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폭우가 온다

방준원 2024. 7. 14.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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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다 20회] 폭우가 온다

2024년 7월 10일 KBS 뉴스
"군산 어청도에는 한 시간에 140mm가 넘게 내리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시간당 강수량 공식 통계 1위 기록을 넘어선 수치입니다."

200년 만에 한 번 내릴 기록적인 폭우.

밤만 되면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져 내렸습니다.

"오... 오마이갓. 괜찮아?"

하천이 넘쳐 마을을 삼키고

폭우를 감당하지 못한 산 비탈은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도로도 순식간에 물바다가 됐습니다.

한 번 쏟아지기 시작하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퍼붓는 집중호우.

해가 갈수록, 예측조차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복구 공사 중인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산사태 1년, 벌방리를 다시 가다

장마를 앞둔 지난달 말, 경북 예천군의 벌방리.

지난해 여름 산사태로 15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습니다.

산사태가 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마을에 있는 집들은 여전히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습니다.

벽이 다 사라져버린 집.

주인 잃은 물건들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평생을 벌방리에서 살아온 홍진화 할머니.

취재기자/
원래 집은 어디셨어요?

홍진화/ 벌방리 주민
저 위에 있는데 비가 와서 떠내려갔어요.

지난해 수해로 집을 잃고 1년 가까이 임시 주택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흙더미가 할머니 집을 덮친 건 지난해 7월 15일.

홍진화/ 벌방리 주민
문도 못 열고 들어 앉아서 주방 갔다가 안방 갔다가, 자꾸 다니다가, 날이 새니까
창고도 떠내려가고 아래채도 떠내려가고 119가 와서 나를 업어서 구해줬어.

취재기자/
문을 열어줘서요? 아침에요?

홍진화/ 벌방리 주민
아침에

그날, 마을 주민 윤혜식 할머니도 집에서 안절부절 하고만 있었습니다.

비는 퍼붓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할머니.

윤혜식 / 벌방리 주민
전선 줄이 터져가지고 전화가 안 됐어요

취재기자/
핸드폰은요?

윤혜식/ 벌방리 주민
있는데도 전화가 안 돼서 밤새도록 왔다 갔다 하다가 날이 샜어요
문을 열어보니 뭐 말도 못 하죠

취재기자/
계속 밤에 댁에 계셨어요?

윤혜식 / 벌방리 주민
네 새벽에 막 뒤에서 막 소리를 지르고

지난해 산사태 당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모습(녹색연합 제공).

지난해 7월 14일 낮 12시쯤. 예천군에는 호우주의보가 불과 한 시간 후인 오후 1시쯤에는 산사태 주의보와 경보가 내려졌습니다.

집중호우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다음 날 새벽 4시쯤 결국, 산사태가 나면서 벌방리를 덮쳤습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갑자기 덮친 산사태는 마을 주민 15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갔습니다.

2명의 주민은 아직도 실종 상태입니다.

하루 전, 산사태 주의보가 내려졌는데도, 벌방리 주민들은 왜 대피하지 못했을까.

1년 전, 이곳 주민들 전화기로 산사태 주의보 문자가 발송됐습니다.

발령 지역은 예천군 전역이었습니다.

예천군에는 벌방리를 포함해 281개나 되는 마을(리)이 있습니다.

산사태 발생 우려 지역이 너무 광범위해 주민들의 실질적인 대피를 유도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
구체적으로 위험을 특정해서 그 마을 주민들에게 핀셋처럼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천만 하더라도 예천군 전체 면적이 서울시보다 넓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오니까 주의하라는 문자는 받아들이는 주민의 입장에서는 ‘아, 내가 위험하니까 잠시나마 집을 놓고 대피소로 가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과 판단이 들지는 않습니다.

이 마을은 당시 ‘산사태 취약 지역’으로도 지정되어 있지 않아 사실상 산사태에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되면 사방댐, 옹벽 등 관련 구조물을 설치해 산사태에 대비하고 주민들의 신속한 대피를 위해 비상 연락망과 대피 체계 구축, 교육 등을 체계적으로 실시해야 합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
산사태 대피 체계는 이제는 명령으로 돼야 합니다. 이장님이나 마을 지킴이를 선정해서 그분들이 가가 호호 주민들의 집에 들어가서 대피를 권유 이상의 퇴거를 할 수 있는 체계로 하지 않으면 인명피해를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경북 예천군 보문면 오암2리 전경.

