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춤이 있고, 길 위에서 춤을 만나” 상실을 위로하는 예술의 시간.. “너와 나는 춤이 되어, 춤으로 피어”
# 한낮 무더위가 열기를 가라앉힐 때쯤 섬을 돌아 남동쪽, 포구를 끼고 올레길을 따라 들어서면 남빛 출렁이는 파도에 떠밀려 금새 저멀리 한라산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올 듯 선명해집니다.
온통 푸름이 더한 귤밭은 넘치는 생기로 청량함을 더하고 빼곡히 솟은 구름다리에 올라섰더니 어느새 마을과 산, 바다가 나 하나 경계를 두고 맞닿았습니다.
돌담길 너머, 담장 아래 빼곡한 동백군락들의 숨죽인 재잘거림이 녹음으로 펼쳐지고 낮은 지붕, 처마 밑에 꼭꼭 이름을 숨긴 각양각색 아기자기한 카페들의 속살은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그런 마을 집 안마당이거나 부유하는 꿈을 이끄는 등댓불 소박한 안식처를 택했습니다.
또는 한나절 떠들썩했던 아이들이 다 떠난, 먼지바람마저 반가운 초등학교 운동장 혹은 ‘고망물’(바위틈이나 구멍에서 솟는 물을 뜻하는 제주말)을 지나 예술공간에 이르러 만나는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글과 그림, 사진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춤갈피’가 예술적인 위로를 건네는 ‘라이브 전시 공연’ 그리고 무용의 확장된 프로그램으로서, 단순한 무대 예술에서 벗어나 일상 속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접근입니다.
자연과 일상이 예술과 조화를 이루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무용의 열린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26일부터 28일까지 이어지는 무용 공연들입니다. 제주국제무용제 일환으로 관객들을 맞이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장소 특정 공연'을 선보입니다. 장르 경계를 허물고 일상적인 공간을 예술로 채운 경험들이 기다립니다.
■ 장소 특정 공연 ‘길 위의 춤’.. “너에게 가는 춤”
26일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 1리 일대, 올레길 5코스에서 만나는 장소 특정 공연 ‘길 위의 춤(Dance of on the Road)’입니다.
‘장소 특정 공연’은, 말 그대로 극장이나 일정한 장소를 벗어난 다른 장소를 공연 공간으로 선택해 진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23일 개막하는 제2회 제주국제무용제는 제주의 자연환경을 활용해 차별성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이같은 공연을 편성했습니다.
종전 ‘극장’이란 공간을 벗어나 ‘열린’ 무대를 택하면서 지나가는 이는 물론, 마을 주민이며 찾아론 이들까지 모두 관람객이 됩니다.
공연 순간, 그 모습을 보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참여가 이뤄집니다.
안무가와 관람자가 함께 장소를 공유하고, 장소는 그 자체로 의미와 정서를 나누는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제주’라는 자연이 출연진과 관람자 사이 상호작용을 거치면서 예술적인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런 제주를 배경으로 벨린다 컴퍼니(Bellinda Company. 이탈리아), 이지혜 컴퍼니(서울), 댄스씨어터 판(부산), IDEE(변재진, 정유주. 광주), 무용다방(無用多方. 기하진, 민은지, 설소망, 정시온, 현반야. 제주)과 어린이 무용극단 무무(無舞. 김연우, 김율리, 박해리, 이예은, 장예은, 최로이. 서귀포), 몽상슈퍼 아트컴퍼니 등 5개 지역 예술 단체가 공연을 선보입니다.
이들은 이날 오후 4시 제주 올레길 5코스의 위미 마을의 집 마당부터 위미항의 등대, 어선 집하장, 위미초등학교 근처, 고망물(물허벅상)을 거치면서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예술가 자신들의 공연을 펼치다 마지막 공연 장소인 복합문화예술공간 ’콜라주플라츠(Collage platZ)‘ 스튜디오에서 관객들과 함께하는 나눔 춤 공연 ‘춤 춤 춤’으로 전체 프로그램을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무용다방’은 제주 거점으로 한 예술단체로, 지난해에 이어 이번 공연에 제주 대표로 참여합니다. 구성원들은 일반 성인과 전문 무용수, 청소년들로 꾸준히 경계를 흐리는 작업을 지향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주국제무용제 조직위원회 이사이자 이번 장소 특정 공연(서귀포) 코디네이터를 맡은 기은주 대표(무용다방)는 “‘겨울의 동백’으로 유명한 위미에 ‘여름의 춤’이라는 이야기를 더하고 싶었다”라며 “공연을 보는 이들이 고즈넉하고 소박한 매력을 가진 이곳(위미)의 정취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길 위의 춤’을 구성했다”라고 공연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이어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서귀포의 어린이 무용 프로젝트 ‘무무’ 공연을 함께 만날 수 있다”라면서 “이같은 다양한 시도가 도민들이 무용예술에 한 걸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바람을 전했습니다.
공연은 2022년 제주문화예술재단 후원으로 연구·개발한 예술교육프로그램 ‘즉흥춤 도슨트’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 ‘Live Exhibition Performance’.. 상실의 시대 Part3. ‘위미(爲美)’
2016년 ‘상실의 시대 Part1.’, 2019년 ‘상실의 시대 Part2.’ Lecture Performance ‘잇다’와 같은 주제를 공유하는 후속작입니다.
사람들에게 상실의 위로를 건네고 삶의 시간 사이사이 흐르는 순간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도록 기획한 작품입니다.
안무가이자 현대무용가인 기은주 대표(무용다방)는 “‘상실’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와 깊이는 각자 다르지만, 여전히 우리 모두는 항상 무언가를 상실하며 아름답게 살고 있다”라면서 “바로 이 지점에서 ‘상실의 시대’는 2024년에도 여전히 그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으며, 어떤 과거의 시간을 거쳐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고 공연 취지를 밝혔습니다.
