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비밀

이지수 first@mbc.co.kr 2024. 7. 1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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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2년 만에 처음으로 열린 대통령의 국정브리핑.

8분 전에야 시작 시간이 공지될 정도로 전격적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동해에 막대한 양의 석유가 매장돼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브리핑, 6월 3일)]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기업인 미국의 액트지오사에 물리 탐사 심층 분석을 맡겼습니다. 최근에 최대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고."

최대 140억 배럴.

값으로 치면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4배가 넘는 무려 2천2백조 원어치로 우리나라 전체가, 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 쓸 수 있는 양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브리핑, 6월 3일)] "심해 광구로는 금세기 최대 석유개발사업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110억 배럴보다도 더 많은 탐사 자원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순식간에 주식시장이 출렁였습니다.

한국가스공사 주가가 상장 후 25년 만에 처음 상한가를 찍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석유 매장 가능성에 대한 분석과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여러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비토르 아브레우/액트지오 대표 (인천국제공항, 6월 5일)]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 게 가장 좋을지 한국석유공사와 논의하고, 이번 중요한 프로젝트에 대해 한국 국민께 더 나은, 더 명확한 답변을 드리기 위해 방문하게 됐습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시추 성공 가능성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인 20%에 달한다며, 연말부터 5곳의 시추공을 뚫으려 하고 있습니다.

한 곳당 최소 1천억원의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캐머룬 만체/텍사스 A&M대 버그 휴즈 센터 연구원] "제 생각에는 엄청난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자신감을 가지거나, 흥분하기 전에 추가적인 연구가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실패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입니다."

◀ 이휘준 ▶

안녕하십니까. 이휘준입니다.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 이번 동해 유전·가스전 개발 사업을 부르는 명칭입니다.

오늘 스트레이트는 이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둘러싼 여러 논란과 의혹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지수 기자 나와 있습니다.

이 기자 정말 깜짝 발표였습니다.

우리 영해에서 실제로 석유가 나온다면 환영하지 않을 국민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걸까요?

◀ 이지수 ▶

앞서 보셨듯이, 시추 작업부터 막대한 정부 예산이 투입되거든요.

그러니까 성공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이 분석 결과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분석과 검증 절차에서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의문이 계속 불거지고 있습니다.

어떤 의혹과 논란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봤습니다.

◀ VCR ▶

경상북도 포항시 영일만에서 약 40 킬로미터.

배로 꼬박 2-3시간을 가야 닿을 수 있는 동해 울릉분지 일원입니다.

정부가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묻혀 있을 걸로 추정된다고 한 바로 그 해역입니다.

한국석유공사는 이 해역의 물리 탐사 자료 분석을 미국의 한 업체에 의뢰해 시추 성공 가능성이 20%에 달한다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대통령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언급한 '액트 지오' 사입니다.

[안덕근/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국정브리핑, 6월 3일)] "대통령님께서 설명하신 것처럼 저희가 이제 물리탐사를 거의 객관적인 수준에서는 저희가 다 진행을 했고요. 검증까지 다 받은 상황이고."

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원래 이 해역에선 호주 최대의 석유개발업체인 '우드사이드'가 지난 2007년부터 유전 탐사를 해왔습니다.

두차례 실제 시추도 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특히 2015년 이른바 '홍게공' 시추 당시에 석유공사는 "22년치 사용분의 가스 확보가 기대된다"는 보도자료까지 냈습니다.

그렇지만 나온 건 물과 이산화탄소였습니다.

결국 우드사이드는 지난해 "미래 가치가 없다"며 동해 유전 탐사에서 철수했습니다.

그런데 1년 사이 갑자기 미국 텍사스 주에 있는 소규모 컨설팅 업체 '액트지오'가 전혀 다른 전망치를 들고 나온 겁니다.

액트지오는 주소지가 대표인 아브레우 박사의 자택으로 돼 있는 등, 사실상 1인 기업처럼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세계 최고의 석유 탐사 기업' 이런 식의 표현들이 나온 거잖아요. 저는 그것 자체가 논란을 오히려 확산시킨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회사였고."