■ 누가 지정했는지 모르는 산사태 대피소?

예천군의 또 다른 마을.

이곳 역시 지난해 벌방리가 그랬던 것처럼 현재 산사태 취약 지역으로 지정돼 있지 않습니다.

취재팀과 함께 간 정규원 박사. 정 박사는 이 마을이 산사태 발생 위험이 큰 지형이라고 말합니다.

정규원 / 산림기술사
예천에서 사고가 많이 났던 지역하고 영주에서 사고가 났던 지역하고 이것들의 표준 모델을 뽑아보면 다 이런 경우예요

취재기자 /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요?

정규원 / 산림기술사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배산임수로 돼 있고 지류가 발달돼 있고 위쪽에는 인도나 도로가 있고요

취재기자/
인위적인 흔적이 있다는 거죠?

정규원 / 산림기술사
인위적인 개발 행위들이 있었고 마을을 통과하는 길은 복개를 해서 계곡이 좁아져 있고

취재기자 /
벌방리도 그런 거였죠?

정규원 / 산림기술사
똑같습니다.

산비탈에서 밭일을 하고 있는 마을 주민

여름이 올 때마다, 산사태가 나는 건 아닐까 두렵습니다.

안화분 / 오암2리 주민
비가 오면 저기 위에 도랑에서 막 물이 내려와요. 돌멩이도 막 길로 굴러가고 비가 많이 오면 넘쳐서 길로 막 내려와요.
정규원 산림기술사가 경북 예천군 보문면 오암2리 산사태 대피소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노인회관.

마을 주민들의 산사태 대피소로 표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대피소로 적합하지 않다는 게 정 박사의 얘기입니다.

정규원 박사 / 산림기술사
지금 여기 서 있는 이 지역의 대피소는 지금 마을 계곡의 복개천 바로 앞이거든요. 그리고 또, 낮은 곳이고 해서 주 계곡에 직각 방향으로 이렇게 서 있어서 위험하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나면, 대피소인 노인회관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어떻게 이런 곳이 주민들 대피소로 지정된 걸까?

취재기자 /
제가 가보니까 산사태 대피소가 지정은 돼 있더라고요

예천군청 관계자(음성변조) /
스티커 말씀이시죠?

취재기자 /
네 노란색 스티커요

예천군청 관계자(음성변조) /
그거는 떼어야 합니다.

취재기자 /
왜요?

예천군청 관계자(음성변조) /
대피소라는 게. 일반 마을 대피소는 지정될 수 있는데요. 산사태 대피소는 취약지역으로 지정돼 있어야 할 수 있어서요. 근데 거기는 지정 안 돼 있거든요. 그래 가지고 떼야 합니다.

분명히 산사태 발생에 대비한 지정 대피소로 돼 있지만, 예천군 관계자는 산사태 대피소가 아니라고
말한 겁니다.
취재기자 /
붙인 건 산림청에서 붙인 거예요?

예천군청 관계자(음성변조) /
그거를 저도 잘 모르겠는데, 예전부터 계속 붙어 있었던 거 같아요. 올해 확인하고 떼야 합니다.

예천군은 이 마을을 현재 산사태 취약 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고 취재팀에게 밝혀왔습니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 전경.


■ 마을 바로 뒷산 벌목…누가 했을까?

백두대간에 자리 잡은 충북 영동의 한 마을.

움푹 팬 가파른 산비탈 바로 아래 10가구가 모여 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아찔해 보이는 벌거벗은 산비탈.

비가 많이 오면 혹시 산사태라도 나는 건 아닐까, 주민들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취재기자 /
비 많이 온다는데 걱정이 안 되세요?

김순이 / 흥덕리 주민
걱정되죠. 여기는 직방으로 죽어요. 그냥 우리는 그냥.

이곳에 있던 나무들은 어디로 간 걸까.

