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더워 죽겠어요”… 폭염 작업중지 의무화 어디까지 왔나

허시언 기자 2024. 7. 14.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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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온열질환으로 사망하는 노동자 발생
정부, 가이드라인 마련했지만 '권고' 그쳐
노동자, 폭염 작업중지 의무화 필요성 제기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입니다. 숨을 턱 막히게 만드는 더위 때문에 하루하루가 괴로워 날이 얼른 선선해지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라노와 함께 가을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바로 가만히 있기만 해도 진이 빠지는 더위 속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입니다. 기후변화로 여름이 길어지고, 폭염 일수가 늘어나고 있어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죠.

폭염 속 건설현장. 연합뉴스


‘살인적인 폭염’은 실제로 노동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합니다. 지난달 30일 근로복지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온열질환 산업재해 승인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열사병, 열탈진, 열경련 등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 발생으로 산업재해가 승인된 건수는 총 147건이었고, 이 중 사망사고는 22건이었습니다. 온열질환 산재 승인 건수는 ▷2018년 35건 ▷2019년 26건 ▷2020년 13건 ▷2021년 19건 ▷2022년 23건 ▷2023년 31건으로 최근 3년간 증가 추세입니다.

온열질환 대부분은 실외 작업장에서 일해야 하는 직업군의 노동자에게 발생합니다. 택배, 마트, 배달, 이동·방문, 건설 현장, 농·축산, 유통, 물류, 환경미화 등 여러 직종의 노동자들이 더위로 인해 목숨까지 위협받고 있습니다.

정부는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해 온열질환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사업주가 적절한 휴식시간을 부여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5월에는 ‘폭염대비 근로자 건강보호 대책’을 수립해 체감온도 33도를 넘어가면 매시간 10분씩, 35도를 넘어가면 매시간 15분씩 휴식을 취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권고’에 그쳐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게다가 노동자가 작업을 하다 더위 때문에 몸이 이상하다고 느낄 때 작업을 중단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죠.

노동자가 스스로 작업을 중지하기 위해서는 ‘작업중지권’을 사용해야 합니다. 작업중지권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것으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즉시 작업을 중지하고 근로자를 작업 장소에서 대피시키는 등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사업주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근로자 역시 산재가 발생할 급박할 위험이 있을 때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죠. 그러나 작업 중지권에는 기후 여건에 대한 별도 조항이 없습니다.

‘가이드라인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정부가 작업중지 요건을 기후에 맞춰 구체화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이드라인은 ‘사업체’의 기준에 노동자가 맞춰야 하는 것이고, 작업중지권은 ‘노동자’가 기준에 상관없이 권한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가이드라인은 정부가 기업에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데, 너무 더우면 노동자한테 휴식시간을 주면 좋겠어”라고 권고하는 것이고, 작업중지권은 기온이 몇 도인지에 관계없이 “나 너무 더워서 몸에 이상이 생긴 것 같으니 좀 쉴게”라며 작업을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것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 7일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표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영향분석’ 보고서를 보면 폭염·한파 대 노동자의 작업중지에 대해 “사업장 생산성 감소 및 노동시간 감소를 줄여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산업현장에서 폭염으로 인한 노동시간 손실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신체적 능력 감소’에 중점을 둬야 한다”며 “폭염·한파 발생 시 작업을 일시 중지해 기온 변화에 따른 노동생산성 저하를 억제하고, 신체적 능력 감소를 저지해 장기적으로 노동시간 감소를 방지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21대 국회 당시 발의된 폭염·한파 등의 상황에서 정부의 작업중지 명령, 사업주의 작업중지·대피 의무,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등을 담은 산안법 개정안들을 대상으로 입법 영향력을 분석했습니다. 분석 대상이 된 개정안들은 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모두 폐기됐지만, 노동계의 요구로 22대 국회에서 재발의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이미 규정돼 있는 보건조치의 준수를 통해서도 폭염·한파 등 기후여건에 의한 근로자 건강장해 예방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 노동부는 “기후여건으로 인해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 생명과 안전에 위해 우려가 크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할 수 있다”며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에 따른 근로자의 작업중지가 가능하므로 법 개정의 실익이 적다”고 밝혔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민 상임활동가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에 폭염이 포함될 수 있는지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 노동자가 먼저 작업중지권을 실행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업자가 봤을 때는 폭염이 그렇게까지 급박한 위험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노동자가 정말 힘들어서 작업중지권을 쓰려고 해도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니 노동자가 먼저 쓰기 힘들죠. 노동부는 폭염으로 인한 작업중지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잘 쓰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폭염에 따른 작업중지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을 명확하게 해야 하는 거죠.”

계절은 돌고 돕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이 찾아온 뒤에는 또 여름이 옵니다. ‘이번’ 여름만 버티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의’ 여름도 버텨야 하는 것이죠. 앞으로의 여름이 노동자에게 조금이라도 덜 가혹할 수 있도록 논의를 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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