논란이 커지자 석유공사는 아브레우 대표를 직접 한국으로 불러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아브레우 대표는 세계 최대 석유 회사인 엑손모빌에 재직하며 남미 가이아나 광구 탐사 작업에 참여한 전문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회사가 소규모로 석유업계 전문가가 모여 유연하게 활동하는 조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비토르 아브레우/액트지오 대표 (6월 7일)] <회사의 주소지가 아브레우 고문의 개인 주택이 맞는지에 대한 질의입니다. 아브레우 고문 답변 주시기 바랍니다.> "네 맞습니다. 액트지오의 밑그림은 새로운 유형의 컨설팅 회사가 되는 것입니다. 저희가 업무를 할 때 유일하게 필요한 건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카메라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 팀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습니다."

석유공사는 '우드사이드'가 철수한 이후에도 탐사 데이터를 계속 축적해왔고, 이를 기반으로 석유가 나올만한 유망구조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곽원준/한국석유공사 수석전문위원 (6월 7일)] "대륙붕 지역에서 우리가 탐사해 놓았던 자료하고 우드사이드가 탐사해 놓았던 심해지역 자료하고, 이 지역은 대륙사면 지역인데요, 대륙사면 지역에 3D가 완성됨으로써 울릉분지 전체를 3D로 볼 수 있는 탐사 자료의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그래도 논란은 계속됐습니다.

액트지오사가 세금을 체납해, 한국 정부와 용역 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는 법인 자격이 말소된 상태였던 사실도 밝혀진 겁니다.

기자회견 후에도 가라앉지 않는 논란에 대해 묻기 위해 <스트레이트>는 아브레우 대표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아브레우 대표는 질문이 매우 타당하다며, 곧 답을 주겠다고 회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이트>는 직접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찾아갔습니다.

휴스턴은 세계 굴지의 석유 회사들이 몰려있어 석유 사업의 본고장으로 불립니다.

액트지오의 주소지도 휴스턴입니다.

한적한 주택가 골목 끝, 가정집으로 보이는 2층짜리 주택이 나옵니다.

[액트지오 자택 세입자] <비토르 아브레우 박사님을 찾고 있습니다.> "네?" <비토르 아브레우 박사님이요. 아직 계신가요?> "우리 이번에 이사 왔어요."

아브레우 박사가 이미 지난 6월 초 이 집을 세를 놓고, 브라질로 떠났다고 합니다.

[액트지오 자택 세입자] "그 분(아브레우 박사)은 브라질로 갔어요. 회사 일로 4년 동안 브라질로 돌아가야해서 집을 세놨어요. 제가 막 임차를 했고요."

텍사스 주정부가 발급한 액트지오 법인 관련 서류.

지난 2019년 1월부터 23년 3월까지 법인 등록이 말소된 걸로 돼 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법인세'의 일종인 '프랜차이즈세'가 있는데, 이 세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텍사스 주 세무 담당 공무원] "어쩌면 몇 년 동안 아무 일감이 없었을 수도 있죠. 그럴 수도 있죠. 어쩌면 부업이었거나 그런 것이었을 수도 있고요."

미국에선 이런 경우 정부와 용역 계약을 맺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이상구/미국 텍사스 소재 회계법인 회계사] "텍사스 주 정부와 일을 하려고 하면 텍사스 정부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다 갖춰야 됩니다. 결격 사유가 될 수가 있죠. 만약에 이 기간 지금 몰수당했던 기간에 입찰을 들어갔으면 당연히 입찰을 따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석유공사는 지난 2022년 11월, '대왕고래' 탐사 결과 분석을 위해 액트지오를 포함해 3곳의 업체를 지정해 '제한경쟁입찰'을 진행했습니다.

더구나, 다른 두 곳은 바로 슐럼버거와 할리버튼이었습니다.

슐럼버거는 시가총액이 우리 돈으로 90조 원이 넘는 유전 개발 서비스 세계 1위 기업이고, 할리버튼도 시가총액 41조 원 규모의 3위 기업입니다.

업계 1위와 3위 기업 대신 세금체납 이력이 있는 작은 기업 액트지오를 선택해 129만달러 규모의 용역계약을 체결한 겁니다.

[최남호/산업통상자원부 2차관] "(액트지오가) 한 1,650불 정도를 체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석유공사에서 그 부분까지 놓친 거에 대해서는 '아주 완벽하게 잘하지 못했다'라는 점에서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지만 계약 자체에 대해서는 법인격이 살아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요."

