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깊어지는 ‘한국 피로증’… 이용수 할머니께 ‘통 큰 용서’ 청했다”
서옥자 워싱턴 정신대대책위 이사장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
美 의회서 통과시킨 주역
정의연의 워싱턴 지부 아닌데
윤미향 사태로 ‘종북’ 오해
‘수요집회’는 효력 다해
운동 방향 전환해야 할 때
“이 얼굴을 보세요. 어딜 봐서 제가 운동권이에요? 하하!”
서옥자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 이사장은 한동안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윤미향의 정의기억연대 횡령 의혹 사건이 터졌던 2020년이다. 이후 미국 정계는 물론 교민 사회까지 ‘코리아 퍼티그(Korea Fatigue·한국 피로증)가 급속도로 번졌다고 했다. “좌파, 종북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윤미향의 정대협(정의기억연대 전신)과 한통속으로 오해받고 지탄받았죠. 괴로운 시간들이 흘러갔습니다.”
서울에 온 서옥자 교수를 국립외교원 레인 에번스 동상 앞에서 만났다. 레인 에번스(1951~2014)는 1999년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미 의회 의사록에 처음으로 남긴 민주당 의원으로, 2007년 7월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이 미 의회를 통과하는 데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서 교수는 대구에서 이용수 할머니를 만나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 정의연, 美 위안부 청문회 지원 안 해
-대구에서 올라오는 길인가?
“한국에 오면 이용수 할머니를 꼭 뵙고 간다. 이번에도 5일 동안 할머니와 지내다 왔다.”
-윤미향 의혹을 제기한 뒤 정의연과 손절했던 이용수 할머니가 다시 수요집회에 참석하시는 것 같더라.
“정신적으로 의지하실 곳이 없기 때문이다. 기력도 많이 약해지셨다. 우리 모두에게 기쁨과 에너지를 주시는 분이었는데, 안타깝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나.
“일본을 그만 용서해주시는 게 어떠냐고 말씀드렸다. 통 크게 용서하는 게 이기는 거라고, 일본을 더욱 부끄럽게 하는 길이라고.”
-일본은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고, 할머니들은 진심으로 사과받은 적이 없다고 하는데도?
“용서한다고 해서 역사의 진실이 바뀌지 않는다. 40년이 돼가는 운동의 방식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 더 이상 성역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수요집회의 효력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용수 할머니가 받아들일까?
“고민하시는 것 같다. 힘든 결정이다. (오늘도) 수요집회 참여하시려고 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함께 왔는데, 나는 가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시위엔 갈 수 없었다.”
-윤미향 의혹이 터졌을 때 당신은 ‘정의연은 할머니들의 미 의회 청문회 때도 아무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파장을 일으켰다.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에 충격을 받았다. 정의연은 유명 연예인, 기업들이 수천만원씩 기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할머니들을 그렇게 모셨다는 데 화가 나더라. 미 의회 청문회를 할 때도 우리는 돈이 없어 할머니들을 호텔이 아닌 우리 집에 묵게 하고 내가 삼시세끼를 챙겨드렸다. ‘호텔보다 서 교수 집이 더 편하다’고 해주시던 할머니들께 정말 죄송했다.”
-워싱턴 정대위를 한국 정대협 지부로 아는 사람도 많을텐데.
“그렇지 않다. 워싱턴 정대위는 교민들이 100달러, 200달러 보내주시는 돈으로 꾸려가는 작은 단체다. 한국 정부나 정의연 지원은 받아본 적 없다. 한번은 200달러를 후원해주신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러 찾아갔더니 세탁소를 운영하는 월남전 참전 용사더라. 땀을 뻘뻘 흘리며 다리미질 하시는 걸 보고 단 돈 1달러도 아끼고 아껴서 쓴다. 우리 같은 단체도 매년 정기총회에서 회계 감사 보고와 인준 절차를 밟는데 한국 정대협이 그렇게 허술하게 운영해왔다는 데 놀랐다.”
◇ 레인 에번스와 마이크 혼다
-워싱턴 정대위는 1992년 결성됐더라.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증언으로 미 교민사회도 충격을 받았다. 나는 미국 유학 중이었는데, 워싱턴연합감리교회에서 이 문제로 토론회가 열린다기에 찾아갔다. 그 모임이 워싱턴 정대위의 시작이었다.”
-사무총장을 거쳐 2001년부터 2008년까지 회장으로 활약했다.
“1998년 5월 미 의회 의사당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진전과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있었다. 이런 끔찍한 치욕을 알고도 침묵할 수 없어 정대위에 합류했다.”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레인 에번스 의원도 그 무렵 만난 건가?
“사무총장 시절이다. 레인은 미 의회에서, 나는 대학 캠퍼스를 돌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려나갔다. 하버드대에서 시작해 예일, 코넬, 뉴욕대, 프린스턴, 조지타운대 등 40여 대학에서 할머니들 증언과 세미나, 사진전을 열었다.”
-레인 에번스는 어쩌다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나?
“레인은 빈곤, 환경, 노동, 재향군인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곳에 관심이 많은 정치인이었다. 중국계 보좌관에 의해 알게 된 위안부 문제도 레인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가 1999년 미 의회 회의록에 최초로 남긴 일본군 위안부 기록은 다시 읽어도 뭉클하다. ‘우리는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일어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소리를 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의 힘을 빌려줍시다. 행동에 옮기고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적의 말보다 친구의 침묵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레인 에번스가 2000년부터 미 의회가 개회할 때마다 발의해온 위안부 결의안을 마이크 혼다 의원이 이어받은 거더라.
