 조직을 잘라내 검사를 하더니 ‘말초신경염’이라는 진단을 내렸어요. 치료를 위해 스테로이드제를 지속적으로 먹었죠. 약 부작용으로 몸무게가 30㎏ 가까이 증가했어요. 살이 찌니까 걷는 게 더 힘들어졌고 약을 끊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20년이 지났을 무렵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샤르코마리투스’ 진단을 받았어요. 스테로이드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었던 거죠.
#3. 다리에 힘이 없어요…‘유전성강직대마비(HSP)’ 이정우씨(가명·39·수원)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김경희 기자 gaeng2da@kyeonggi.com
오민주 기자 democracy555@kyeonggi.com
이진 기자 twogeni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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