[이사벨 펠레티어/박사·지질학자] "한국 정부가 돈을 아끼려고 가장 싼 곳을 택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작업의 품질과 맞바꾸는 거잖아요. 그게 우려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정부는 순차층서학에 대한 아브레우 박사의 전문성과 엑손모빌에서의 실전 경험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최남호/산업통상자원부 2차관] "순차층서학에 기반한 분석을 가장 잘했던 회사가 엑손모빌이었고. 또 거기서부터 나온 학문이 순차층서학이고 이 순차층서학의 가장 권위자가 아브레우 박사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순차층서학은 지층의 과거 역사를 토대로 지질 구조를 파악하는 지질학의 일종입니다.

마침 휴스턴지질학회 주최로 석유업계과 학계 전문가 수십 명이 모인 토론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아브레우 박사에 대해 물었습니다.

[팀 맥쉐인/석유 시추업체 팀장] "모릅니다. 그 이름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잭 리우/에너지업체 부문장] "아니오.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10여 명에게 물었지만, 아브레우 대표나 액트지오를 아는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지질학 분야에 세계적 권위를 갖고 있는 Texas A&M 대학 버그 휴즈센터(Berg-Hughes Center)에서 아브레우 대표를 아는 전문가를 찾았습니다.

[캐머룬 만체/텍사스 A&M대 버그 휴즈 센터 연구원] "네, 그분(아브레우 대표)은 이 분야에서 유명하신 분이고 존경 받는 전문가이십니다. 그렇긴 하지만, 세계에는 순차층서학에 관한 다른 전문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만 아브레우 박사가 최고 권위자인지에 대해선 의문을 나타냈습니다.

[캐머룬 만체/텍사스 A&M대 버그 휴즈 센터 연구원] "(순차층서학은) 대부분 주요 석유 가스 회사들이나 교육 기관이 일반적인 방식으로 채택해왔어요. 그리고 석유 가스 회사, 주요 기관들, 학술 기관에 많은 전문가들이 계십니다."

◀ 이휘준 ▶

아브레우 박사가 뛰어난 경력을 가진 유정 탐사 업계의 권위자라고는 하지만 굴지의 에너지 기업이 동해 석유 개발에서 발을 빼거나, 분석 작업 입찰에서 세계적 기업이 탈락한 건 이상해 보이기는 합니다.

◀ 이지수 ▶

그래서 액트지오의 분석이 근거가 있고 설득력이 있는지 검증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 이휘준 ▶

해외 자문단에 참여한 전문가가 3명이죠?

◀ 이지수 ▶

네, 그런데 이 3명이 모두 미국 텍사스에 있는 같은 대학 같은 학과 소속이었고요.

또 이번 사업을 총괄하는 석유공사 팀장이나 아브레우 박사와 학연이나 직장 등으로 얽혀있는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이 교수들을 직접 만나, 검증에 참여하게 된 경위를 물어봤습니다.

◀ VCR ▶

정부와 액트지오 측이 밝힌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탐사자원량은 35억 배럴에서 140억 배럴, 석유가 묻혀있을 만한 유망구조 7곳을 발견했고, 성공확률은 20%입니다.

규모도 엄청난 데다, 확률도 남미에 있는 세계 최대 심해 광구인 가이아나 유전 개발 때보다도 높다고 말합니다.

[비토르 아브레우/액트지오 대표 (6월 7일)] "20%는 미개척 분지에서 매우 훌륭한 수치입니다. 비교해서 설명하면, 지난 20~25년간 세계에서 가장 큰 발견은 가이아나에 있는 리자 유망구조입니다. 당시 리자의 지코스(지질학적 성공 확률)는 16%였습니다."

20%가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라는 건 석유 시추 분야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팀 맥마흔/텍사스대 오스틴 잭슨지질과학대학 연구원] "제겐 매우 높아 보입니다. 20%면 높은 편이죠."

[이근상/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성공 확률 20%는 탐사 광구에서는 나름 괜찮은 숫자입니다."

이 확률은 어떻게 계산된 걸까.

해저에 석유와 가스가 만들어져 저장돼있으려면 4가지 요소가 필수적입니다.

근원암과 저류암, 덮개암과 트랩입니다.

근원암은 유기물 함량이 높은 퇴적암으로, 밑바닥에서 뜨거운 열과 압력을 받아 석유와 가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암석을 말합니다.

