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오진에 주저앉고… 보상도 없어 무너진 삶 [고통의 굴레, 희귀질환⑤]
13년간 ‘휠체어 신세’… 배상액 고작 1억
정당한 진료 과정서 ‘오진’ 의사 책임 없어
환자, 국가적 지원 태부족… ‘경제 부담’ 커
세계적 수준이라는 현대의 첨단 의료시스템 속에서도 희귀질환자 중 상당수는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 수많은 오진을 경험하며 오랜 시간을 들여 여러 병원을 떠돌고 있다. 이 기간이 길수록 의료비 부담은 물론이고 신체적·정신적 고통까지 극심해지지만, 이를 보상받을 길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 오진에 13년간 휠체어 신세...“의사 과실로 보기 어려워”
희귀질환자들은 잘못된 진단으로 인해 치료 시기를 놓치면서 장기간 증상이 지속되거나 악화되는 경우가 많지만 보상받기는 힘들다. 희귀질환의 특성상 다른 질환으로 오진한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려워서다.
지난 2017년 오진으로 13년간 걷지 못한 희귀질환자가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배상액이 너무 적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A씨는 10년 넘게 불편한 몸으로 휠체어 신세를 지다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희귀질환인 ‘세가와병’ 진단을 받았고, 약물 치료를 통해 일주일 만에 걸을 수 있게 됐다.
A씨의 가족은 처음 오진한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배상액은 1억원뿐이었다. 당시 의료 기술로는 세가와병을 발견하기 어려웠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인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는 “희귀질환의 경우 선천적이거나 유전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사의 오진을 귀책사유로 특정하기 힘들다”며 “전공한 사람이 아니면 알아내기 힘든 경우도 많아 판례를 보더라도 오진으로 인한 배상을 받는 건 어렵다”고 설명했다.
■ 오진과 진단 지연의 반복... 보상도, 대안도 없다
이처럼 의사가 정당한 진료 과정을 거쳤음에도 오진을 했다면 의사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순 없다. 물론 책임을 물어서도 안 된다. 자칫 희귀질환에 대한 진료 자체를 꺼리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귀질환자들의 진단 방랑을 줄이기 위한 국가적 지원이 부족한 건 분명한 문제다. 경제적 부담과 심적 고통을 모두 짊어져야 하는 희귀질환자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의 대안과 관련 지원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정부는 희귀질환자 치료비의 본인부담률을 10%까지 낮춰주는 산정특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 과중한 의료비 부담으로 사회·경제적 수준 저하가 우려되는 희귀질환자에 대해 의료비 지원도 하고 있다. 기준에 따라 월 30만원의 간병비, 보조기기 구입비, 특수식이 구입비 등을 지원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만 지원을 받는 제도기 때문에 오진을 거치며 허비한 시간을 보상받진 못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희귀질환의 진단 시기를 앞당겨 오진을 줄이는 일이다.
희귀질환은 80% 이상이 유전적이거나 선천성 질환이다. 조기 진단을 통해 가족 내 대물림을 예방하고 불필요한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역시 희귀질환 진료지원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삼성서울병원 등 17개 병원을 권역별 희귀질환 전문기관으로 지정해 운영 중이다. 경기지역은 분당서울대병원과 아주대병원 두 곳에서 희귀질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권역별 거점센터에 대해 모르고 있는 희귀질환자들이 많아 정작 이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발표된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의 ‘희귀질환 환우 대상 국가 지원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거점센터에 대해 몰랐다고 응답한 비율이 57.5%에 달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51.6%)은 거점센터에서 진료 및 치료를 받을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알았다면 이용했을 것이란 얘기기도 하다.
전문가 제언 아주대의대 의학유전학과 김현주 명예교수
“정확한 진단·조기대응 해결책 유전상담서비스 활성화 시급”
아주대 의대 의학유전학과 명예교수이자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인 김현주 교수는 오진과 진단지연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으로 ‘유전상담서비스’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희귀질환은 말 그대로 드문 질환이기 때문에 오진을 막기 힘들다. 의사들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려고 한다면 희귀질환 진단을 꺼리게 될 것”이라며 “국가는 환자들이 더 이상 진단 방랑을 겪지 않도록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전상담 서비스를 통해 환자들이 정확한 진단과 조기대응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에서도 2006년부터 ‘희귀난치성질환센터 Helpline’ 홈페이지를 통해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한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유전상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면서도 “국내 의료 현장에서 유전상담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이 정보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유전상담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로 의료진의 시간적 여유, 비용, 전문성 등을 꼽았다.
그는 “국내는 아직 유전상담이 의료행위로 보험 수가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의학유전학팀으로서 전문적인 유전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외래 진료 역시 한 환자에게 10분 이상 할애하기 어렵다 보니 최소 30분 이상이 필요한 유전상담이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게다가 전문 유전상담 교육과 수련 경험이 없는 의사들도 많다 보니 유전상담 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무엇보다 의료보험 급여도 받지 않는 유전상담을 제공할 것이라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김경희 기자 gaeng2da@kyeonggi.com
오민주 기자 democracy555@kyeonggi.com
이진 기자 twogeni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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