취재 결과, 나무 소유권을 가진 전 영동군의원 A 씨가 군청의 허가를 받아 나무를 베어 간 거로 확인됐습니다.

주민들이 산사태가 날 수 있다고 불안해하며 민원도 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이뤄지는 벌채는 산사태에 영향을 미칠까.

산사태 현장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이수곤 전 교수는 영향이 크다고 설명합니다.

이수곤 /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비가 많이 올 때 벌목지 가보면은 벌목지에 산사태가 집중되고 바로 좌·우측에 벌목 안 한 데는 산사태가 거의 안 나거든요. 그거는 뭐냐, 벌목지가 산사태를 촉진 시켰다는 얘기입니다. 나무들의 뿌리가 이렇게 억제하고요. 그리고 비가 올 때 (나무가) 물을 머금고 있기 때문에 산사태가 산사태를 억제한다고요.

벌채가 산사태 위험성을 증가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산의 흙을 교란 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수곤 /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벌채하면) 흙을 많이 교란 시켜 버리기 때문에 비가 100이 오게 되면 거의 100%가 다 땅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비가 얼마 안 왔는데도 강우량이 많아지는 겁니다. 침수가 많이 늘어 산사태가 촉진되는 거예요.

벌목 허가를 내주기 전에 산사태 가능성에 대한 조사는 이뤄진 걸까?
영동군청 관계자(음성변조)/
저희가 벌채 허가가 나갈 때 산림기술사분들이 (산사태 위험) 그런 것까지 다 고려를 해서, 담당자도 현장을 보고 판단을 하는 거라서요. 여기 벌채할 때 (산림)기술사가 현장을 다 보고 한 거였어요.

벌목 허가를 받아 나무를 벤 전 영동군 군의원에게도 전화해봤습니다.
A 씨/ 전 영동군의회 의원(음성변조)
그래서 혹시 토사가 내려올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밑에 하단부는 나무를 좀, 좀, 뭐라 그래야 되나
조금 남기고 나름대로는 대비는 하기는 했는데. 근데 산사태 염려는 뭐 그럴 거 같지는 않고요.

하지만 가파른 산비탈 밑에서 하루하루 생활해야 하는 주민들의 입장은 다릅니다.
김순이 / 흥덕리 주민
저거 어떻게 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 아들하고, 우리는 큰 걱정이에요. 직방이잖아요. 막 바위가 막 이런 게 박혀 있는데, 이제 나무를 베어서 그게 빠지잖아요.

이 지역은 아직 산사태 취약 지역으로 지정돼 있지 않습니다.
벌채 허가가 난 지역과 산사태 취약 지역이 인접해 붙어 있는 모습.


■ 산사태 취약 지역만 아니면 된다..?

그렇다면, 산사태 취약 지역으로 이미 지정된 곳은 사정이 좀 다를까.

10년 전 산사태 취약 지구로 지정된 영동군의 한 마을.

지난해 여름 집중호우가 내려 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흙탕물이 계곡을 집어삼켰습니다.

취재기자 /
보통 비가 많이 오면 여기 다 차요?

김말출 / 흥덕리 주민
도랑에 물이 출렁출렁해요

취재기자 /
이게 다 차요? 넘칠 때도 있겠네요

김말출 / 흥덕리 주민

취재기자 /
지금은 얕은데 이게 다 찼다는 게

김말출 / 흥덕리 주민
돌이 떠내려오고 이러니까 물이 잘 안 나가는 거예요.

이번 집중호우에도 계곡은 또 넘쳤습니다.

영동군은 10년 전인 2014년 이 지역을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했습니다.

군데군데 자리 잡은 집들 너머로 보이는 산.

2021년, 이 산에 벌채 허가가 났습니다.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된 곳과 바로 붙어 있습니다.

산림자원법 시행령은 산사태 위험 지역의 벌채를 금지하고 있는데

하지만 행정 구역상 산사태 취약 지역으로 지정된 곳과 바로 붙어 있어도 취약 지역이 아니면 벌채 허가가 나는 겁니다.

주민들의 반대로 벌채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하기만 합니다.

취재기자 /
산사태 걱정은 안 되세요?

