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홍명보 감독과 스스로를 궁지로 몰고 있는 축구협회
홍 감독으로서는 자신이 이끌고 있던 울산 현대 팬들의 반발까지 무릅쓰고 내린 결정이었던 만큼, 이제 와서 자진 사퇴한다면 신뢰와 명예를 비롯해 너무나 많은 것을 잃은 채 국가대표 감독으로서의 성과나 명예회복도 없이 빈손으로 끝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홍 감독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렇다 해도 홍 감독 앞길에는 가시밭길이 예고돼 있다. 대표팀 감독은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가도 성적이 부진하면 곧바로 큰 비판에 마주하기 쉬운데, 지금처럼 시작도 하기 전에 큰 비난을 받는다면 앞으로 벌어질 작은 실수나 흠만으로도 더 혹독한 비난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홍 감독 선임을 둘러싼 상황은 홍 감독이 처음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을 때인 2014 브라질 월드컵 직전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 협회는 당시에도 ‘독이 든 성배’로 불렸던 대표팀 감독 선임에 어려움을 겪었다. 협회는 갈등을 빚던 조광래 대표팀 감독을 성적 부진을 이유로 급하게 물러나게 한 뒤 당시 K리그에서 주가를 올리던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을 간곡한 설득 끝에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그러나 전북 현대에 대한 책임감 등으로 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하던 최 감독은 월드컵 예선까지만 지휘봉을 잡기로 했고 실제로 본선을 앞두고 물러났다. 월드컵을 코앞에 둔 협회는 더 다급한 상황에서 한국 축구의 영웅이었던 홍 감독에게 대표팀을 맡겼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주역이자 감독으로서도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따냈던 홍 감독은 당시 한국 축구가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카드였으나 지도자 경력이 아직은 짧은 시기였다. 대표팀을 둘러싼 혼란이 거듭되는 데다 월드컵 준비 기간이 부족한 악조건 속에서 홍 감독은 대표팀을 이끌어야 했다.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건 협회의 원칙 없는 행정이었다. 조 감독 경질과 최 감독 선임 모두 투명한 절차 공개 없이 긴급하게 진행됐고 현직 K리그 감독을 팬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대표팀 감독에 앉혔다. 그리고 홍 감독을 더 급하게 선임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협회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후임자를 찾지 못해 임시 감독을 두 명이나 쓰는 등 혼선만 거듭했다. 결국 K리그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울산 현대의 홍 감독을 찾아가 읍소했고 팬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선임했다. 이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과거 모습과 어찌 이리도 똑같은가. 이 모습들이 보여주는 건 협회의 국가대표 감독 선임 과정은 여전히 주먹구구식이고, 지도자 양성 계획이나 비전도 없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길러온 지도자 풀이 있다면 이런 혼선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홍 감독 개인으로서는 과거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하는 절차와 시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좀 더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팬들의 지지를 받으며 복귀하는 과정과 시기를 기다렸으면 좋았을 듯하다. 하지만 그는 선택했고 상황은 되돌리기 어렵게 됐다.
협회는 반복되는 무원칙한 행정으로 많은 감독들을 희생시켜 왔다. 그나마 통할 수 있는 카드조차 적시가 아닌 최악의 시점에 뽑아 들고는 했다. 감독으로서의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조차도 협회의 궁여지책으로 최악의 조건과 시기에 부임함으로써 성과를 내기 힘든 상황이 반복됐다. 이런 행태로 협회는 스스로와 그 협회가 선임한 감독들까지 모두를 궁지에 몰아넣어 왔다. 협회가 소중한 자원들을 갉아먹으며 그들을 매번 돌려막기식 방패막이로 희생시키면서 지키려는 것은 무엇인가. 심리적 배수진을 친 홍 감독은 천신만고 끝에 성과를 낼 수는 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협회의 이런 오래된 악습 혹은 비효율적인 시스템은 고쳐야 한다. 세월이 흘러도 협회는 발전이 아닌 퇴보를 하고 있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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