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넷-볼넷-볼넷' 93구 발라조빅 못 바꾸고, 불펜 교체 타이밍 엉망…'선발 야구 붕괴' 두산의 현주소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5연속 선발투수 조기 강판의 대가는 컸다. 선발 야구가 붕괴된 두산 베어스의 현주소를 확인한 패배였다.
두산은 14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팀간 시즌 12차전에서 2-6으로 역전패했다. 두산은 6회까지 2-1로 앞서면서 한때 2위 도약도 꿈꿨지만, 7회 불펜이 무너지면서 결국 경기가 뒤집혔다. 후반기 시작부터 불펜이 많은 공을 던진 여파가 결국 투수 교체 타이밍이 꼬이는 결말로 이어졌다.
두산은 선발투수로 새 외국인 조던 발라조빅을 내보냈다. 발라조빅은 등판 전부터 5이닝 투구가 가능할지 물음표가 붙었다. 올해 한국에 오기 전까지 미국 미네소타 트윈스 마이너리그 트리플A 팀에서 뛸 때는 불펜으로만 등판했기 때문. 두산과 계약하고 합류하기 전까지 투구 수를 가능한 늘려달라고 주문했으나 전력 투구가 가능한 건 60구까지였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본인과 이야기했을 때는 60구 정도까지는 충분히 구위가 초반과 다르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다. 60구 이상이 되면 벤치에서 판단해 달라고 하더라. 우리도 판단하겠지만, 투수 본인도 잘 알 것이기에 조금 힘이 떨어진다거나 공이 자꾸 빠진다거나 이러면 신호를 달라고 했다. 서로 협의해서 가야 할 것 같다"고 했고, 이날도 "80구 이상은 못 갈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발라조빅은 예고한 대로 60구 정도를 던진 초반 4이닝까지는 투구 내용이 괜찮았다. 직구 최고 구속은 156㎞, 평균 구속은 151㎞까지 찍었다. 강속구에 스플리터, 커브 슬라이더 등 변화구도 매우 예리했다.
삼성 포수 강민호는 경기 뒤 "(발라조빅의) 구위가 좋더라. 약간 기계 공이 날아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조금 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늘(14일) 공도 못 맞혔다. 굉장히 좋은 구위를 갖고 있더라"고 이야기했다.
문제는 역시나 스태미나였다. 발라조빅은 4회까지 71구를 던지면서 무실점으로 잘 버텼는데, 5회부터 구위가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직구 구속은 시속 140㎞대로 형성됐고, 제구도 급격히 흔들렸다.
그래도 운이 따르고 있었다. 발라조빅은 선두타자 윤정빈을 볼넷으로 내보냈으나 다음 타자 박병호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울 때 2루를 훔치던 윤정빈까지 잡으면서 2사 주자 없는 상황으로 바꿨다. 이때 투구 수가 83개였다. 이 감독도 알고 있던 한계 투구 수가 이미 넘은 상황이었다.
두산은 여기서 냉정히 불펜을 투입할 필요가 있었으나 발라조빅이 5이닝을 채울 수 있도록 투수 교체 타이밍을 한번 미뤘다. 1-0으로 앞서 승리 투수 요건이 걸려 있지만, 불펜 투입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여파다. 두산은 앞선 후반기 4경기에서 선발이 11⅓이닝밖에 책임지지 못하면서 불펜이 무려 25⅓이닝을 던져야 했다. 사실상 선발투수 없이 4경기를 치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민규(2⅓이닝)-김유성(2이닝)-곽빈(3⅓이닝)-시라카와 케이쇼(3⅔이닝)까지 선발투수들이 5이닝은커녕 4이닝도 채우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이영하(3경기 3이닝), 이병헌(3경기 4이닝), 홍건희(3경기 2⅓이닝) 등이 이미 많이 던진 상태였다.
발라조빅은 2사 후 또 류지혁을 볼넷으로 내보내면서 다시 한번 위기를 자초했다. 볼넷을 내주면서 스트라이크는 하나뿐이었고, 그렇다면 이때라도 바꿨어야 했는데 전병우까지 상대하게 했다. 발라조빅은 전병우에게도 또 볼넷을 내줬고, 투구 수는 93개까지 불어났다.
