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돌파형 혁신, SK하이닉스 HBM 사업 도약의 비결

김희천 캘거리대 경영대학 교수 heechun.kim@ucalgary.ca 2024. 7. 1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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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도체 시장 역동적 경쟁 속
SK, 범용 아닌 맞춤형으로 승부
언더도그에 필요한 혁신 전략 주효
삼성, 파괴적 혁신 전략 고려할 때

요즘 HBM(High Bandwidth Memory·고대역폭 메모리)에 관한 관심이 뜨겁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HBM은 인공지능(AI) 시대에 필수적인 메모리칩이다. 2022년 11월 오픈AI의 챗GPT가 등장한 이후 서버용 HBM 시장이 급성장했다.시장정보회사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2년 D램 산업 내 HBM의 비중은 2.6%에 불과했지만 2024년 말에는 20.1%(842억 달러 중 169억 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의 선도 기업으로 부상했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계의 언더도그(underdog)였던 SK하이닉스가 선두 주자로 거듭나게 된 데는 ‘돌파형 혁신(breakthrough innovation)’이 주효했다. 돌파형 혁신이란 산업 전체를 뒤흔드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는 것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블록버스터급 혁신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메모리칩 분야에서 삼성전자에 밀렸던 SK하이닉스는 어떻게 HBM 시장을 개척해 새로운 경쟁 우위를 갖게 됐을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7월 1호(396호)에 실린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넘어선 비결’을 요약 정리했다.

●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엇갈린 선택

2013년 12월, SK하이닉스는 미국 AMD의 요청에 따라 고성능과 고용량을 동시에 제공하는 혁명적 차세대 메모리칩 HBM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개발 초기 SK하이닉스는 HBM을 범용 메모리칩이 아닌 고객 맞춤형 메모리칩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HBM을 필요로 하는 틈새시장으로 대량의 데이터를 동시에 병렬로 처리하는 고가 게임용 GPU 시장을 공략했다. 하지만 초창기 HBM은 비싼 가격과 발열 및 내구성 문제로 게임 시장에서 큰 환영을 받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2015년 HBM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 2세대 HBM 시장을 선점했고 3세대 HBM 양산에도 앞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돌연 2019년 HBM 전담 연구개발팀을 해체한다. HBM이 개발 비용이 높고 생산 공정이 복잡할 뿐 아니라 고가에 팔리는 비주류 메모리칩으로 고객군이 극히 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리서치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HBM 시장은 전체 D램 시장의 0.8%에 불과했다.

이와 달리 SK하이닉스는 HBM 사업의 하방 위험보다 상방 잠재력에 주목해 이 사업에 지속해서 투자하고 고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성능을 향상했다. 2022년, 그래픽칩 제조업체 엔비디아는 학습용 AI에 유용한 H100 텐서코어 GPU에 탑재할 4세대 HBM(HBM3) 생산을 삼성전자에 의뢰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HBM 연구개발팀을 해체한 이후였기 때문에 주문에 응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계약은 SK하이닉스로 넘어갔다. 이를 계기로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SK하이닉스가 HBM을 활용한 돌파형 혁신으로 언더도그의 반란을 일으킨 셈이다.

● SK하이닉스의 돌파형 혁신

돌파형 혁신은 최상급(high-end) 시장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파괴적 혁신 이론과 다르다. 파괴적 혁신 이론에 따르면 자원이 부족한 신규 진입 업체는 시장의 강자들이 소홀히 여긴 밑바닥(low-end) 고객층을 대상으로 그저 그런 성능의 제품을 저가로 공급하는 전략을 취한다. 반면 기존 기업들은 주류 시장에 있는 고객들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 점진적 혁신을 통한 신제품 개발에 몰두한다.

이에 따라 이들은 신규 기업이 제품의 성능을 개선하면서 주류 시장을 점차 침투해 오는 것에 대응하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 이로 인해 결국 기존 기업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파괴적 혁신 이론의 골자다. 이에 반해 돌파형 혁신은 처음부터 최상급 시장을 노린다. 혁신 초기에는 고객층이 제한될 수 있지만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돌파형 혁신의 가치를 인지하는 고객층이 점차 확대되면서 주류 시장을 대체할 잠재력을 갖추게 된다. 그래서 돌파형 혁신은 신생 기업보다는 기존 기업에서 많이 발생한다. 2007년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이 여기에 해당한다. 1976년 창업한 애플은 1997년 파산 직전까지 몰렸고 델의 조롱 대상이자 컴퓨터 업계의 언더도그였다. 그런데 10년 후 스마트폰 혁명을 통해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꿨다.

● SK하이닉스-TSMC 연합 속 삼성의 대응

SK하이닉스의 공세에 대응해 삼성전자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의 정면충돌을 불사하며 경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엔비디아-SK하이닉스-TSMC로 이어지는 연합이 공고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취할 수 있는 대안은 파괴적 혁신을 통해 저가 또는 신규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삼성전자가 개발하고 있는 추론용 AI 칩인 ‘마하 1(Mach-1)’의 역할이 중요하다. 최근 업계에서는 엔비디아의 GPU와 SK하이닉스의 HBM 패키지가 너무 비싸고 전력 소모량이 많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수년 안에 학습용 AI 시장의 성장세가 줄고 추론용 AI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마하 1의 경우 GPU와 메모리 사이에 데이터 병목 현상을 8분의 1로 줄여 전력 효율은 8배 정도 높이면서 가격은 10분의 1 수준이 될 전망이다. AI 시장이 추론 중심으로 넘어갈 경우 마하 1이 또 다른 돌파형 혁신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희천 캘거리대 경영대학 교수 heechun.kim@ucalgary.ca
정리=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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