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 호황? 딴 나라 얘기… 중소 조선사들의 분투
지난 12일 부산 영도구에 있는 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 조선소. 금요일인 이날은 무더위를 고려해 전사 차원에서 휴무 권고일이었는데, 약 1800명 직원이 출근해 작업이 한창이었다. 협력사 직원을 포함해 3000여 명이 일하는 조선소 전체 인원의 절반 넘는 숫자였다. 안벽(岸壁·선박을 접안하도록 만든 구조물)에선 이달 중순 노르웨이 선주(船主)에 인도 예정인 5500TEU급 중형 친환경 컨테이너선 ‘콜로라도’호의 마무리 작업이 분주히 이뤄지고 있었다.
HJ중공업은 한때 필리핀까지 진출한 수비크 조선소를 포함해 세계 6위권까지 올랐지만, 2010년대 조선업 불황 직격탄을 맞았다. 이후 부산 영도조선소와 거제 블록 공장으로 규모가 줄었다. 2021년 약 5년간의 채권단 관리를 마치고 새로 출발한 이 회사는 ‘친환경 선박’ 수주 원칙을 세웠다. 중국의 저가 공세가 극심한 일반 컨테이너선 대신 ‘메탄올 추진선’ 등 탄소 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차세대 선박 시장에서 경쟁을 택한 것이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 배출 규제 강화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한 선택이었다. 2021년 말~2022년 초 친환경선박 6척을 수주하며 상선 사업을 재개했는데, 6번째인 콜로라도호까지 모두 납기를 준수해 건조했다. 이후 6척을 추가 수주했다.
조선업 ‘수퍼 사이클’을 맞아 몇 년치 일감이 쌓이는 등 국내 대형 조선 3사의 수주 낭보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조선 3사와 사실상 다른 시장에서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소·중견 조선사의 분투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조선업은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3사가 초대형 컨테이너선‧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을 내세워 선두에 서고, HJ중공업, 대선조선, 케이조선(옛 STX조선해양) 등이 중소형 컨테이너선‧벌크선‧유조선(탱커) 같은 다양한 선종으로 뒤를 받치며 글로벌 조선 시장을 호령했다.
그러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2010년대 조선업 장기 불황의 늪을 겪었고, 최근 호황기를 맞았다. 조선 3사는 3~4년치 일감이 쌓여 수익성 위주 선별이 가능할 정도로 유리한 상황이지만, 중견·중소 조선사는 벼랑 끝이다. 중소형 컨테이너선과 유조선 시장에서 중국의 저가경쟁에 집중 타격을 받아 ‘기본 체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주 잔량 기준으로 한때 국내 조선업의 4분의 1까지 차지했던 중소 조선사들은 납기 경쟁력 강화, 친환경 선박 수주, 해상풍력 구조물 사업 전환, 데이터센터 구축 등 다양한 생존 전략을 시도하며 버티고 있다.
◇'조선 1번지’에서 중견·중소 조선사 생존경쟁
HJ중공업 조선소에는 ‘대한민국 조선1번지’라고 쓰인 기념석이 세워져 있다. 1937년 최초의 근대 조선소인 ‘조선중공업’이 전신으로, 이 회사를 중심으로 영도조선소단지에 중견·중소 조선사들이 붐볐다. HJ중공업과 대선조선(1963년 설립) 등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했다. 그러나 최근 영도 일대 조선업 위기가 커지며 신사업 발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영도에 있는 중소 조선사 마스텍중공업은 안벽 2기, 크레인 3대를 갖춰 중·소형 선박 4척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조선소 부지에 해양·물류 관련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해상풍력 구조물 사업도 검토했지만 중소 조선사의 한계가 있어 과감하게 업종 전환에 나선 것이다. 중형 조선사의 한 축이었던 대선조선은 워크아웃(기업개선 작업) 절차를 밟고 있다. 생산 거점인 영도조선소를 매각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향후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사업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한때 10위권 선박 수주량을 기록했던 중견 조선사 HSG성동조선도 현재는 해상풍력 하부구조물로 사업을 전환했다. 부산에서 수리 조선업을 하던 제일SR그룹은 공터로 변한 조선소단지에 대형 카페 등 복합문화단지까지 조성했다.
◇HD현대重 군산조선소는 블록 생산에 사활
국내에서 규모가 작은 조선소 대부분은 국내용 소·중형 선박이나 선박 블록 제작 업체가 모태다. 2000년대 호황기 때 조선소로 규모를 키웠지만, 지금은 다시 규모를 줄이거나 사업 전환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HD현대중공업의 군산조선소에서는 선박 부품에 해당하는 ‘블록’을 생산해 울산으로 보낸다. 지역사회에선 선박 건조를 포함한 완전 재가동을 희망하지만, 생산 효율성과 경제성이 떨어져 현실적으로 선박 건조는 어렵다는 평가다.
정부가 나서 RG(선수금 환급보증제) 한도를 확대하며 지원하지만, 고질적 인력난이 한계로 꼽힌다. RG는 조선사가 선주와 계약 체결 후 선주에게 선박을 인도하지 못하면 선주가 지급한 선수금을 은행에서 책임져주는 제도다. 재무가 불안한 중소 조선사가 적극적인 수주에 나서려면 RG 보증 확대가 필요하다. 지난 6월 5대 시중은행과 함께 3개 지방은행, 기업은행은 중형 조선사에 대해 1조원 RG 공급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RG보증 확대는 반가운 일이지만, 인력이 부족한 상황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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