박옥순 / 흥덕리 주민
되죠. 여기 산에 벌목, 나무를 벤다는 말이 있어 가지고 그거를 이쪽 지역 사람들이 민원을 냈는데 그게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취재기자 /
벌목을 한다고 해서 산사태가 더 위험해지니까 하지 말아 달라고 민원을 하셨다는 거죠.

박옥순 / 취재기자
근데 그게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이 마을은 태풍 매미 때도 큰 피해를 겪었습니다.
박옥순 / 흥덕리 주민
(태풍 매미 때) 집 다 떠내려 갔어요. 여기 아래채도 있었는데요.

취재기자 /
물이 어디서 그렇게 흘러내린 거에요?

박옥순 / 흥덕리 주민
그냥 산에서 막 이렇게 막 내려오면 이 감당이 안 돼가지고 담이 있었거든요. 다 나갔어요.

서울 도림천.

■ 하천 범람 위험, 관리는 잘 되고 있을까?

서울 곳곳에서 시간당 100mm가 넘는 비가 쏟아졌던, 관측 사상 서울에 역대 최대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던 2년 전.

반지하 주택에 살던 일가족 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들어찬 물에 현관문을 열지 못해 탈출하지 못한 겁니다.

사고가 났던 지역을 2년 만에 다시 찾아가 봤습니다.

물이 넘치지 않도록 창과 출입문에, 물막이판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설치가 안 된 집들도 보입니다.

당시 이 지역이 물에 잠겼던 건, 인근 도림천이 범람했고, 하수도 역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름철 장마 때마다 도림천은 집중호우에 물이 빠르게 불어나 범람 위험이 높은 곳입니다.

2년 전 하천이 넘쳐 인근 반지하 주민들의 목숨까지 앗아갔던 도림천.

범람에 대한 준비는 어느 정도 돼 있을까?

최근 감사원은 도림천의 교량이 태풍이나 집중호우 때, 교량 자체가 침수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천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범람한 물이, 도림천 교량을 따라 주변 지역을 침수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환경부가 관리하는 홍수위험지도에서도 침수 위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극한의 강우 조건 등에서 도림천이 범람할 경우 어디까지 침수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도림천 교량을 찾아가 봤습니다.

제방 접합부보다 낮게 설치돼 있는 교량의 모습.

취재기자/
제방이랑 교량 접합부가, 제방보다 낮다고 감사원에서 지적했습니다.

정창삼 교수/
네 맞아요. (물이 넘치면) 들어옵니다. 맞습니다. 제가 보니까 이 구조가 딱 그런 거죠. 왜냐면 딱 넘치면 이쪽이 저지대잖아요. 여기로 직접 가는 거죠. 교량 자체가 슬로프가 있잖아요. 여기가 높고 여기가 낮거든요.

교량 접합부에서 제방의 높이까지는 45cm 정도 차이가 납니다.

결국, 제방을 넘지 못한 물은 교량을 따라 주변 지역으로 흘러내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도림천의 또 다른 교량.

이 교량 역시 제방보다 높이가 낮습니다.

정창삼 교수/
하천에 있는 모든 구조물은 제방 위에 있어야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철도라든가 교량이라든가 이런 구조물을 만들 때 많은 하천 구간에서 조금이라도 낮은 지역이 있다 그러면 그쪽으로 범람이나 월류가 일어나게 돼 있거든요.

교량을 관리하는 서울 구로구청은 별다른 문제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 지역, 환경부 홍수위험지도를 통해 보면 교량 등을 통해 주변 지역이 침수될 경우
적게는 0.5m에서 많게는 5m까지 침수되는 지역이 생길 수 있다고 나옵니다.

서울시는 현재까지 교량을 높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대신 대도심 빗물 터널 등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폭우에 발생하는 각종 침수 위험, 대처법은?

광주시 북구에 위치한 자연재난 체험관.

문 앞에 물이 잠기면 현관문을 열기가 얼마나 힘든지 체험해봤습니다.

취재기자 /
반지하 집에 문 앞에 물이 찬 경우를 가정한 상황인데요. 이쪽에는 공기가 있고 이쪽에 물만 있으면 열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한번 직접 열어보겠습니다.