그다음엔 공극, 즉 미세한 구멍이 많은 저류암이 필요합니다.

근원암에서 생성된 석유와 가스가 머무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덮개암은 이렇게 저장된 석유와 가스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는 뚜껑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근원암과 저류암, 덮개암과 주변 지층이 석유와 가스를 오랜기간 품을 수 있는 구조인 '트랩'이 만들어져 있어야 합니다.

[비토르 아브레우/액트지오 대표 (6월 7일)] "우리는 실제로 이 분지에 석유 시스템의 4가지 주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성공확률은 이 4가지 요소가 존재할 확률을 각각 구한 뒤 곱해서 계산합니다.

예를 들어 4가지 요소가 존재할 확률이 각각 70%면, 시추 성공률은 24%가 되는 식입니다.

각각의 확률은 물 속에서 전파를 쏴 되돌아오는 탄성파를 이용해 수집한 물리탐사 자료가 근거가 됩니다.

[최경식/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좋다, 아주 좋다 또는 보통이다, 나쁘다. 거기에 대한 숫자를 주는 거죠. 아주 좋으면 0.9, 그다음에 좋으면 0.7, 그다음에 0.5 이런 식으로 이제 내부 기준이 있습니다. 상당히 주관적인 거죠. 그게 회사마다 또는 그걸 분석하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고."

산업부 고위 관계자가 성공 확률 20%를 "시추공을 5개 뚫으면 1개에서 자원이 발견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한 적이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런 확률이 아닌 겁니다.

[이근상/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그거는 일반적으로 옳은 게 아니고 그걸 아마 단순하게 전달하려고 하다 보니까 20%니까 한 5개 뚫으면 1개 이상 발견한다. 아마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 같아요."

이 분석 과정에는 주관이 반영될 수 있기 때문에 검증 역시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그런데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성공확률 검증은 텍사스대학 오스틴 캠퍼스의 잭슨 지구과학대학 지구행성과학과 교수 3명이 맡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같은 학교, 같은 학과 교수들로만 검증 자문단이 꾸려진 겁니다.

더구나 이들 중 선임격인 데이비드 모릭 교수는 아브레우 대표와 과거 엑손모빌에서 함께 근무하고 논문도 같이 쓴 사이인데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한국석유공사 동해탐사팀장 구 모 씨의 박사 과정 지도교수이기도 했습니다.

<스트레이트>는 이틀간 학교에서 기다린 끝에 어렵게 모릭 교수를 만났습니다.

[데이비드 모릭/텍사스대 오스틴 지구행성과학과 교수] <만나서 반갑습니다. 잠시 대화 괜찮으실까요?> "이거 한국 관련인가요?" <네, 한국 프로젝트 관련이에요.>

자리를 옮겨 진행한 인터뷰에서 모릭 교수는 2023년 봄에 제자였던 동해팀장의 연락을 받고 검증 작업을 하게 됐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자문단의 다른 교수 2명도 자신이 추천해 함께 일했다고 말했습니다.

검증은 지난해 7월부터 한 달간 진행했고, 보고서는 서로 협의해 함께 작성했다고 했습니다.

교수들이 개별적으로 독립된 검증 보고서를 낸 건 아니었던 겁니다.

모릭 교수는 2000년에서 2001년 사이 아브레우 박사와 같이 일한 건 맞지만, 이후 연락을 하고 지낸 사이는 아니었고

이 관계가 분석 작업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취재진은 검증에 참여한 코넬 올라리우 교수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코넬 올라리우/텍사스대 오스틴 지구행성과학과 교수] "<들어가도 될까요?> 네."

올라리우 교수 역시 석유공사 구 팀장의 석사 학위 논문을 지도하고, 논문을 같이 낸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 역시 구 팀장 또는 석유공사의 다른 사람이 분석 작업을 부탁해 검증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습니다.

석유공사의 담당 팀장과 액트지오, 그리고 자문단이 학연이나 직장 등으로 얽혀있는 겁니다.

[김태형 박사/전 쉐브론 엔지니어] "전문가 풀(집단)이 좁다고는 하지만 그 모든 전문가가 UT(텍사스대) 오스틴에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여러 가지 객관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지금 여러 것들이 지금 발생을 했기 때문에 적절하지는 못하죠. 그러니까 석유공사에서 이렇게 되면 결국 인맥으로 네트워크로 이걸 한 게 아닌가."

