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마성의 황성빈, 뜨거운 온몸의 야구
모두가 싫어한 야구선수가 있다. 왜소한 체구를 지녔고 썩 호감 가는 인상도 아니다. 야구팬들은 염색머리를 치렁거리며 껌을 질겅질겅 씹는 '날티' 나는 모습으로 그를 기억한다. 방망이를 던져서까지 공을 맞히려 하고 라인을 완전히 벗어난 파울 타구에 1루까지 전력질주한 후 타석으로 느릿느릿 복귀하고 루상에 진출해 춤을 추는 듯 과도한 스킵 동작을 하고 안타를 치고 얄미운 세리머니를 한다. 상대팀 선수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고 야구팬들은 그를 '극혐대상'(극도로 혐오하는 대상)으로 불렀다.
상대를 자극하거나 오해를 일으킬 만한 플레이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던 올해 4월 더블헤더 2경기에서 홈런 3개를 치며 맹활약한 그가 방송인터뷰 도중 울먹였다. "사소한 행동 하나도 조심하겠습니다.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노력을 의심할 때도 있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걸 이제 알 것 같습니다. 팬 여러분이 제 응원가를 불러주셔서 울컥합니다." 그날 이후 이 선수는 자신을 향한 비아냥을 응원의 함성으로 바꿨다. 롯데자이언츠 외야수 황성빈의 이야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특정 직업군을 비하하는 '딸배'라는 멸칭으로 불렸으나 이제 팬들은 그를 마성의 황성빈, 줄여서 '마황'이라고 부른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타인을 향한 혐오와 비하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내게 적대적인 이들의 마음을 돌려 나를 응원하게 하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허구가 아닐까.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황성빈은 대체 어떻게 해낸 걸까. 상대에 대해 도발적이거나 다소 경박해 보이던 행동들을 멈추자 그간 껄렁껄렁한 겉모습에 가려졌던 이 선수의 진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진가는 바로 절실함이다. 넘어지고 구르고 담장을 타고 오르고 전력질주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황성빈에 대한 팬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은 그때부터다.
땅볼을 치고는 1루까지 설렁설렁 산책하듯이 뛰는 선수들 사이에서 황성빈의 전력질주는 단연 돋보인다. 음주운전하고 미성년자를 유린하고 팬들을 무시하는 일부 선수에 비해 언제나 야구에 진심이고 사생활 논란이 없으며 팬서비스에도 최선을 다하는 황성빈은 프로 스포츠선수의 모범이다. 헬멧 안쪽에 적은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문구대로 황성빈의 잠재력은 야구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매 순간 간절히 매달리는 열정에서 터져나온다. 나는 황성빈의 야구를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작은 체구, 낮은 지명순위 등을 들먹이며 한계를 강요하는 세상에 맞서 자기한계를 초월하려는 처절한 몸짓에는 야구를 넘어선 실존의 감동이 있다. 비매너 플레이들도 이제보니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절실함이 과하게 표출된 결과였다.
황성빈의 야구에는 감동이 있다. 그것은 단순히 스포츠만이 아닌 미성숙하고 좌충우돌하던 한 개인이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성장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열린 올스타전 최고의 스타는 단연 황성빈이었다.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SSG랜더스 외국인 선수 기예르모 에레디아의 유니폼을 펼쳐들며 쾌유를 기원하는 동업자 정신을 보여주더니 지난날 자신에 대한 조롱이었던 배달라이더 복장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타석에 등장해서는 땅볼을 치고 악착같이 뛰어 기어이 1루에서 살았다. 그러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싫어하게 한 그 '갈까 말까' 퍼포먼스를 맛깔나게 보여주면서 모든 사람의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비난과 야유를 응원으로 바꾼 힘은 진정성이다. 정직한 땀과 순수한 눈물로 빚어진 황성빈의 야구를 보며 우리는 우리가 언제부턴가 잃어버린 절실함의 힘을 되찾는다. 간절하면 마침내 닿는다는 노력의 승리를 기억해낸다. 황성빈의 야구를 오래 보고 싶다. 그 뜨거운 온몸의 야구를. 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
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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