두산은 결국 좌완 이교훈으로 교체했다. 그런데 여기서 실책성 수비가 나왔다. 김헌곤이 유격수 앞에서 바운드가 크게 튀는 땅볼을 쳤는데, 유격수 전민재가 앞으로 달려들면서 잡아야 아웃 처리가 가능했으나 오히려 뒤로 빠지면서 잡으면서 송구할 시간을 잡아먹었다. 전민재는 뒤늦게 2루로 송구했으나 이미 1루주자 전병우가 2루를 밟은 뒤였다. 이교훈은 다음 타자 이재현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해 1-1이 됐다.
두산은 5회말 조수행의 번트 안타로 한 점을 뽑으면서 금방 2-1 리드를 다시 잡았다. 여기서 벤치는 6회초까지 이교훈을 한 이닝 더 끌고 갔다. 이교훈은 무실점을 버티면서 기대에 부응했다. 그렇다면 1점차인 만큼 7회부터는 필승조를 투입해 어떻게든 틀어막는 선택을 했어야 했다. 이영하, 최지강, 김택연 등이 활용 가능한 카드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7회초에는 이교훈이 마운드에 올랐다. 좌완 필승조 이병헌이 3연투 여파로 이날 등판이 어려웠고, 선두타자가 좌타자인 류지혁이었기에 한 타자만 상대하고 바꿀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교훈은 류지혁에게 안타를 허용하면서 한번 더 벤치의 계산이 꼬이게 했다.
무사 1루에서 이영하가 마운드에 올랐다. 이영하는 2아웃까지 잘 잡았고, 2사 2루에서 이재현까지 평범한 좌익수 뜬공을 유도했다. 1점차 리드를 안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올해 신인인 좌익수 전다민이 타구 판단을 잘못하면서 글러브에 맞고 떨어지는 적시 2루타가 됐다. 전다민은 올해로 외야수 전향 2년차라 수비 경험이 적은 선수인데, 1점차 접전에 결국 아쉬운 플레이가 나왔다. 점수는 2-2 동점.
이영하는 계속된 2사 1루 위기에서 구자욱을 자동고의4구로 거르고, 강민호와 승부를 선택했다. 강민호는 이영하의 초구 슬라이드를 받아쳐 좌월 3점포로 연결했다. 순식간에 2-5로 벌어지면서 삼성이 확실히 승기를 뺏는 순간이었다.
패색이 짙은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두산은 여기서 바로 김유성으로 투수를 교체했다. 김유성은 1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버티면서 그나마 불펜 소모를 아낄 수 있게 해줬다.
마지막 고비는 9회였다. 박정수가 등판해 2아웃을 잘 잡고는 갑자기 제구가 흔들렸다. 이재현이 사구, 구자욱과 강민호가 볼넷을 얻어 2사 만루가 됐다. 박정수가 볼을 남발하는 와중에 두산 불펜은 텅 비어 있었다. 필승조를 여기서 굳이 쓸 이유도 없었고, 더 바꿀 불펜도 없었다. 결국 박정수가 계속 던졌고 이성규가 밀어내기 사구를 얻어 2-6이 됐다. 잘 풀릴 수 있었던 상황이 너무 꼬이기도 했지만, 선발 야구가 무너진 현실을 처절하게 깨닫게 했던 경기였다.
두산 불펜은 경기 전까지 386⅔이닝을 던져 압도적 리그 1위에 올라 있었다. 이 감독은 "아주 걱정이다. 후반기에 (선발투수들이) 전부 다 3회, 4회 이렇게밖에 던져주지 못하기 때문에 많이 아쉽지만, 선발투수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는 항상 많은 공을 던지지 말라고 한다. 볼넷을 좀 줄이자 이런 것을 항상 요구는 하는데 안 되더라. 투수들이 요즘 사실 볼이 많아졌다. 이닝 소화력도 떨어지고, 불펜이 빨리 시작하다 보니까 과부하도 많이 오고 있는데 선발투수들이 긴 이닝을 끌어줘야 하는 상황이다. 선발투수들은 5일에서 4일을 쉬기 때문에 한 경기에 정말 집중해서 던질 필요가 있다. 불펜진이 뒤에서 잘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불펜을 믿고 본인이 던질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마운드에 쏟아붓고 내려오면 좋겠다. 제구력이 안 좋은 투수는 길게 쓸 수가 없다"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곽빈과 시라카와, 발라조빅까지 3명이라도 최소 5이닝을 채워주길 간절히 바라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반복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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