“레인은 파킨슨 병이 깊어져 정계를 은퇴해야 했다. 일본인 3세인 마이크 혼다 의원이 이를 계승해 민주당·공화당 공동으로 ‘HR121′을 발의한 것이다. 일본인 사회에서 무수한 협박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더라. 이 결의안이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해치지 않을 것이며 일본 정부를 공격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고 강조하며 의회를 설득했다.”
-마이크 혼다 의원은 매우 유머러스했다던데.
“혼다 의원이 날 처음 만났을 때 한 말이 ‘플리즈 유즈 미(Please use me)’, ‘나를 맘껏 이용하라’였다(웃음).”
◇ ‘아이 캔 스피크’, 그 역사의 현장
-2007년 2월 15일 미 의회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청문회’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로도 만들어졌다.
“의사당 레이번 빌딩 1층에 자리한 국제외교위원회 청문회장에 들어섰을 때의 긴장감이 지금도 생생하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청문회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건물 밖까지 줄지어 섰고, 각국 취재진이 몰려 사방에선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마침내 이용수, 얀 오헤른, 김군자 할머니의 증언이 이어지자 객석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다. 증언 시간은 5분씩 주어졌지만 애니 팔레오마베가 위원장은 할머니들이 더 길게 증언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당신도 청문회에 섰더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가 왜 지금까지 해결이 되지 않는지 피력했다. 그리고 레인이 한 말로 마무리했다. ‘사람들은 적의 말보다 친구의 침묵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해 7월 30일 만장일치로 결의안이 통과됐을 때 감동이 컸겠다.
“법안 통과를 선언하는 팡파르가 울려퍼지자 다들 껴안고 울었다. 아침에 하고 나온 눈 화장이 다 지워져 엉망이 될 만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라고 공식 요구한 것 아닌가. 리셉션에 낸시 펠로시 의장과 팔레오마베가 위원장이 참석해 축하해줬다. 투병 중인 레인이 함께하지 못해 가슴이 아팠다.”
-한국에선 이 모든 일을 정대협이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 않다. 워싱턴 정대위를 주축으로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교민사회가 풀뿌리 운동으로 모금하고, 두 발이 부르트도록 미국인들의 서명을 받아가며 이뤄낸 열매다. 결의안을 통과시킨 뒤 서울에 와 수요집회에 참석했는데, 윤미향 대표가 다른 지역 활동가들을 모두 소개한 뒤 나는 맨 꼴찌로 언급하더라. 우리 쪽으로 공을 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2014년 세상을 떠난 레인 에번스를 추모하기 위해 국립외교원에 작은 흉상을 세울 때에도 정대협은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 수잰 숄티와 함께 탈북자 인권운동
-윤미향 사건 이후 워싱턴 정대위 활동도 위축됐을 것 같다.
“미국 정계는 물론 교회, 교민사회까지 관심이 시들었다. 회의도 거의 열리지 않는다. ‘한국 피로증이 심각하다.”
-수잰 숄티와 함께 탈북자 인권운동을 한다던데.
“숄티의 ‘북한자유연대’에서 탈북자들의 인권 보호와 해외 정착을 돕고 있다. 요즘은 ‘통일맘’이라고 해서 중국에 자녀를 두고 온 탈북 여성들을 돕고 있다. 수잰은 정말 대단한 여성이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정치 외교 자문도 맡고 있더라.
“이번에도 회의가 있어 들어왔다. 북·러의 밀착으로 한반도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것에 우려가 많더라. 대한민국의 핵무장 필요성을 미 의회에 알리고 설득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으로 오기 전 한국에서는 캐세이퍼시픽 승무원, 하야트 호텔 마케터 등 화려한 인생을 살았더라. 별명이 ‘앰배서더 서’였다던데.
“한국과 미국에서의 삶은 완전 흑과 백이었다. 방학에 서울에 왔더니 호텔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가 깜짝 놀라더라. 명품만 입던 사람이 남대문 옷 입고 버스 타고 다닌다면서(웃음). 세상의 쾌락은 잠시. 매일 낮아지고 작아지는 훈련을 하며 사는 게 행복했다.”
-레인 에번스 의원과의 러브 스토리는 워싱턴 정가에 유명하다던데.
“의원 은퇴 연금도 거부했을 만큼 소탈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정치인이다. 청혼을 받았지만 좋은 친구로만 지내자고 했던 게 후회된다.”
-계속 미국에서 사실 건가?
“나이 드니 한국의 흙 냄새가 그리워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 크리스천으로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힘이 돼드리고 싶다.”
-그런데 몇 년생인가?
“오, 노노! 그냥 ‘베이비붐 세대’라고만 써달라, 하하하!”
☞서옥자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캐세이퍼시픽 항공사 승무원, 하얏트 호텔 마케터로 일하다 1987년 미국으로 유학, 보위주립대에서 상담심리학으로 석사, 유니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워싱턴 바이블 칼리지 교수, 컬럼비아 칼리지 부총장을 지냈다.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 회장으로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 통과에 기여했다. 현재 한미국가조찬기도회 이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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