엉덩이 높이까지 물이 찬 상황.
취재기자 /
엉덩이 부분인데요. 전혀 꿈쩍을 안 하고 있습니다 이거.

엉덩이 높이까지 현관문 앞에 물이 찼을 때는 성인 세 명이 문을 열려고 해도 현관문을 열 수 없는 압력이
가해집니다.

그렇다면 현관문 바깥쪽에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문을 당겨서 여는 건 가능할까.

취재기자 /
지금 엉덩이에서 허벅지까지 내려왔는데 진짜 안 열리게 미동조차 안 하고 있고요.

손잡이를 당길 때 손이 미끄러지기도 하고...

미는 힘보다 당기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문을 열기가 더 어렵습니다.

지하실 바닥에서 80~90cm 정도의 물이 차올라 허벅지 높이 수위까지 찼을 때 열려고 하면 어떨까.

취재기자 /
허벅지까지 수위가 내려왔는데요. 그래도 꿈쩍도 안 하고 있습니다.

허벅지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을 때도 성인 혼자서는 도저히 열 수 없는 압력이 가해집니다.

그렇다면 지면에서 50cm 정도 높이인 무릎 정도까지 물이 차오르면 어떨까.

기자가 온 힘을 다해 밀지만..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습니다.

취재기자 /
와 이거 진짜 안 열린다

결국, 물이 많이 빠지고 나서야 문을 열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동준 소방사 / 빛고을 국민안전체험관
침수가 되기 시작하면 최대한 빨리 밖으로 나오시는 게 중요해요. 이제 그거를 놓쳐서 문이 안 열리기 시작하면,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한테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문이 안 열리면 문을 열려고 무리하기보다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빨리 알려 도움을 받는 것이 더 빨리 구조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서울에 역대 최대의 폭우가 내렸던 날.

서울 지하철 곳곳이 침수됐습니다.

범람한 물이 지하철 계단을 휩쓸어 버리고 무게를 이기지 못한 천정도 터져버립니다.

개찰구를 포함한 역사 전체도 물에 잠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하철역에 갇힌다면 밖으로 탈출할 수 있을까.

취재기자 /
계단이 하나도 안 보여요.

양쪽에 난간을 잡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흙탕물이 아닌데도 계단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물살의 세기도 걸음을 옮기기 힘들 만큼 두 발에 힘이 가해집니다.

양쪽에 난간이 없었다면 성인이 혼자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기 쉽지 않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지하철역에서 탈출할 때는 한쪽에 난간을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속도는 조금 더디지만 침수된 지하철역에서 탈출할 때는 두 손으로 한 곳의 난간을 잡는 게 훨씬 안전한 방법이라고 합니다.

취재기자 /
계단이 하나도 안 보여요 옆에 난간이 없으면 바로 넘어졌을 거 같아요.

그렇다면 흙탕물로 계단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는 어떻게 계단을 올라가야 할까.
취재기자 /
이게 지금 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장화가 아니었으면 미끄러졌을 것 같습니다.

김동준 소방사 / 빛고을국민안전체험센터
발을 질질 끌면서 가야 됩니다. 발을 끌면서 계단 모양이랑 계단 안에 뭐가 있는지 확인을 하면서 천천히 올라가시면 좋아요. 계단 간격도 확인하고 계단 안에 뭐가 있는지도 확인하는 겸입니다.

2년 전, 태풍 힌남노가 몰고 온 집중호우로 잠겨버린 아파트.

인근에 있는 냉천이 범람해 지하 주차장에도 물이 천장까지 차올랐습니다.

당시 이곳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려던 아파트 주민 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인근의 하천이나 강이 있어 범람하는 경우 주변 지역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침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도로나 지하 주차장에서 차량이 침수될 경우 과연 탈출할 수 있을까.

차량의 앞뒤 바퀴가 모두 잠긴 상황.

차량 안에도 기자의 허리가 완전히 잠길 정도로 물이 차올랐습니다.

취재기자 /
기어봉도 다 잠겨가지고 손가락 한 마디가 들어갈 정도로 잠겨있습니다.

물이 이렇게 차오른 상태에서 과연 문을 열 수 있을까

생각보다 쉽게 문이 열립니다.

