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도 나와서 일하는 게 삶의 활력”
60·70대 ‘봉제기술자’ 10여명
수제 ‘키링 인형’ 만들기 구슬땀
주변에 “나 알바하잖아” 자부심
판매 수익금 동물단체에 기부도
드르륵 탁, 재봉틀 소리가 정겹게 울려 퍼졌다. 10평쯤 되는 서울 은평구 더도울 작업장에 둘러앉은 ‘봉제기술자 어머님’들은 바삐 손을 움직였다. ‘봉제기술자’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어머님’이란 말이 더 편하다는 그들의 손놀림은 꼼꼼하고 재빨랐다.
한 ‘어머님’이 재봉틀로 단단히 틀을 잡았고, 다른 어머님이 솜을 넣었다. 또 한 어머님은 터진 데를 꿰매며 마무리했다. 형태가 없던 갈색 천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비로소 손바닥만 한 ‘푸들 얼굴’ 모양의 키링(열쇠고리)으로 완성됐다. “우리가 만드는 게 진짜 핸드메이드지.”
박정숙씨(67)가 자부심을 내비치자 오성해씨(72)가 “그럼, 그럼” 맞장구를 쳤다. 박씨와 오씨를 포함한 여성 10여명은 노인 일자리 수행기관인 ‘은평시니어클럽’에서 봉제 일을 한다. 이들은 폐현수막이나 청바지 등으로 가방이나 카드지갑 등을 만들기도 했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만든 양품 브랜드’를 판매해온 브랜드 ‘마르코로호’에서 곧 출시될 진돗개·푸들 인형 키링을 맡게 됐다. 박씨는 가방에 조그마한 인형을 매달고 다니는 청년들이 많다는 걸 전엔 몰랐다면서 “요즘은 다닐 때 키링만 보인다”고 했다.
이들은 ‘노인 일자리 사업’의 일환인 은평시니어클럽에서 일주일에 두 번, 3시간씩(월 8회) 일한다. 지난 11일 작업장에서 만난 어머니들은 “나와서 일하는 게 삶의 활력”이라고 말했다.
“여기 나오면 나이를 잊어버려요. 집에 가면 할머니지만 우리끼린 할머니가 아니잖아요.”
은평시니어클럽에서 5년째 봉제 일을 총괄하고 있는 팀장 성인숙씨(69)가 말했다. 그는 자수를 놓아 전시회를 열기도 하는 실력자다. 그는 작업자들에게 일감을 분배하고 제품을 검수하는 일도 함께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알아가며 손발이 맞아갈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성씨는 “우리 또래가 살아온 과정이 비슷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공통점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집에 가는 길이 같은 박씨와 오씨는 이곳에서 만나 동네 친구가 됐다. 박씨에겐 ‘일’하러 오는 3시간이 적적한 삶에서 기다려지는 순간이다.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며 두 딸을 키워낸 박씨는 10여년 전 남편과 사별했다. 손주들을 봐주며 시간을 보내던 그는 “그런데 애들이 크니까 점점 내 손이 필요없더라”고 했다. 그는 최근 평행선을 달리던 손녀와 대화하는 일이 키링을 두고 다채로워져 기쁘다고 말했다. 손녀 얘기가 나오자 오씨의 표정도 한층 밝아졌다. 그는 5년 전쯤 신장암 수술을 받았다. 맞벌이하는 아들 부부를 대신해 열 살 무렵까지 키운 손녀는 오씨가 병원 가는 날을 매번 챙길 정도로 살뜰하다.
그의 병세가 심화되던 무렵 손녀가 “대학생이 되면 아르바이트해서 할머니 좋은 거 사드리겠다”며 “그때 할머니도 아르바이트 같이하자!”라고 말하던 게 생각난다고 했다. 오씨가 뒷바라지해온 손녀는 어느덧 고등학교 3학년이다. 오씨는 ‘꿈’을 묻는 질문에 이 이야기를 꺼내며 “내년에도 이 일을 하고 있다면, 그 말이 현실이 될 수 있겠다”고 했다.
이들은 주변 친구들에게 “나 요즘 아르바이트한다”고 말하면 하나같이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고령자들에게 성취감을 줄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박씨는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 참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세 사람 모두 “너무나 당연하다”고 답했다. 이들은 수제 키링을 오는 22일 정식 출시한다. 판매 수익금은 유기동물을 돕는 동물보호단체에 전달하기로 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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