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초대석]“트럼프 재선땐 ‘스케줄F’로 반대파 없앨듯… 韓, 북미협상 대비해야”

이정은 부국장 2024. 7. 14.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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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귀환’ 책 펴낸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美 극한 양극화가 빚은 ‘증오의 정치’… ‘보복 벼르는 전사’로 지지층 결집
통상은 ‘네가 쥐어짜면 나도 쥐어짠다’… 韓 이분법적 세계관 버려야 변화 대응
트럼프에 대한 선입견 걷어낼 필요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이 13일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 전 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책이나 자료는 대부분 영어로 돼 있고, 미국 주류 언론과 학계의 관점에서 쓰인 것들”이라며 “한국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유세 중 암살미수범의 총에 맞아 부상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대선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충격적 암살 시도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리스크와 맞물리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을 높이는 추세다. 한국에도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칠 미국 대선과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해 우리의 관점에서 제대로 들여다보고 분석할 필요성이 커지는 시점이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지난해부터 트럼프 분석에 빠져 있다. 2016년 그의 대선 출마부터 4년간의 백악관 업무, 최근 유세 연설문에 참모들의 회고록까지 8년간의 자료를 모으고 분석해 ‘트럼프의 귀환’이라는 책을 냈다. 40년 가까이 외교안보 현장을 경험해 온 전직 외교관의 시각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그는 13일과 14일 동아일보와 대면 및 추가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이나 트럼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아직도 코끼리 더듬는 수준”이라며 선입견 없이 심층적으로 이를 들여다볼 필요성을 강조했다.》





―트럼프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왜 트럼프였나.

“처음부터 트럼프에 대한 책을 쓸 생각은 아니었다. 현직에 있을 때 정권에 따른 한국 외교의 변동성이 너무 크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은퇴 이후 글쓰기에 자유롭게 전념할 시간이 생기니까 이걸 풀어보고 싶어졌다. 미국, 중국, 일본의 대외전략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관련 자료들을 보기 시작했고, 다음이 트럼프였다. 그를 다룬 책 이외에도 CNN과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같은 외신에 심층 분석 특집기사가 정말 많다. 지난해 말쯤 되니까 이제 ‘구슬을 실에 꿰기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료가 쌓였다.”

―어떤 자료들이 트럼프를 이해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됐나.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부편집인이 쓴 3부작 시리즈가 압권이다. 공포(Fear), 분노(Rage), 위험(Peril)을 쭉 읽으면 트럼프의 백악관 4년의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우드워드가 직접 트럼프와 17번의 인터뷰를 하면서 썼다는 점에서 특히 신뢰도가 높다. 존 볼턴(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나 마이클 울프(‘화염과 분노’ 저자), 피터 베이커(뉴욕타임스 기자) 같은 이들의 책도 보았는데 편향이 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속에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트럼프의 과거 발언들은 백악관 아카이브에서 찾았다.”

―보고서 형식에 익숙한 외무공무원이 책을 쓰는 데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

“2019년 북한대학원대학에서 늦깎이 공부를 했다. 쓴 박사 논문을 단행본으로 낸 적은 있었지만, 단행본으로 내는 글을 쓴 것은 처음이었다. 신문 칼럼을 정기적으로 쓴 적이 있었는데 좋은 훈련이 됐다. 챗GPT 4.0 유료 버전도 활용했다. 방대한 자료들을 짧은 시간에 기가 막히게 찾아내 정리해 내더라(웃음).”

조 전 원장이 300페이지 가까운 책을 쓰는 데 걸린 시간은 4개월. 영어로 된 자료들을 속독했던 외교 현장에서의 경험이 시간을 단축시켰다. 그는 “질문을 잘 뽑아야 좋은 글이 나오더라”라고 했다. 트럼프의 경우 ‘전략적인 건지, 즉흥적인 건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트럼프라는 인물을 대통령 자리까지 밀어올린 미국의 국내정치와 사회, 경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문제의식도 또 다른 목차를 구성하는 바탕이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이번 총격 사건으로 지지자들이 결집하면서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11월 대선 표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트럼프 암살 시도는 극심한 양극화 속에 ‘증오의 정치’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선거판을 보면 2000년 이후 공화당이 늘 승리해온 곳이 20개 주, 민주당이 매번 승리한 지역이 16개 주다. 미국의 호남, 영남 같은 구도여서 선거 결과는 거의 안 바뀐다고 보면 된다. 한 번이라도 결과가 바뀌었던 경합주는 15곳인데, 민심 바로미터인 하원의원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따져보면 이번 대선에서는 트럼프가 대의원을 단 6명 더 확보해 조 바이든 대통령을 이기는 것으로 나온다. 초박빙이어서 단 한 군데라도 예상을 벗어나면 결과가 바뀌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앞줄 가운데)이 13일(현지 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연설 중 총격으로 오른쪽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들어 보이며 “싸우자(Fight)”라고 외치고 있다. 버틀러=AP 뉴시스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1기 때와는 얼마나 큰 변화가 있을까.