'이해충돌' 소지가 불거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알레산드라 시몬/박사· 석유 공학자트] "대형 기업에서 일하면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함께 일할 때마다 그 관계를 신고해야 돼요. 그래서 이들이 함께 일했다거나 공동저자였다는 신고가 없었다면 확실히 이해 충돌에 대한 조사가 있겠죠."

<스트레이트>는 석유공사 측에 자문단 선정과정과 '이해충돌' 문제 등을 질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석유공사는 "전문성만을 고려해 해외 자문단을 선정"했고, 자문단이 "공정하게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한다며, 메이저 석유회사의 검증을 통해 신뢰성을 추가확인하기도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해충돌 여부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 이휘준 ▶

탐사 자료 분석은 1인 기업에 맡기고, 검증은 프로젝트 담당자의 스승들에게 맡겼다는 건데 석유공사의 답변만으로 의문이 쉽게 가시지는 않습니다.

◀ 이지수 ▶

그런데, 자문과 검증 과정을 취재하면서 이상한 점이 또 눈에 띄었습니다.

액트지오의 분석과 별개로 석유공사가 이미 지난해부터 구체적으로 시추 일정과 규모를 결정한 듯한 정황이 확인됐습니다.

◀ 이휘준 ▶

정부와 석유공사는 액트지오의 용역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시추를 하기로 정했다는 입장이었잖아요.

◀ 이지수 ▶

네, 석유공사 내부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었는지 취재했습니다.

◀ VCR ▶

신용평가사 S&P의 주최로 매년 미국 휴스턴에서 열리는 세라위크.

엑손모빌, 쉐브론, BP, 사우디 아람코, 쿠웨이트 석유공사 등이 모이는 에너지업계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세라위크를 찾은 김동섭 석유공사 사장이 휴스턴의 한 호텔에서 글로벌에너지 업체 전현직 임직원 5명과 조찬 회의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출장보고서에도 나와 있지 않은 비공식 회의였습니다.

당시 한 참석자는 김 사장이 주로 심해 유전 탐사와 관련된 자문을 구했다고 했습니다.

[조삼제/텍사코에너지리소스 회장] "이제 여러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이 사람 의견도 물어보고 저 사람 의견도 물어보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다 김 사장이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고 합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 바로 그 고래 구역에 석유가 있을 가능성을 언급한 겁니다.

[조삼제/텍사코 에너지 리소스 회장] "'고래 등 옆에 유망 구조를 발견했다' 그 이야기가 연결됐으니까 오히려 듣는 사람으로서는 유망 구조를 발견했다면 사실 탄성파 탐사를 끝내야만 이야기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러면서, 실제 시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기술적 문제, 특히 과도한 압력 상승 시 대처 방안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고 기억했습니다.

[조삼제/텍사코 에너지 리소스 회장] <어떤 거를 좀 궁금해하던가요?> "기존 웰(유정)에서 시추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고압 상태가 일어났다.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게 드릴링(시추)이거든요. 그쪽 지층이 압력이 높다는 게 가능한 추리니까 그것을 어떻게 뚫어야 되느냐, 그 이야기겠죠."

석유공사는 '대왕고래' 프로젝트 이전에 인근 해역에서 '주작', '홍게', '방어'로 불리는 세 구조를 시추한 적이 있습니다.

'대왕고래'와 가까운 '방어' 구조에선 2021년 대륙붕에 시추공을 뚫다 예상치 못한 압력 상승이 일어나 작업이 전면 중단된 적이 있습니다.

[후안 카를로스/텍사스A&M 대학 지질·지구과학과 교수] "과압력 지대라고 합니다. 이건 위험과 관련된 문제인데요. 2010년 멕시코만에서 대형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 후에 특히 심해에서 이러한 모든 안전 문제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조찬 회의가 있던 시점은 3월 초.

석유공사가 액트지오에 대왕고래 프로젝트 분석을 맡긴 건 지난해 2월 13일이니까, 채 한 달이 안 된 시기였습니다.

당연히 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이었습니다.

석유공사가 액트지오의 분석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유망구조가 있다고 판단하고, 시추까지 준비하고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김태형/전 쉐브론 엔지니어] "새로운 시추를 할 때 위험성을 좀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 아니었나 저는 그렇게 보입니다. 유망 구조를 발견했다라고 이제 말을 하셨다면 액트지오 건하고는 별개로 아마 유망 구조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이고요."

