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길의 채무일기]빚더미에서

기자 2024. 7. 14. 20:3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기 양주시에 있는 ‘두리랜드’는 배우 임채무가 34년째 운영하고 있는 테마파크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폐업위기까지 맞았으나, 현재는 시설을 증축하고 직원을 늘려 많은 사람들이 찾는 휴양지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두리랜드에 한 번도 방문한 적 없지만, 이상하리만큼 자주 그곳을 떠올리는데, 이것은 공간 자체에 대한 호기심 때문은 아니다. 임채무는 종종 TV에 출연해 두리랜드를 운영하며 생긴 채무가 150억원이라는 말을 하고는 했다. 본인의 이름을 ‘임채무’가 아닌 ‘채무왕’이라고 고쳐야 한다면서…. 개인이 놀이동산을 운영하기 위해 그만한 빚을 냈다는 것도 나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데, 그것을 고백하는 중년배우의 얼굴은 뭐랄까, 마치 ‘채무’의 모든 섭리를 깨우친 불상처럼 보였다.

벗어날 수 없는 빚의 굴레

10년 전, 나는 내게 발생한 질병의 원인을 ‘채무로 인한 스트레스’라고 스스로 결론지었다. 어떠한 의학적 근거도 없지만, 내가 빚에 시달리며 실제로 느낀 정신적 고통이 분명 신체에도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아니, 채무 스트레스는 실제로 신체적 고통을 느끼게 했다. 학자금 대출과 전세자금 대출도 다 갚지 못했던 20대 중반, 나는 다단계 사기를 당해 제2금융권에서 2000만원이나 되는 돈을 대출받았다. 그것이 사기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그 1년간 나는 음식을 소화하지 못했다. 소화가 되지 않으니 잠도 잘 수 없었다. 이자가 높아 원금을 상환하지 못하고 지나는 달이 늘어갔다. 누군가에겐 ‘얼마 안 되는’ 빚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얼마 안 되는’ 내 월급은 기한 내 상환을 불가능하게 했다.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 매일 저주를 했다. 챙겨먹던 소화제와 수면유도제는 신경안정제가 되었고, 내가 조심하지 않아 이렇게 된 것이라며 스스로를 가두는 징벌을 내리기도 했다. 가족, 친구, 직장… 어디에도 말할 수 없었다. 대출을 막기 위해 또 다른 대출도 알아봤다. 한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대출 회사에 명의를 넘겼다. 절박한 사람을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것은 악의를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매일 오전 9시가 되면 휴대전화에 불법대부업체와 스캠사기꾼들이 보낸 메시지가 폭발하듯 쏟아졌다. 나는 매일같이 앓다가 병원에 갔다. 의사는 입원을 권했고 나는 주저앉았다. 이미 전부를 잃었는데 겨우 남은 육신마저 망가지다니. 운명이 준 모멸감에 밤낮으로 통곡했다.

질병도 빚도 하나의 서사일 뿐

“질병은 우리 스스로가 홀로, 자족적이고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깨뜨림으로써 외로움을 달래주기도 한다. 당신은 타인의 골수나 혈액이 필요하다. 전문가와 사랑하는 이들의 보살핌도 필요하다. (…) 병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생물학적인 존재라는 사실, 유한하며, 타자와 상호 의존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리베카 솔닛은 <멀고도 가까운>에서 질병은 우리의 삶에 단절을 만들고 인간은 그 단절을 통해 다시 생각하고, 다시 시작하고, 다시 살피는 계기를 얻는다고 말한다.

정말 그러했다. 건강한 몸이 이끌던 삶보다 질병을 얻고 난 후의 삶이 훨씬 외롭지 않았다. 나는 매일 내게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보고하며 비로소 내 몸을 인식하게 되었고, 뼈 사진을 찍거나 혈관에 약물을 주입하는 것만으로도 내 삶이 연장될 가치가 있다는 위안을 받았다. 또한 병동에서 함께 생활한 환자들은 신체의 일부가 손상되거나 평생 몸에 장치를 부착하게 된다 해도, 그것이 결코 비극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알려주었다. 아픈 몸은 내 삶에 더 많은 가능성을 열며 내가 존재하는 세계의 전혀 다른 입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입원 치료비는 바로바로 정산하지 않으니 병동에서의 생활은 오롯이 나의 채무였다. 아플 동안 가족, 친구, 환우들에게 진 정신적인 빚도 상당했다. 그래서 갚지 못한 대부업체의 빚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사랑이 또 다른 사랑으로 잊히듯, 채무도 또 다른 채무로 잊히는구나…. ‘전부를 잃었다’며 통곡했지만, 질병을 얻고 보니 내가 잃을 ‘전부’의 범위는 무궁무진했다.

나는 결국 ‘부채감’에 적응하고 말았다. 갚아야 할 돈, 회복해야 할 몸, 갚아야 할 은혜…. 모든 것이 내 숨통을 조이고 있지만, 그 고통은 아주 안락했다. 10년 전 빚을 모두 상환한 날에도, 나는 여전히 빚더미에 있는 기분이었다. 인간은 세상과 직간접적으로 소통하며 청산할 수 없는 빚을 끝없이 지고, 삶은 그 빚을 상환하며 계속되는 것이란 걸 알게 된 탓이었다. 나의 삶은 빚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젠 이해할 수 있다. 큰 채무를 떠안았지만 놀이동산을 지켜낸 임채무의 불상 같은 미소를. 빚을 진다는 건 곧 삶을 살아간다는 말과 같기에.

복길 자유기고가

복길 자유기고가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