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칼럼] 정어리 맛 좀 봅시다

정석근 국립제주대 해양생명과학과 교수 2024. 7. 1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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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근 국립제주대 해양생명과학과 교수

최근 우리 바다는 물론 일본 해역에서도 정어리 개체군이 급증해 갑자기 많이 잡히고 있다. 지금 일본에서는 어시장이나 슈퍼에서 싱싱한 정어리 선어를 쉽게 볼 수 있는데, 한 마리에 몇 백원 정도 밖에 안 한다. 반면, 우리는 정어리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한 때 연간 400만t에 이르는 정어리를 잡기도 했으며 지금은 적어도 수십만t 정어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 우리나라 어시장이나 슈퍼에서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가?

모두 해양수산부 탁상행정 어업규제 때문이다. 멸치를 대량으로 잡을 수 있는 근해 멸치권현망에 정어리가 잡히면 혼획금지 규제로 모두 바다에 다시 버려야 하며, 규모가 작은 연안 어선에서도 제 값을 주고 팔 수 없어 버리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꽁치와 오징어가 사라지자 대신 정어리가 서민 생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잡히면 이미 죽은 정어리를 굳이 버려 젊은이들 사이에는 수산식품이 아닌 오염물질로 인식되고 있다.

정어리는 멸치나 청어와 같은 다른 청어과 어류와 마찬가지로 개체군 변동이 기후변화에 민감하여 수십년 주기로 풍흉을 반복하며 세계 곳곳에서 사회·경제에 큰 충격을 주어왔다.

정어리 어획량 변동이 유달리 큰 이유로 지난 100년 동안 세계 수산학자들이 남획을 지목하곤 했지만, 수 천년 동안 해저 퇴적물에 쌓인 비늘 갯수로 개체군 연변동을 추정한 연구결과들이 1990년대 들어 나오면서 어업이 아닌 기후변화가 원인임을 알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너무 많이 잡히면 비료나 사료로 쓰거나, 말리거나 구워 먹는 것이 고작인 정어리이지만 서양에서는 19세기 통조림이 보급되면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고급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서 생산하는 정어리 통조림은 지금도 전통 특산품이다. 그러나 프랑스 앞바다에서 정어리가 잡혔다가 갑자기 안 잡히는 큰 변동 때문에 19세기 말부터 어업은 물론 통조림 산업과 은행에까지 큰 충격을 주면서 정치 문제로 비화하게 되었는데 이를 ‘정어리 위기(la crise sardiniere)’라고 했다. 우리가 주로 먹는 참치 통조림도 20세기 들어 정어리가 안 잡히자 미국에서 그 대체품으로 개발한 것이라 당연히 정어리가 훨씬 더 맛있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국내 정어리 통조림은 우리 바다에서 잡은 것이 아니라 러시아산이며, 삶아서 기름을 빼낸 것이라 맛이 별로 없어 찌개용 정도로 소비하고 있다. 정어리는 가공 방법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지금 인터넷 쇼핑몰 쿠팡에서 팔고 있는 10 g당 통조림 가격을 비교해보면, 포르투갈산 수입 정어리 통조림은 492원, 동원 원양산 참치 171원, 사조 러시아산 정어리 77원이다. 요즘 젊은이들 입맛에 맞추면서 참치보다 3배, 푹 삶은 정어리보다 6배 이상 비싸게 받을 수 있는 정어리 가공 기술은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이미 지난 해 개발을 마치고 특허도 내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아직 국내산 정어리 통조림은커녕 선어도 구경하기 힘들까? 정어리는 연간 어획량 변동이 클 뿐만 아니라 온갖 어업규제로 안정적으로 어획물을 공급받기 어려워 통조림 가공 공장에서는 장기적인 투자를 꺼려한다. 선어나 건어로 팔 수 있는 유통 경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청어과 어종들 전체 어획량을 보면 큰 변동이 없어 정어리가 안 잡힐 때는 멸치나 밴댕이, 청어와 같은 다른 어종들이 대신 잘 잡히므로 통조림 공장에서 정어리뿐만 아니라 다른 청어과 어종들도 가공해 생산할 수 있다면 안정적인 수요와 공급이 가능하다.

청어과 어종 관련 어업규제만 모두 없애주면 이미 확보된 가공기술로 민간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관련 수산식품을 개발해 국내 판매는 물론 수출까지 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어민들은 물고기를 골고루 많이 잡아 소득이 높아지고 어촌소멸 문제도 개선할 수 있으며, 소비자들은 맛있는 국내산 정어리를 싼 값에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내년에는 국내산 정어리 맛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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