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한 사람들이 더 걸리는 '노안 아닌 노안 같은' 질병 [중·꺾·마+: 중년 꺾이지 않는 마음]
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기지만, 크고 작은 고민도 적지 않은 시기다. 중년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전문가들이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노안 같지만 방치하면 위험
스트레스, 과로 때문에 발생
달라진 중년의 신체 돌봐야
Q: 과도한 업무에 지쳐 잠든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뭔가 평소보다 어둡다는 느낌이 든 40대 A씨.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이러다 말겠지 생각하며 출근해서 모니터를 보는데, 왠지 어제보다 모니터도 핸드폰도 보기 힘들어진 것 같다. 근래 시작된 노안이 갑자기 심해진 걸까 하고 가볍게 눈을 비비고 손을 떼려는데, 아뿔싸 우측 중심부에 어두운 부분이 둥글게 필터를 끼운 것처럼 보인다.
A: 중년 초입이 되면, 보이는 것이 전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안 보이는 것은 아닌데 빨리 피곤하고 침침한 것 같다. '비슷한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별문제 없다더라'는 주변 사람의 말을 위안 삼으며 그렇게 하루를 또 보낸다.
A씨 역시 단순 노안이었을까. 노안이란 보통 근거리 시력저하를 말하며 조절력 저하를 의미한다. 우리가 근거리를 보고자 하면, 눈 안에 있는 섬모체근이라는 작은 근육이 작동해 수정체의 굴절력을 변화시켜 초점이 맞춰지고 근거리가 잘 보이게 된다. 젊을 때는 이 과정이 보통 우리가 인지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일어나 먼 곳과 가까운 곳을 자유자재로 보게 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섬모체근의 기능과 수정체의 탄성이 떨어지게 되면, 점점 가까이 보다 멀리 보면 잘 안 보이기도 하고, 근거리가 처음엔 잘 보이다가 오래 보다 보면 차차 흐려지며 급기야는 근거리가 보기 어려워지게 된다. 조절력은 근거리 작업의 강도나 시간, 전신적인 피로에도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피곤할 때 덜 보인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근거리 작업을 한 번에 많이 하지 말고 중간에 쉬어가며 하라고 의사들이 권고하는 것이다.
A씨는 노안으로 방치했다면 매우 위험했을 '중심성 장액성 맥락망막병증'이라는 질환이 생긴 케이스였다. 중심성 장액성 맥락망막병증은 망막하부에 액체가 고이는 질환이다. 망막이란 빛이 들어와 상이 맺히는 카메라 필름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인데 이곳에 액체가 고이니 중심이 어둡게 보이고, 망막이 불룩 솟아올라 굴절력이 변하게 되어 근거리가 보기 힘들어진다.
이 질환은 40대 남자에게 호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30대나 50대 이상에서도 종종 관찰이 되고 여성 환자도 드물지 않다.
질환의 원인으로는 스테로이드 약물치료가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으며 보통은 심한 스트레스, 과로가 가장 흔한 원인으로 전해진다. 스테로이드나 스트레스가 우리 몸 호르몬 체계에 영향을 주고 맥락막의 투과성을 증가시켜 망막하 공간에 물이 차게 된다. 직장에서 업무 문제나, 갑작스런 가정사가 생겼을 때 발병하여 병원에 온 환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특이한 점은 환자의 많은 수가 성격이 꼼꼼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완벽주의자인 경우가 많아서 병원에 와서도 진료 과정에 불합리한 점이 있다고 생각되면 열심히 따져 물어, 흡족할 때까지 인과관계를 파악하려 들기도 한다. 필자는 진료실에서 이런 환자에게 늘 완벽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타인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용서해주며, 실수도 해가며 살면 나아진다고 농담을 가장한 진심의 말을 빼놓지 않곤 한다.
실제로 이 질환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잘 쉬어주면 90%의 환자가 3개월 이내에 회복이 된다. 하지만 5~10% 정도의 환자는 물이 빠지지 않고 만성으로 진행되거나 재발을 경험하며 영구적인 중심부 시야장애나 변형 시, 시력감소가 일어나게 된다. 급성기에는 3개월 정도 저절로 호전되기를 기다려 보고, 호전이 안 되는 경우에는 레이저나 안구 내 주사 등의 치료를 시도해 볼 수 있다.
레이저는 물이 새는 부분을 응고시키는 치료로 레이저가 조사된 부분의 손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시행할 수 있는 환자군이 제한적이고, 주사치료도 효과가 부분적이어서 급성기 발병했을 때의 관리와 예방도 중요하다. 중심성 장액성 맥락망막병증을 앓은 환자에게서는 노년에 시력을 위협하는 황반변성의 위험도가 올라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이 되는 대표적 질환으로, 중년에 너무 달리려는 마음과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대한 조바심을 내려놓고, 몸이 주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며 스트레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임수진 압구정성모안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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