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불법파견 근절만이 ‘노동자의 죽음’ 끊을 수 있다
지난달 24일 23명의 노동자가 숨진 경기 화성시 아리셀 화재 참사 소식을 듣고 몇 년 전 부천지역에서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7명의 환자를 만난 일이 떠올랐다. 그들은 서로 다른 공장에 다녔지만 공통적으로 삼성전자에 휴대폰 부품을 공급하는 3차 하청업체의 불법 생산직 파견 노동자들이었다.
환자가 발생한 5개 공장의 약 160명에 대해 임시건강진단을 실시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참담했다. 그들은 인력파견업체와 연락해 길에서 모인 후 승합차를 타고 간 공장에서 1분 정도 작업방법을 배우고 일을 시작했다. 몇 달간 일한 노동자들은 그즈음 유난히 약품 냄새가 지독했다고 했다. 휴대폰 신제품 출시를 앞둔 시기였다. 몇 주 정도 일한 노동자들은 기계에서 수도꼭지에서처럼 나오던 그 액체가 물인 줄 알았다. 그 일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어떻게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지도 전혀 들은 적이 없었다. ‘동료’ 노동자가 그 일을 하다가 실명을 했다는 사실도 병원에 와서 건강진단을 받으면서 처음 들었다.
지난 20년간 직업환경의학 의사로서 여러 직업병을 진단하고, 산재 사망의 원인 조사에 참여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에 대해 곱씹어본 순간이 자주 있었다.
청년 노동자들의 실명 원인은 메탄올 그 자체가 아니다. 전자산업의 다단계 하청구조와 생산직 불법파견을 통해 산업안전보건법도 무용지물로 만들어 노동자들을 화학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되게 한 게 문제다. 불법파견을 근절해야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2019년 석탄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사망 원인을 조사하면서 컨베이어벨트 내의 회전체 그 자체가 아니라 위험을 외주화하고 위험작업을 ‘2인 1조’로 실시하지 못하게 한 도급계약 때문에 김용균이 사망한 것임을 알았다.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해야 산재사망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리튬전지의 위험성을 몰라서 참사가 일어난 것이 아니다. 아리셀의 사업주는 숨진 노동자들이 무허가 인력공급업체로 보이는 메이셀과 근로계약을 했고, 아리셀은 메이셀과 도급계약을 했다고 주장했다. 메이셀 관계자는 숨진 노동자들의 얼굴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불법파견이든 위장도급이든 노동자들을 보호할 책임은 실질적으로 이들을 지배·감독한 아리셀 측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 공장에서는 이전에도 여러 번 화재가 났다고 한다. 그러나 아리셀은 노동자들에게 화재의 위험조차 알려주지 않았고, 화재 시 대피로도 확보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파견·도급 기준 법제화, 파견 대상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파견노동자에 대한 사용사업주의 안전 관련 의무는 유해작업자에 대한 특수건강진단을 제공한다는 조항 하나뿐이다.
생산직 인력 파견을 합법화한다면 위험의 위주화와 함께 위험관리 공백으로 위험이 더 증폭될 것이다. 이는 생명안전에서의 차별을 합법화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파견을 확대할 게 아니라 불법인력파견을 근절해야 아리셀 참사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실질적 지배감독을 하는 사업주에게 노동자 안전보건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해야 노동자 생명을 지킬 수 있다.
김현주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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