힘은 들었지만,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차량 안의 물 높이와 차량 밖의 물 높이가 같은 상황에서는 문을 열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차량은 효율적인 실험을 위해 차량에 물이 빨리 차도록 제작돼 차량 바깥에 가해지는 압력과 차량 내부의 압력이 빨리 비슷해지도록 설계됐습니다.

폭우로 침수된 도로 승합차 한 대가 도로를 건너다 흙탕물에 고립됐습니다.

문을 열려고 하지만 문이 잘 열리지 않습니다.

물이 어느 정도 들어찬 다음에야 차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럴 경우 차 안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바퀴의 1/3 이상 배기구 높이까지 물에 잠기면 시동이 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퀴까지 물이 차오르면 차량 문이 열리지 않기 때문에 차량 유리를 깨고 탈출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차량 목 받침대 미리 준비해 둔 차량용 망치 등을 이용해 차량 유리 모서리를 세게 내리쳐 유리를 깨야 합니다.

차량이 침수 지역에 고립돼 발생하는 인명 피해는 해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운전 중 고립됐을 때 운행을 즉시 멈추고 차량 밖으로 빠져나와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집중호우가 계속되면 강이나 하천이 빠르게 차오릅니다.

이런 경우 강이나 하천을 건너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영주 교수 /
매일 오가는 거리고 내가 저쪽에서 강물이 불어나는 걸 항상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 시간에 위험을 확인하면서 충분히 건널 수 있다고 대부분 생각을 하시거든요. 근데 이런 계곡이라든지 시골에 있는 작은 천 같은 경우는 유수 단면이나 이런 것들이 작기 때문에 한번 물이 불어나기 시작하면 정말 눈 깜짝할 새 물이 불어나거든요.

많은 분이 본인이 위험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언제든 이런 부분들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들을 하시는 게 문제입니다.

차에 타고 있는 중에 물에 잠기면 어떡합니까? 라고 얘기하면 제가 첫마디로 차를 버리라고 말씀을 드리거든요. 가장 기본적인 겁니다. 이 차를 어떻게든 내가 끌고 나가야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움직일지 몰라도 침수 지역을 계속 차로 운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멈출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면 더 위험한 상황이 되는 거예요. 그전에라도 빨리 버리고 도망갔다면 조금이라도 안전한 상황에서 대피할 수 있지만, 더 시간을 지체한 다음에 더 위험한 상황에서 대피를 한다면 그만큼 살아날 확률은 더 적은 거거든요.

차는 보상도 받을 수 있고 다시 살 수도 있지만 내 목숨은 그렇게 안 되니까 그렇게 차는 보상받는다 생각하시고 도망가시라고 말씀을 드리거든요. 많은 분이 재산이 아깝고 내 차가 아깝지만 재난 상황에서는 본인 스스로의 생명이나 안전을 가장 우선시하는 부분이 중요하다 생각해요.
지난 10일 충남 서천에서 발상한 산사태 피해 현장.


■올해도 발생한 인명 피해

지난주, 사흘 동안 300mm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진 경북.

출근길에 나선 40대 여성은 갑자기 불어난 물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목격자(음성변조) /
비상 깜빡이가 켜져 있고 차에 시동 걸려 있는데 사람이 없는 거예요.

충남 서천에서는 집에 있던 70대 남성이 산사태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1년 전, 폭우가 빚은 참사...

올해도 비 피해는 이어졌습니다.

해마다 더 강해지고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집중 호우.

정창삼 교수 /
시간당 50mm 이상의 극한 호우가 오는 빈도가 굉장히 잦아지고 있고 이거는 모든 사람이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거든요.

언제 어디서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피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
주택 등 민가를 덮치는 이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곳이 사실은 너무 많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지고 대비를 하지 않으면 피해는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취재기자: 방준원
촬영: 조선기 강우용
영상편집:김태형 이기승
그래픽: 장수현
자료조사: 김예은
취재자문: 서재철(녹색연합 전문위원),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이영주 교수(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KBS재난방송전문위원) 정규원(산림기술사), 정창삼(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KBS재난방송전문위원) / 가나다순
조연출: 유화영 김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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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원 기자 (pcba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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