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지·티파니·루나… 그때 그 아이돌, 뮤지컬·연극서도 빛나네
섬세한 감정 표현한 가창력 호평
“꿈에도 잊혀지지 않는 당신의 마지막 모습, 눈감으면 되살아나는 생생한 그날의 모습,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잠들래야 잠들 수 없는, 깊은 한숨 바람에 흩어지고….”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영웅’. 명성황후 시해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지막 궁녀 ‘설희’가 ‘당신을 기억합니다’를 부른다. 작품을 관통하는 비통함의 정서 속으로 객석이 ‘훅’ 하고 빨려 들어가는 1막의 결정적 순간이자, 뮤지컬의 첫 번째 ‘눈물 버튼’이라 할 만큼 애절한 노래다. 15주년을 맞은 ‘영웅’의 이번 공연에선 가창력으로 인정받는 뮤지컬 배우 유리아, 정재은과 함께 아이돌 그룹 EXID 출신 솔지도 ‘설희’ 역으로 무대에 서고 있다. 솔지는 EXID 시절부터 다른 가수들의 보컬 개인교사 급이었던 가창력은 최고로 인정받던 가수다. 지난해엔 영국왕 헨리 8세의 여섯 아내가 누가 더 불행한지 토크쇼 형식으로 경연을 벌이는 영국산 쇼 뮤지컬 ‘식스(Six)’를 통해 성공적인 뮤지컬 배우 데뷔전을 치렀다. 이번 ‘영웅’도 회를 거듭할수록 더 세밀한 감정선까지 표현해내며 호평받는 중이다. 내달 11일까지, 6만~16만원.
솔지뿐 아니다.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뮤지컬과 연극 무대에서 다시 빛나고 있다. 어디서 뭘 하는지 궁금했던 ‘그 시절 그 언니·오빠들의 귀환’이다.
◇'영웅’엔 솔지, ‘햄릿’엔 루나
인기 아이돌 그룹의 보컬 출신이라면 가창력은 이미 평가가 끝난 셈이다. 배우로서 잘만 다듬는다면 무대 적응 기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핑클 출신 옥주현과 JYJ 출신 김준수는 이미 활동량이나 티켓 파워에서 우리 뮤지컬을 대표하는 최고 배우가 됐다. ‘슈퍼주니어’ 규현과 ‘레드벨벳’ 웬디도 뮤지컬에서 오히려 다시 한번 전성기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이돌 이후를 고민하는 이들에겐 새로운 활로가 되고, 공연 제작사 입장에서도 관중 동원력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는 ‘윈-윈(win-win)’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햄릿’에 오필리어로 출연한 걸그룹 f(x) 출신 루나도 주목할 만하다. 이호재,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등 우리 연극을 대표하는 대배우들이 한꺼번에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던 작품. 대부분 배역이 더블 캐스팅이지만, 루나는 홀로 이 석 달간 계속되는 공연의 모든 회차에서 오필리어를 감당하고 있다. 교감이 있었던 왕자 햄릿에게 아버지 폴로니어스(남명렬·박지일)가 살해당한 뒤 그 슬픔으로 실성해 가며 통곡하는 장면은 배우로서 루나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머리를 산발하고 물가에서 꺾어온 꽃을 한아름 안고 나타나 극중 인물들의 죄악과 욕망을 상징하는 꽃말의 꽃들을 하나씩 건네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9월 1일까지, 6만~9만원.
◇‘시카고’엔 티파니, ‘클로저’엔 안소희
걸그룹 소녀시대 출신 티파니 영은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뮤지컬 ‘시카고’에도 ‘록시 하트’ 역으로 무대에 서고 있다.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는 이번 프로덕션의 초반 화제를 주도한 것은 최재림이 여론조작 전문 변호사 빌리 플린이 돼 복화술로 노래하는 넘버 ‘우린 둘 다 총을 향해 손을 뻗었지(We Both Reached For the Gun)’ 동영상이었다. 유튜브에서 600만회 가까이 재생된 이 동영상에서 ‘록시’ 티파니는 조종당하는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천연덕스러운 매력을 발산한다. 무대 위 퍼포먼스도 이전 공연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호평이 많다. 9월 19일까지, 8만~16만원.
배우로 꾸준히 도전을 이어 왔던 원더걸스의 안소희는 14일 종연한 대학로 연극 ‘클로저’에 ‘앨리스’ 역할로 출연했다. 원래 연극 원작으로, 줄리아 로버츠, 내털리 포트먼, 클라이브 오언, 주드 로가 출연했던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동명 영화에서 내털리 포트먼이 맡았던 역할. 대학로 연기파 배우들과 함께 선 무대에서도 사랑, 질투, 거짓과 진실이 어이없이 엇갈리는 이야기 속 미워할 수 없는 여인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는 평이다.
아이돌 출신 배우들의 무대 도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동방신기’의 창민은 최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을 마친 창작 초연 뮤지컬 ‘벤자민 버튼’으로 첫 뮤지컬 무대에 도전해 호평받았다. 영화와 방송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던 소녀시대 최수영은 올 초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연극 ‘와이프’에 출연했다. 걸그룹 아이오아이 출신으로 ‘경이로운 소문’, ‘사내연애’ 등 드라마로 주가를 올렸던 김세정 역시 올초 베테랑 배우들도 쉽지 않은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신체극 ‘템플’로 무대에 서며 자폐 동물학자 주인공 템플 그렌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김세정은 뮤지컬 ‘레드북’ 등에서도 주역을 맡으며 무대 위 커리어도 탄탄히 쌓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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