석유공사가 이미 시추를 준비하고 있었던 걸로 보이는 정황은 또 있습니다.

액트지오의 중간 보고서는 지난해 7월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지난해 6월 석유공사 이사회 회의록.

경영전략실장이 올해부터 "물리탐사 및 탐사시추를 약 7천억 정도 투자"하겠다며 27년까지 총 6공을 시추하는 계획을 보고했습니다.

10월엔 '동해같은 경우 2024년 기초시추 1공을 시작'한다는 구체적인 일정을 내놨고, 11월에는 시추에 필요한 기자재와 장비, 용역 발주도 시작했습니다.

액트지오의 최종보고서가 나온 건 이보다 뒤인 12월이었습니다.

[최경식/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아마 내부적으로도 분명히 구조를 잡았을 것이고 그것들을 서로 디스커션(논의)하는 과정에서 좀 어떤 수렴되는 과정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분들도 나름 전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브레우 박사가 전체 다를 만들어줬을 가능성은 저 개인적으로 낮게 보거든요."

이에 대해서도 석유공사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의사회 의결을 거쳐 시추작업 관련 입찰 및 계획을 절차에 따라 준비해왔다"고 밝혀왔습니다.

[하승수/세금도둑잡아라 대표] "발주자의 의사에 따라서 용역 결과가 나오게 되다 보니까 이제 나중에 그게 문제가 된 사례들이 많은데 똑같다고 봅니다. 액트지오를 선정한 과정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이게 밝혀져야 되는 문제라고 생각되는 게, 과연 이제 이 용역업체를 선정할 때 신뢰성이나 전문성이 제1의 기준이었는지 아니면 뭐 다른 요소가 있었는지."

◀ 이휘준 ▶

석유공사가 한발 앞서 대비를 한 건지, 아니면 결론을 정해놓고, 이걸 뒷받침할 분석결과가 필요했던 것인지 명확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이지수 ▶

네, 그렇습니다. 더구나 이번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면서 국민적인 관심이 쏠린 사업이 됐습니다.

과거 정부에서도 에너지 자원 개발 가능성을 공표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여러 차례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좀 더 납득할 수 있는 절차를 밟아가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 VCR ▶

[가수 정난이] "흑진주 빛을 잃고 숨어 있는 곳, 제7광구. 검은 진주 제7광구, 검은 진주."

1980년 발표된 노래 '제7광구'입니다.

제주도 남쪽 7광구에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돼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탐사 결과가 보고되면서, 기대와 설렘을 담은 유행가까지 등장한 겁니다.

1980년 한국과 일본이 협정을 맺고 공동 개발에 들어갔지만, 경제성이 없다는 구실로 일본이 미온적으로 나오면서 사실상 개발은 중단됐습니다.

이렇게 잊혀진 가운데 협정 종료 시한은 2028년으로 다가왔습니다.

한일 공동개발 협정 이후에 '배타적경제수역' 개념이 생겼기 때문에, 협정이 끝나면 7광구는 대부분 일본 영해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산유국을 향한 꿈과 좌절의 반복.

시작은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입니다.

지난 1975년, 중앙정보부는 경북 포항 영일만 인근에서 시추를 하다, 드럼통 1개 분량의 검은 액체를 발견했다고 청와대에 보고했습니다.

이듬해 1월, 박 대통령은 새해 첫 기자회견에서 영일만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전격 발표했습니다.

1차 오일 쇼크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고조되던 시기였습니다.

[박정희/당시 대통령 (1976년 신년 기자회견)] "성분을 분석한 결과는 '질이 매우 좋은 그런 석유다' 하는 그런 결과도 판명이 됐습니다."

그러나, 얼마 뒤 검은 액체의 정체는 원유가 아니라, 정제해서 만든 경유로 드러났고, 시추는 중단됐습니다.

[최종근/서울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시추를 해가지고 석유가 없었는데 석유를 찾았다고 이제 거짓말을 한 것이고. 끝내는 막 개발하는 척하다가 사실은 이제 '석유가 없습니다'하고 이제 약간 마무리된 에피소드 같은 거고."

