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탈시설=불행, 단정 짓지 말라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2024. 7. 14.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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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는 철저하게 계획된 세상에서 약물을 통해 인위적인 행복을 유지하며 사는 미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존은 그런 식으로 통제된 세상은 잘못이라며 자유를 달라고 요구하지만, 통치자는 그 요구가 ‘불행할 권리를 달라는 주장’일 뿐이라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자 존은 힘 있게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한다. 나이 먹고 추해지고 무기력할 권리, 질병에 걸릴 권리, 더러워질 권리, 두려움에 시달릴 권리를 달라던 그의 요구는 인간의 삶에 내재한 고통과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진정한 자유를 원하는 저항을 상징한다.

서울시의회는 지난 6월25일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를 폐지했다. 그로부터 나흘 전인 21일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성명을 통해 탈시설 지원 조례를 폐지하지 말 것을 강하게 요청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위원회가 성명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인터뷰 내용을 언급하며 깊은 우려를 표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장애인이 다 탈시설을 해서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해야 한다는 게 이상적이긴 하지만 그걸 ‘못하는’ 장애인도 있다. 누가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시고 싶은가? 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이라는 서울시장의 발언이 장애인의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를 명시한 장애인권리협약에 배치된다고 지적한 것이다.

복잡한 유엔 협약의 세세한 내용까지 갈 필요도 없다. 우리네 삶을 한번 대입해 보면 이 문제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노쇠하신 어머니를 요양원에 입소시킨 초로의 자식이 있다고 하자. 가끔 요양원에 가보면 입소 때보다 더욱 쇠약해진 어머니는 이제 홀로 보행이 어렵고, 더 오래 기저귀를 착용하신다. 기억력이나 상황판단, 대화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다. 눈에 띄게 생기가 줄어든 어머니는 그저 집에 가자고만 하신다. 고민 끝에 어머니의 요양원 퇴소를 신청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이 사람은 신체적 또는 정신적 능력이 현저히 낮아서 자립생활을 못할 것으로 판단되니 요양원에서 나갈 수 없다”고 통보한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조례 폐지에 대한 국내외적 비난 여론을 의식했는지, 서울시는 이달 초, ‘탈시설한 중증장애인 55명을 추적해 보니 6명이 사망했더라,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탈시설 장애인 중 대부분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더라’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 서울시의 조사 결과에 한술 더 보태서 ‘장애인이 탈시설을 할 수 있는지는 전문의가 판단해야 하는데,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비장애인이라는 높은 위치에서 중증장애인을 무능력 덩어리로 내려다보며 무슨 의사소통을 시도했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중증장애가 있는 범죄 피해자들과 10년 넘게 상담하며 배운 것은, 같은 사람으로 존중하며 소통하면 발달장애인도 그만의 방식으로 의사표시를 꽤 잘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취약성과 상호의존성을 가지고 있기에, 서로를 돌보고 살피는 관계가 열려야 비로소 의사소통이 편해진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효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수용을 목적으로 하는 장애인 시설들이 만들어지면서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시설로 옮겨졌다.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 편리한 사회에 익숙해지자 ‘다시 지역사회에 들어와 살고 싶다면 네가 혼자서 살아갈 능력이 있는지 증명하라’는 해괴한 논리가 등장했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벗어나서 살 권리가 허락의 대상이나 정치적 도구인 세상은 비장애인 중심으로 계획된 ‘멋진 신세계’가 아닐까.

탈시설하면 불행할 것이라고 단정 짓는 오만을 버리고, 장애가 있어도 평등하게 존엄한 사람으로서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국가는 존재 의미와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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