기 대표의 ‘과정 중심의 작품화’ 방식이 돋보이는 공연으로 개개인의 인생 장면을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내면의 이야기를 끌어낼 것으로 기대됩니다.
상실의 의미를 탐구하면서 각자의 상실을 춤으로 표현하고 기억하는, 이른바 ‘춤갈피’ 과정을 더했습니다.
글, 그림, 사진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춤갈피’들이 ‘라이브 전시 공연(Live Exhibition Performance)’ 형태로 공간에 펼쳐지면서, 보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넵니다.
‘춤갈피’에 대해 기 대표는 “인생의 구체적인 순간들을 꺼내어보고, 그 장면을 춤으로 만들어보는 과정”이라면서 “책의 기억하고 싶은 부분에 꽃이나 낙엽을 책갈피로 만들어 끼워 두듯, 우리 삶 속에 ‘춤갈피’를 끼워보는 시도를 통해 각자의 상실을 위로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억해보려 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개개인 감정과 이야기가 ‘움직임’이 되고, 퍼포머가 만든 개개 장면들은 안무가의 ‘콜라주’ 조각이 됩니다. 조각들이 이어지는 과정이 ‘Live Exhibition Performance’ 작품이 되는 방식입니다.
공연을 위해 ‘무용다방’은 민은지·현반야(제주)와 강한나·이지혜·정한별(서울) 그리고 변재진·정유주(광주) 3개 지역 예술가와 함께 5개월간 리서치를 거쳤습니다.
이같은 작업 방식은 복합문화예술공간인 ‘콜라주플라츠’의 공간적 특성과도 맞닿아 상승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의 덩어리로 연결된 ‘콜라주플라츠’에 충분한 리서치 과정과 다양한 결과물이 담겨, 입체적으로 연결된 공간 내에서 퍼포머와 관객이 더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호흡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공연은 26일과 27일 각각 오후 7시 ‘콜라주플라츠’에서 이어집니다.
■ ‘무초(舞草)’.. “춤, 일상에 스며들어”
‘춤추는 식물’을 주제로 한 무용 확장 프로그램, 안무가이자 현대무용가인 기은주 대표(무용다방)의 2024년 창작 작품 ‘무초(舞草)’입니다.
어린이와 여성의 노랫소리에 반응하여 춤을 추는 식물처럼 예술가들이 일상적인 공간에서 춤을 전시하는 형태로, 일상적인 공간에 예술가가 찾아가 춤을 전시하는 형태의 ‘장소 특정형 라이브 퍼포먼스’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마을 책방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공연 무대로 택했습니다.
참가자들은 공연 감상과 더불어 제주의 숲을 걸으면서 자연과 예술의 유기적 연결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남도소리 명창 신은오와 어린이 무용극단 ‘무무’가 함께 해 의미를 더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22년 설명무용극 ‘독무가’와 2023년 ‘나.그.네’에 이은 ‘무초’는 장소 특정 공연으로, 위미리에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 ‘콜라주플라츠’ 내·외부 공간과 건물 1층에 위치한 독립출판서점 라바북스에서 공연할 예정입니다.
‘무초’는 주제를 무용극화하여 무용을 바탕으로 대사나 연기, 글, 그림, 사진, 영상 등 장르의 경계를 흐리고, 리서치의 결과를 자유롭고 실험적인 형태로 표현한 과정과 가치중심의 설명무용을 제시합니다. 관객은 공연 뿐만 아니라 함께 숲을 걷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관람하면서 ‘무용 알기’를 경험합니다.
이같은 시도에 대해 기은주 대표는 “장소 특정적인 춤을 통해서 극장에 갇힌 춤을 벗어나 춤을 회복하고 확장하는 과정”이라면서 “무용이라는 순수예술장르에 대한 문턱을 낮추면서 동시에 마을의 작은 공간과 협력·상생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민간 예술공간을 제안하려 한다”라고 전했습니다.
27일 오후 6시, 28일 오전 10시 ‘콜라주플라츠’와 1층 라바북스에서 공연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공연은 제주자치도와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제주문화예술지원사업 후원으로 제작했습니다.
기획·안무를 맡은 기은주 대표(무용다방)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예술전문사를 졸업하고 2017년 제주로 이주해 무용예술교육과 공연예술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몸이 가진 고유성과 공간의 의미와 장소성을 확장하는 작업을 지향하며 주로 즉흥춤 기반으로 다양한 연령과 베이스를 가진 사람들과 ‘무용 알기’ 작업을 통해 경계를 흐리고 춤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며 무용 확장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주제를 무용극화해 관객에게 제시하고 다가가면서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의 가치와 과정 중심의 열린 결말의 창작 작업을 하는 ‘교육하는 독립예술가’입니다.
신은오 명창은 소릿길을 걸은 지 40년 차로, 제주 토박이인 지금의 남편을 따라 제주로 이주해 좋아하는 소리를 하며 소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심청가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34호 남도잡가의 이수자로 소리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즉흥 연주와 춤 등의 현대 예술에도 관심을 갖고 전통 소리와의 접목하여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는 소리꾼입니다.
‘무무(無舞)’는 어린이들에 의한 어른이들을 위한 프로젝트로, 기은주 대표는 인간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어린이라는 세계를 무무와 함께 춤으로 탐구하고 있습니다. ‘무초’에선 김연우, 김율리, 박해리, 이예은, 장예은, 최로이 어린이 무용수가 함께합니다.
이들 공연에 대한 보다 자세한 문의와 공지는 ‘예술공간 탄츠하우스’와 ‘콜라주플라츠’ 인스타그램 계정 등을 참고하면 됩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Copyright © JI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