이런 분위기 속에 1979년 3월 한국석유공사의 전신인 한국석유개발공사가 설립됐습니다.

석유공사는 우리 영토에서 유전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총 48번을 시추했습니다.

동해에 27번이 집중됐습니다.

하지만 실제 생산으로 이어진 건 1998년 울산 앞바다 '동해 가스전' 단 한 곳입니다.

이마저도 지난 2021년 묻혔던 가스를 모두 캐내면서 생산이 끝났습니다.

2007년엔 포항 앞바다에서 고체 형태 연료인 가스하이드레이트가 세계 최대 규모로 발견됐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재훈/당시 산업자원부 제2차관 (2007년 11월 23일)] "당초 우리가 예상했던 6억 톤보다 오히려 많은 양이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 6억 톤 정도라면 우리가 한 30년 동안 쓸 수 있는 천연가스 양에 해당이 됩니다."

그렇지만, 곧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돼 사업이 중단됐습니다.

그러는 사이 적자는 계속 불어나 한국석유공사는 부채만 19조 원이 넘는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캐나다 하베스트 유전에 투자했다 본 손실이 컸습니다.

모두 7조 5천억 원을 투자해 지난해까지 490억 원밖에 회수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든 석유 개발 사업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김동섭/한국석유공사 사장 (세라위크 2024, 3월 14일)] "특히 국가 안보 문제 때문에 심해 지역에서 자체 개발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3D 평가를 시작하고 있으며, 초기 징후는 유망해 보입니다."

정부와 석유공사는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위해 오는 2027년까지 유망구조 한 곳 당 1천억 원씩, 모두 5천억 원을 들여 다섯 곳을 뚫을 계획입니다.

[석유 시추업체 관계자] "그냥 '다섯 곳을 선택해서 시추하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작업 방식이 아니에요. 어떤 석유회사도 그렇게 하지 않아요. 대부분은 유정 하나를 파고 실패하면, 다음 3, 4년 동안 실패한 이유를 찾기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죠. 유정 하나 파고 '실패네, 하나 더 파야지' 이러지 않아요. 실패한 데에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2035년부터 상업개발을 하는 게 목표인데, 석유나 가스가 확인이 되더라도 경제성이 관건입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처럼 수심이 1km가 넘는 심해 유전은 개발과 채굴 비용이 훨씬 높아집니다.

[팀 맥마흔/텍사스대 오스틴 잭슨지질과학대 연구원] "수심이 깊을수록 난도가 높아집니다. 일반적으로 얕은 물에서보다 훨씬 돈도 많이 들고요. 유정 비용에 대한 보고서 중 하나를 제가 봤는데, 그걸 달러로 환산해보니 저한테는 말이 안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수심 1km에서 유정 작업을 하려면 5억 달러(약 6,900억 원)를 예상해야 합니다."

국제에너지기구 IEA는 오는 2029년 석유 수요가 절정에 달했다가, 2030년부턴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세계 석유 시장이 공급 과잉 상태가 되면 유가가 하락해 유전의 채산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문제는 경제성이 얼마나 있느냐. 그리고 이걸 통해서 얼마만큼 실제로 수익을 거둘 수 있겠느냐. 이런 측면들인데 거기까지 확장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다시 등장한 포항 영일만 부근의 석유 매장 가능성.

2010년 이후 이 지역에서 세 차례 석유 시추를 할 때는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유망구조 발견 소식도 보도자료로만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윤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습니다.

[이근상/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대통령이 직접 발표를 하니까. 이게 그냥 모든 사람들이 굉장히 100% 사실로 이렇게 확신을 하게 되는 효과를 가지게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굳이 그 정도 사안을 예전 같았으면 그냥 보도자료 정도로 될 거고, 굳이 많이 해도 석유공사 사장님이 발표하시면 될 만한 일이 아닐까."

공교롭게도 여당의 4월 총선 패배와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 등으로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취임 후 최저, 부정평가는 취임 후 최고를 기록한 직후였습니다.

이번 발표에서 수십 년 전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는 실제로 석유가 나올지 안 나올지라는 것보다는 정국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국면을 전환하는 측면에서는 굉장히 효과적인 이번의 일들을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이휘준 ▶

에너지 안보와 자체 유전 개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만, 그 전제는 조직과 정치에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 정책 아닐까요?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이지수M 기자(first@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straight/6617049_289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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