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종사자들에게 맡기는 민영 MBC 모델 구상
지난 11일 서울 MBC 앞에서 <MBC 힘내라 콘서트>가 열렸다. 다가오는 방송 장악 기도에 MBC 노동자들이 항전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내달이면 여권 성향 다수로 재편될 방송문화진흥회는 현 안형준 사장을 ‘묻지 마 해임’하고 MBC를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로 되돌리려 할 것이다. 나는 현재의 MBC가 저널리즘 원칙에 비춰 고칠 게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앙시앵 레짐’(구체제)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친정권적, 수준 미달 방송이었다. 불공정과 저품질을 강요당한 제작 전문가들의 분노 파열이 2012, 2017년 파업이다.
1961년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는 이듬해 민영 MBC를 강탈해 관영처럼 지배했다. 공공기관인 방문진과, 박정희·육영수의 이름을 딴 정수장학회가 각각 70%, 30%의 지분을 소유한 현 구조의 기원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민영방송의 뿌리와 권력의 간접 지배는 직접통제하의 관영 KBS보다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전문직 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상업적이면서도 공영적이라는 이중성은 창의와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현 MBC 프로페셔널리즘(전문가 문화)의 근원이다.
MBC를 아예 민영화해버릴 가능성도 있다. 이미 이명박 정권 아래 이를 꾀한 바 있고, 그 주역 중 하나가 이번에 방송통신위원장에 지명된 이진숙씨다. 돈이 된다면 보수적일 수도, 진보적일 수도 있는 게 민영방송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YTN 사례를 보듯이 민영방송이 보수를, 아니 실상은 저널리즘 원칙에 반하는 길을 선택하기 쉽다. 제작 전문가들이 지키려는 가치는 사주의 이해 달성과 권위적 경영에 방해만 될 뿐이다. 보수정권은 온갖 무리수를 써서 공영방송을 홍보기구로 만드는 것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빼앗기기보다 우호적 자본가에게 넘겨버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선진국이라면 공영방송 민영화는 강력한 상업 경쟁자의 탄생을 우려하는 다른 미디어들의 반대로 성사되기 어렵다. 하지만 권한이 있다면 그냥 밀어붙이는 게 작금의 한국 정치 분위기다.
이제 역으로 MBC 제작 종사자들에게 아예 책임을 맡기는 다른 차원의 민영화 방안을 생각해보자. 영국 미디어 학자 제임스 커런도 방송 전문가가 주체가 되는 ‘전문가 미디어 영역’(professional media sector)을 제안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공공미디어 영역은 정권 개입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시장은 자본이 지배하고 있으며, 시민사회도 집단으로 조직된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창의적이고 저널리즘적인 인재들의 독립 공간이 필요한 이유다.
“노영방송을 만들자는 말이냐?”라고 묻는다면 “왜 안 되나?”라고 반문하고 싶다. 권력은 방송사가 망가지든 말든 장악만 하면 그만이다. 자본은 사적 이익이 우선이다. 그러나 적어도 종사자만큼은 그 누구보다 자신들 일터의 발전을 바란다. MBC의 독특한 프로페셔널리즘은 권력의 침탈을 극복하면서 노동자들이 시청자와 함께 만들어온 귀한 유산이다. 대학교 중에 교수들 스스로가 경영하는, 즉 이른바 주인 없이 학자들의 프로페셔널리즘으로 운영되는 ‘교영’(?)도 내가 재직하는 숙명여대를 비롯해 많다. 왜 자본가 방송은 되고 노동자 방송은 안 되나!
사원지주제 등 여러 가능성을 검토해보자. 사회적 책임을 감독할 민영 이사회 구성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현 ‘방송3법’안의 방송전문인 단체의 추천 방식도 고려할 만하다. 경영진 부당 해임 및 공적 자산을 사적 이해에 넘겨주는 민영화를 막는 와중에 전문가 방송 모델도 구상해보자. 제작에 힘쓸 전문가들이 주기적으로 길거리로 나와 투쟁에 나서야 하는 비극적 경로를 이제 좀 끊어주자. 보수 일색 방송과 정파적 유튜브만 가득한 상황에서 MBC마저 망가진다면 저널리즘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 영향력 있는 뉴스를 어디서 볼 수 있을까.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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