“트럼프는 집권 이후 지금까지 반대파를 없애고 공화당을 평정했다. 2기 때는 ‘스케줄 F’를 실행할 것이다. 국정 기조에 반발하는 공무원을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도록 만든 행정명령이다. 대통령의 의지가 연방정부의 끝까지 침투하게 된다는 의미다. 결국 예스맨들에게 둘러싸이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권한을 극대화할 것이다.”

조 전 원장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는 정당 지도자라기보다 사회운동 지도자에 가깝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600만 명의 팔로어를 즉각적으로 움직이는 힘으로 이념적이고 명분에 충실한 열성분자를 결집시킨다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을 대신해 싸우는 여러분의 전사다. 여러분을 배신하고 해를 끼친 자들을 응징하겠다”며 ‘보복’을 벼르고 있다.

트럼프가 ‘어젠다 47(Agenda 47)’과 ‘프로젝트 2025(Project 2025)’를 통해 공개한 정책 구상의 3가지 핵심은 이민자 통제, 제조업 재건, 그리고 미국의 해외 개입 축소다. 중국, 러시아는 물론 한국과 관련된 외교 및 경제통상 정책 등은 이 틀 위에서 짜이게 될 것이라고 조 전 원장은 설명했다.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을 비롯한 한미 동맹 이슈에는 어떤 변화가 올 것으로 보나.

“방위비 분담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규정의 예외 적용을 위해 만든 ‘특별협정(SMA)’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SOFA에는 우리가 미군부대의 토지와 시설만 제공하도록 돼 있는데 한국이 이보다 많이 부담하라는 요구를 받으니 특별협정을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서 뭔가 더 해주려면 이제는 예외 규정까지 손대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트럼프는 1기 때 요구한 50억 달러를 기억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이 커질 경우 정부가 증액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트럼프가 김정은과 재협상에 나서고 한미 연합훈련, 주한미군 등을 협상카드로 쓰게 되면 우리는 주도권을 뺏긴 채 분담금만 뜯기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그의 캠프에서 활동하는 참모들은 주한미군은 유지될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는데.

“주한미군 철수는 트럼프가 공개적으로는 물론 내부 회의에서도 여러 차례 꺼냈다. 그때는 게리 콘(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제임스 매티스(전 국방부 장관) 같은 인사들이 때로 훼방까지 놓아 가면서 막아냈다. 하지만 그런 참모들은 이제 다 떠났다. 트럼프는 ‘그때 하려고 했는데 못 했던 것들’을 할 것이다. 한미동맹이 70주년을 맞았다고 이를 당연시하면 안 된다.”

―2기 정부에서 미중 관계는 더 악화될까. 트럼프는 최근 유세에서 ‘시진핑이 잘생겼다’ 같은 말을 하기도 했는데.

“미국이 패권국의 입장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트럼프나 바이든 정부가 똑같다. 다만 바이든이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를 앞세웠다면 트럼프는 지정학적 경쟁의 관점에서 중국을 보고 있다. 경제과학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중국을 더 강하게 견제하려 할 것이다. 트럼프에게 호혜적인 무역협정이란 간단하다. ‘네가 쥐어짜면 나도 너를 쥐어짠다’는 것이다.”

―북-러가 밀착하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재등장이 이 구도를 바꿀 변수가 될 수 있을까.

“트럼프는 우크라 전쟁 협상을 하루 만에 이뤄낼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의 북한 포탄 수요는 줄어들 것이고, 더 이상 북-러가 지금처럼 밀착할 이유는 줄어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재협상에 나서게 되면 북-미 구도가 바뀔 수 있다. 이때 북한의 ‘통미봉남’ 시도가 다시 극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대북 적대감을 유지한 채 미국 일변도의 외교만 해서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트럼프의 2번째 백악관행이 현실화될 경우 한 번의 ‘일탈’이 아닌 지속적 ‘현상’으로서의 변화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란 게 조 전 원장의 진단이다. 그는 1시간 반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새로운 모습의 미국을 상대하려면 한국이 기존의 이분법적 세계관과 흑백논리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귀환’이 위기가 될지 위협이 될지는 우리한테 달렸다는 말이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프로필

△경북 영천 출생(1956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1979년)
△제15회 외무고시 합격(1981년)
△한미 방위비분담협상 대표(2008년)
△주미얀마 대사(2010∼2011년)
△외교통상부 대변인(2011∼2012년)
△주말레이시아 대사(2013∼2016년)
△국립외교원장(2017∼2018년)
△경남대 초빙석좌교수(2019년∼)

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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